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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만년필 Apr 14. 2023

큰아버지와 돈봉투

아버지는 3살씩 터울인 3형제의 막내셨다.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딱 맞아서,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의 형님 두 분은 여전히 정정하시지만, 막내였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신 지 올해로 벌써 14년째다.


올초 1월 4일, 아버지 제사 때 오셨던, 큰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길에서 가끔 너의 장인을 마주치는데, 내가 밥을 한번 먹자고 몇 번 말을 했었다. 네가 약속을 한번 잡아봐라. 그리고 내가 밥값을 내겠다고 하면 너의 장인이 못 내게 할 것 같으니, 이걸 갖고 있다가 네가 계산을 좀 해라.“


그러시면서 나에게 10만 원이 든 봉투를 주셨다.


그걸 받아놓고도 무심했던 나는, 또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을 그냥 좀 흘려보냈다.


설에 가서 장인께 말씀드려야지...

이번 주에 해야지...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3월 말에야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식사를 했다.


직장에서 평일 점심시간에 2시간 외출을 더해서,

처가댁과 큰댁을 차례로 들러 장인과 큰아버지를 모시고,

식당 앞 길에 벚꽃이 만발했던 날에 점심을 먹었다.

그날에는,

함께 해주신 큰아버지가 아버지 같았고,

아버지랑 잘 지내셨던, 장인어른과 함께라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결혼을 한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큰아버지와 장인이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직접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큰아버지께서는 일찍 세상을 떠난 당신의 막내 동생의 역할을 한번 대신해 주고픈 마음이셨던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하루를 만들어주신 큰아버지께 많이 감사하다고,

저녁에 다시 전화를 드렸다.


P.S 어른들께 대접은 못할 망정, 그 돈은 절대로 받으면 안 될 것 같아, 큰아버지가 주셨던 봉투는 정중히 돌려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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