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만년필 Nov 10. 2020

인종차별과 그들의 노래

그들이 차별하면 우리는 노래한다

 정권과 자본의 독재에 맞서고 억압받는 노동자와 민중을 대변하던 우리의 민중가요.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대표되던 그것은 7~80년대가 전성기였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진원지에서 직선거리로 수 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진 우리 학교에까지도 수시로 날아들던 최루탄 냄새에 꽤 익숙해졌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버스 안이었다. 그때 내가 살던 곳에는 지하상가를 만들기 위해 시내 중심도로가 깊게 파헤쳐져 있었는데, 시위를 벌이고 있던 대학생들은 그 큰 구덩이 주위를 빙 둘러싸며 도심을 가득 메웠고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고 있었다. 나의 무관심 속에 지금도 새로운 중가요가 계속 생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무튼 민중가요 업준비생들로만 가득한 학교에서는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 같고, 동자들의 시위 집회가 아니면 이런 노래들이 들리는 일이 거의 없는 걸 보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방되었고 자유로워졌고 확실히 많이 민주화되었나 보다. 우리는 확실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겼음이라 짐작해본다.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백인 경찰에 의한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사건으로 다시 촉발된  미국의 인종차별. 사건 전체가 동영상으로 촬영되어 온라인에 유포된 탓도 있지만 하나의 사건으로 이렇게 전국적인 시위가 촉발되는 것은 미국 사회 곳곳에 여전히 이 문제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마이클 잭슨, 비욘세, 윌 스미스 등 스포츠와 연예계에서 슈퍼스타를 배출하고 흑인 대통령지 이미 배출했음에도 미국이 인종차별과 이별한 것이 아닌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최초의 흑인 부통령이 탄생했지만 이것이 인종차별 문제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도, 'Black lives Matter'시위가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도 아마 없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CNN

 그런데 매번 외신으로만 접하는 이 문제에 대해 '우리 각자는 인종차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곤 한다. 가끔 박지성, 손흥민 등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이 외국에서 눈을 찢는 제스처 등의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하면 누구나 한순간 발끈하기는 하지만, 이 땅에서 평생을 살아온 우리 대부분은 한 번도 인종차별을 직접적으로는 겪어보지 않았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남의 일 같은 "인종차별"이란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인종차별'에 대한 생각은 흑인들, 다른 유색인종,  백인이 가진 것이 또 각각 다를 것이다. 흑인 노예제도라는 특수한 역사를 가졌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의 인종차별은 다른 나라에서의 그것과는 또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미국 내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의 크기와 넓이, 깊이를 가늠하기란 불가능할 것 같다. 흑인으로 태어나 미국에서 평생을 산다는 일 말이다.

신분이 철폐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

 운 좋게 우리는 신분이 완전히 철폐된 사회에 살고 있다. 무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에서 살아도 '그냥 우리 집은 조금 가난하다'고만 생각할 뿐, 자신의 신분을 함께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혹시 나의 고조부, 증조부가 노비였을까?'라는 의심을 해본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조선시대에 양반은 전 인구의 10%가 안되었고, 성씨를 가진 사람도 조선 초기에는 15%, 후기에는 30% 정도뿐였다고 하니, 우리들 중의 대다수는 평민이나 노비였고, 성()도, 족보도 없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지금은 전 국민이 성(姓)도, 본관(本貫)도 갖고 있고, 모두가 양반이었던 듯, 족보가 없는 집도 없는 것 같으니 완벽히 신분이 세탁된 것이 맞다.


 소설 '토지' 주요 배경은 일제강점기다. 신분제가 이미 폐지되었을 때지만, 거기서도 반상(班常)의 구분은 확실하다. 누구는  대째 급제만 못했을  양반 출신이고, 누구의 아버지는 최참판댁 노비였고, 월선은 무당의 딸이고, 송관수는 백정의 사위이고, 이런 것들은 누가 누구를 만나고, 같이 일을 도모하고, 혼인을 하는데 커다란 내적 갈등과 외적 장애물로 작용한다.  형태로 신분은 대한제국 때도 일제강점기 때도 해방 후에도 견고했을 것이다.


 이런 틀을 벗어난 가장 큰 계기는 아마도 전쟁과 산업화 탓이 아닐까 싶다. 옛날처럼 한평생 같은 동네에 살면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그대로 세대를 거듭해 계속 살았다면 그 굴레를 떨쳐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전 국토가 완전히 초토화되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를 재건하면서 산업화, 도시화, 수도권 집중화 등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거지를 버리고 새터에서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대를 거듭하며 이제 서로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끼리 어울려 살게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의 직업이 무엇인지, 소득이 얼마인지,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어디에 사는지가 중요할 뿐 그의 할아버지가,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양반이었는지 평민이었는지 노비였는지는 알아낼 수도, 알필요도 없어졌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과거 신분이 노비였고 어떤 식으로든 표식이 있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그러면 남의 일만 같던 '인종차별'이 일순간 나의 일이 되는 듯 감정이입이 조금 가능해지는 느낌이 된다. 신분이 철폐되었다고 하지만 보는 즉시 누가 노비 출신임이 식별된다면 우리의 삶은 절대로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양복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아무리 멋진 헤어스타일을 해도 노비 출신임이 가려지지 않는다면, 학교에서도 연애에서도 결혼에서도 취업에서도 차별을 피해갈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미국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라 생각한다. 그들 대부분은 아직도 가난한 동네에 모여서 살고, 그곳을 벗어나는 일조차 쉽지 않고, 가난은 대물림되는 것이다. 영화 '겟 아웃'에서, 자신의 부모님 댁에  인사하러 가자고 하는 백인 여자 친구 앞에서 망설이는 흑인 남자. 그것이 아직 여전한 미국의 현실일 것 같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식별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인종차별이 없는가?' 이 말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을까? 외국인 노동자, 조선족, 혼인으로 인한 이주 외국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 나는 스스로 인종차별 따위는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뉴스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고 학대하는 공장주들을 보면 분노하고, 다문화가정 출신도 절대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생각한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동남아인들도 최대한 공손하게 대한다. 그런데 '이런 내가 완벽히 인종차별 없는 사람일까?' 솔직히 모르겠다. '나의 아이들이 그런 이들과 사귄다고 하면 혹은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에까지 생각이 닿으니, 망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해버렸다.ㅠㅠ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가 민중가요를 불렀듯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에 대한 노래가 아주 많다. 우리 민중가요보다 더 절박하고 애절하고 가슴 아픈 노래들, 그중 몇 곡의 가사 일부를 소개해 본다.

