화해의 기회
처음 '아버지와 아들(프롤로그)‘로 글을 시작할 때, 두 편의 영화—'꿈의 구장(Field of Dreams)'과 '루키(The Rookie)'를 언급했다.. 그 후로 줄곧 '꿈의 구장'만을 다뤘었는데, 여기서 잠시 영화 ‘루키' 이야기를 하겠다.
상처와 갈등 그리고 …
'루키(The Rookie)'에서는, ‘꿈의 구장(Field of Dreams)'과는 반대로, 상처를 주는 쪽이 늘 아버지다.
아버지(짐 모리스 시니어, 배역: 브라이언 콕스)는 가족 중의 그 누구도 감당 못할 만큼, 괴팍하고 독선적이라, 타협이 불가능하다. 옛날 영화나 고전에서 흔히 접했던, 구시대 엄한 아버지의 전형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아들(짐 모리스, 배역: 데니스 퀘이드, 어린 짐 모리스 배역: 트레버 모건)은 어릴 때부터 투수가 되는 것이 꿈이고, 소질도 있고, 열심이다.
아버지는 그런 자신의 아들이 야구를 좋아하는지 알면서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아들이 야구에서 거둔 성과(승리, 탈삼진 등)에 공감하지도 못하고, 아들의 야구에 대한 그 무엇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해군에서 근무하는 아버지는, 계속해서 근무지를 옮긴다. (미국 동부 뉴욕의 북쪽에 위치한) 코네티컷주에서 버지니아주로, 다시 플로리다주로, 계속 남쪽으로 이사를 한다.
야구라는 단체운동은, 동네야구조차도 소속팀이 있고, 팀 내에서의 역할도 있고, 팀이 속한 리그가 있고, 시즌 내내 경기가 있는데, 계속 거주지를 옮기게 되는 상황은, 야구를 지속해 나가려는 짐 모리스(Jim Morris)를 힘겹게 만든다. 거기에다 아버지는 매번 상처를 더해준다.
처음, 코네티컷 주에서 버지니아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을 때, 의기소침해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이사하고 말고는 내 결정이야. 무조건 받아들여”
그 후로도, 플로리다로 한번, 텍사스주의 빅 레이크란 곳으로 또 한 번, 이사를 하게 된다.
텍사스로 이사 간다는 이야기를 할 때, 짐 모리스는 자신이 몸담은 팀의 시즌이 남아서, 친구 집에서 좀 머물겠다고 말해보지만,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는다. 텍사스로 이사 간 날, 이삿짐 속에서 글러브가 들어있는 상자를 찾지 못해 당황하는 짐 모리스에게, 어디 있을 거라며 같이 찾아보자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정색하며 말한다.
"인상 풀고 짐이나 옮겨. 안 들려? 인생에서는 야구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아. 너도 그걸 배워!"
아버지와 아들은 평생을 소원하게만 지낸다.
아들의 꿈을 무시하는 엄한 아버지는 아들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에게도 비슷한 식이어서, 결국 어머니와도 이혼을 해서, 현재는 혼자 살고 있다.
꿈을 향한 재도전
어깨 부상으로 오래전에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과학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짐 모리스는, 서른 중반의 나이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다시 도전을 하게 되고, 마침내 템파베이 데빌레이스 선수로 메이저리그 데뷔하게 된다.
선발투수가 아니어서, 출전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지만, 아내와 어린 아들, 어머니와 의부, 제자들,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텍사스 레인저스(상대팀)의 홈구장을 직접 찾아왔다.
6회 말 수비, 점수를 계속 내주며 7대 1로 점수차가 벌어진 상황, 계속되는 팀의 위기에 짐 모리스가 구원 등판한다. 설렘과 긴장 속, 시속 98마일(158km)의 강속구로 상대 타자를 압도하며, 결국 삼진을 잡아내고 이닝을 마친다.
성공적인 데뷔전을 마친, (신기할 정도로) 아주 나이 많은 신인 투수, 그래서 그 앞에 운집한 기자들. 그들의 질문에 답하던 짐 모리스의 눈에 아버지가 들어온다.
기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아들,
짐 모리스 : 아버지... 오신 걸 몰랐어요.
아버지 : 놓쳐서야 되겠니... 아무 아버지한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잖느냐... 하긴 더 많은 기회가 있었건만...
짐 모리스 : ....저한테도요
아버지 : 그래...
그리고 뒤돌아서 가는 아버지를, 짐 모리스가 다시 부른다.
"아버지"
그리고는, 당일 경기에서 삼진을 잡았던 그 공을 주머니에서 꺼내, 아버지에게 건네며 말한다.
"와줘서 고마워요"
아버지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다.
공을 들고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는 발걸음이 너무나 가볍고 즐거워 보인다.
화해의 기회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란 역할에 익숙하거나, 자식의 역할에 최적화되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다들 서툴고 어려운 것일 테다. 나이가 들수록, 대체로 아들은 답답해하고, 아버지는 외롭다.
페이스북에서 내가 팔로우하는 유명한 류* 시인께서, 최근에 올리신 게시물에, 아버지에 대한 공감 가는 내용이 있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다들 싫어한다. 왜 모든 아버지들은 미움을 받는지 모르겠다.
(중략)
나는 살아있는 아버지와 백 마디쯤 했을까?"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사이가 나쁜 아버지와 아들은 너무나 흔해서,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다. 나이 든 아버지와 허물없이 친밀한 아들의 모습이 오히려 낯설다.
어쩌면 자신이 또렷하게 기억하는 어떤 계기가 있을지 모른다. 없다면,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는, 작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일지도.
아무리 피를 나눈 아버지와 자식 사이라 하더라도, 친구사이보다도 더 관계 회복이 어렵기도 하고, 많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해결되거나, 더 쉬운 해결방법이 생기지도 않는다. '꿈의 구장'에서 레이는 결국 그것을 회복하지 못했고, 장례식에서야 아버지를 만나는 불행이 온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 사이라서, 오히려 기회만 만나면,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의, "아버지! 공 받기 할래요?"나,
'루키(The Rookie)'의, "와줘서 고마워요" 같은,
한마디 말만으로도, 오래 묵은 벽이 사라졌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저런 기회가 누구에게나 오지는 않는 것이니, 현실의 우리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화해가 필요하다면, 기회가 남아있을 때 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것을 기회라 명명할 수 있으려면, 살아계실 때를 의미하는 것일 테고,
그래서 그것을 기회라 명명하게 된다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우리에게 천국의 어떤 목소리가 들려 올리도 없고, 우리가 프로야구 선수로 데뷔할 리도 없으니 말이다.
Again '꿈의 구장'
끝으로, '꿈의 구장 2022년의 이벤트'—2021년의 폭발적 반응에 힘입어 다시 개최됨—도 아주 좋았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 부자(父子) 켄 그리피(Ken Griffey) 시니어&주니어—우리나라로 치면 흡사 이종범&이정후 급 이상이다—가 출연해서, 감동적인 장면을 재연했다.
옥수숫대 사이를 함께 걸어 나온 그리피 부자(父子)는, 영화에 나왔던 대사를 그대로 한다.
주니어 : 아버지! 공 받기 할래요? (Hey Dad! You wanna have a catch?)
시니어 : 좋고 말고 (I'd like that.)
그리고는 캐치볼을 시작한다.
2022년 꿈의 구장 이벤트 영상 참조 : https://youtu.be/VdVR0 S5 GNcs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