Billie Holiday - Strange Fruit (1939)

 Southern trees bear strange fruit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려요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잎에는 피가 있고 뿌리에도 피가 있어요.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검은 몸이 남풍에 흔들리고 있어요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lplar trees

이상한 열매가 포플러 나무에 매달려 있어요

< 이하 줄임>

 이 노래는 미국의 남부에서 19세기에 심하게 심지어 20세기 중반까지도 행해지던 '린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린치를 가한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는 생각보다 무서운 표현이다. 법에 의한 집행이 아니라 백인들에 의한 사적이고 불법적인 살해행위를 나타낸다. 이 노래에서 말하는 '이상한 열매'는 린치를 당해 나무 위에 목매달려 있는 흑인의 사체를 의미한다. 구글에서 '린치'를 검색하면 나무에 목 매달린 흑인들의 처참한 이미지가 많이 검색이 된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들의 상당수에는 그 시체가 매달려있는 나무 주변에서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한 남녀노소의 백인들이 모여있다. 이 노래는 린치 당한 광경을 시적이면서도 정말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빌리 할러데이의 목소리라서 더 처연하게 들린다.

 

Sam Cooke - A Change is Gonna Come (1964)

I was born by the river in a little tent
나는 강 옆의 작은 천막에서 태어났어요
Oh, and just like the river, I've been running ever since
그리고 강물처럼 그 후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녔지요
It's been a long, a long time coming
길었어요, 오랜 시간 걸리겠지요.
But I know a change gonna come, oh yes it will
하지만 변화가 올 것이라는 걸 나는 알아요, 그래요 그것은 올 거라고요
It's been too hard living, but I'm afraid to die
참 힘든 삶이었어요, 하지만 난 죽기가 두려웠어요
'Cause I don't know what's up there beyond the sky
왜냐하면 하늘 저편에서 무슨 일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요
It's been a long, a long time coming
길었어요, 오랜 시간 걸리겠지요
But I know a change gonna come, oh yes it will

하지만 변화가 올 것이라는 걸 나는 알아요, 그래요 그것은 올 거라고요

< 이하 줄임>

태어나는 곳부터 열악하고 그 이후로 줄곧 고된 삶을 살았지만 희망을 가지며 오래 걸리더라도 변화는 반드시 올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했다.

John Legend - Glory (featuring Common) (2014)                                                                                      

That's why Rosa sat on the bus

그게 바로 Rosa가 버스에 앉았던 이유죠

(Rosa : 1955년 12월 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버스 안에서 유색인종 좌석으로 옮기기를 거부했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

That's why we walk through Ferguson with our hands up

그게 바로 우리가 손을 들고 퍼거슨을 행진하는 이유죠

When it go down we woman and man up

불평등이 벌어질 때 우리 여자와 남자는 일어나요

They say, "Stay down", and we stand up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일어서요

Shots, we on the ground, the camera panned up

발포, 우리는 쓰러졌고, 카메라는 내팽개쳐졌어요

King pointed to the mountain top and we ran up

마틴 루터 킹이 산 꼭대기를 가리켰고 우리는 달려서 라갔어요

< 중간 생략 >

The biggest weapon is to stay peaceful

가장 강력한 무기는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거죠

We sing, our music is the cuts that we bleed through

우린 노래하고, 우리의 음악은 우리가 피 흘리는 그 상처죠

Somewhere in the dream we had an epiphany

우리가 깨달음을 얻었던 그 꿈 어딘가에서

Now we right the wrongs in history

지금 리는 역사에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아요

No one can win the war individually

그 누구도 개별적으로는 전쟁을 이길 순 없어요


2014년 영화 '셀마'는 마틴 루터 킹의 주도했던 1965년 흑인들의 투표권 쟁취를 위한 평화 행진에 대한 이야기이고, 'Glory'는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Best Original Song을 수상한 이 영화의 주제곡이다. 영화제 도중의 공연에서는 영화 포스터에 등장하는 그 장면의 배경인 '에드먼드 페터스 브리지' 모양이 설치된 무대에서 John Legend와 Common 그 외 많은 이들이 동원되어 노래와 함께 영화에 나오는 평화행진을 재연했다. 영화에서 마틴 루터 킹 역을 맡았던 데이비드 오옐러워, 그 영화의 또 다른 출연자 오프라 윈프리 등을 포함한 객석의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쳤고, 그중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언젠가는 변화가 온다고, 자유로운 날이 올 것이라고 하는 이런 노래들이 원하는 그런 날이, 그들이 이런 노래를 그만 부르게 되는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올까? 우리가 더 이상 민중가요를 거의 찾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민중가요를 진심으로 응원해본다.

표지와 마지막 이미지 출처 :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배달, 스팅(Sting)만큼 해봤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