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뜻한 만년필 Oct 30. 2020

기록하지 않은 우리는 역사가 없다.

우리나라엔 왜 빌보드가 없는가?

 우리가 잘 아는 멜*, 벅*, 지* 등의 음원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나름의 순위를 항상 올려놓고 있다. 언제나 갓 나온 신곡들이 상위권에 집중적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실시간 검색순위랑 다름 아니다.

 

 음원사이트들이 이 실시간 순위를 올려놓는 주된 이유는, 아마도 방문객들에게 신상품을 널리 알려서 더 많은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를 끌어내기 위한 호객용, 그것 이상은 없는 것 같다. 어느 날 어느 시점에 실검 1위를 기록한 것이, 그 시간을 조금만 지나면 누구의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고,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다들 알고 있다. "실검이란 것은 말 그대로 실시간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음원사이트를 조금 더 자세히 찾아보면 일간, 주간 차트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공신력이 없는 이런 차트는 찾아보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그것이 갖는 의미도 전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1959년 2월 2일 자 빌보드 Hot 100

 오랜 기간 “빌보드는 남의 나라 순위 아니냐?”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필두로 심심치 않게 우리 가수가 차트에 등장하더니 BTS는 1위까지 기록하면서 빌보드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높아졌고 많이들 아시는 것 같다.


 빌보드는 1958년 8월부터 지금까지 개별 노래의 인기 순위를 매주 집계해서 발표했고 60년을 넘었다. 부럽다. 한 주 동안 어떤 곡이 가장 인기 있는지를 집계해서 보여주는 공식적인 지표를 갖고 있다는 것도 아주 부럽지만, 그것으로 갖게 된 그들의 역사가 더 부럽다. 가끔씩 기억을 떠올려 '아! 맞다. 그때 그 노래가 인기 있었지!' 하는 곡들의 자료를 바로 찾아볼 수 있다. 그즈음 어떤 노래가 차트에 있었고 1위를 몇 주 동안이나 했었다는 것으로 기억 속 그 노래의 위상을 지표로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때 아주 유명했지만, 전성기를 지난 아티스트를 소개할 때 그 아티스트가 당시에 얼마나 인기 있었는지를 설명할 때는 지표가 꼭 필요하다. 예를 들면 “그 가수는 빌보드 1위 곡이 몇 곡, Top 10 곡이 몇 곡이다.” 그리고 특정 곡, 특정 앨범이 얼마만큼의 인기가 있었느냐의 지표로도 필요하다. “몇 주간 1위를 했다.” “차트에 몇 주 동안 머물렀다” “이 앨범은 몇 곡의 1위 곡, 몇 곡의 Top 10” 하는 식이다.


 'King of Pop'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을 예로 위와 같이 설명해 보겠다. (※생전으로 한정함.)

 

 먼저 앨범이다. Jackson 5 시절을 제외하고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마이클 잭슨은 Got to Be There [1972]부터 마지막 앨범 Invincible [2001]까지 총 10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했다. 본격적으로 정상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것은 5번째 앨범 Off the Wall [1979](앨범 차트 3위)부터이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6번째 앨범 Triller [1982]부터는 5장의 모든 정규앨범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빌보드는 단일 앨범의 인기도를 나타내는 지표로도 아주 요긴하다. 마이클 잭슨의 최전성기라고 하는 Quincy Jones가 프로듀싱한 3장의 앨범 성적을 보자.

Michael Jackson의 솔로 5번째 앨범 ‘Off the Wall’ (1979년 발매)

'Off the Wall'에서는 4곡이 Top 10, 그중에 1위 곡이 2곡이다.

 -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1위)

 - Rock with You (1위)

 - Off the Wall (10위)

 - She's Out of My Life (10위)

Michael Jackson의 솔로 6번째 앨범 ‘Thriller’ (1982년 발매)

'Thriller'는 전체 수록곡 9곡 중에 7곡이나 싱글로 발표되었고, 그 7곡이 모두 Top 10에 진입했다. 그중 1위 곡은 2곡이다.

 - The Girl Is Mine(with Paul McCartney) (2위)

 - Billie Jean (1위)

 - Beat It (1위)

 - Wanna Be Startin' Somethin' (5위)

 - Human Nature (7위)

 - P.Y.T. (Pretty Young Thing) (10위)

- Thriller (4위)

Michael Jackson의 솔로 7번째 앨범 ‘Bad’ (1987년 발매)

 'Bad'는 전체 수록곡 11곡 중 무려 9곡이 싱글로 발표되었고, 그중 7곡이 차트에 진입했다.

Top 10에 6곡, 그중에 5곡이 1위를 기록했다.

 - I Just Can't Stop Loving You (1위)

 - Bad (1위)

 - The Way You Make Me Feel (1위)

 - Man in the Mirror (1위)

 - Dirty Diana (1위)

 - Another Part of Me (11위)

 - Smooth Criminal (7위)


 마이클 잭슨의 솔로 경력 전체에서는 14곡의 1위 곡을 갖고 있다(폴 매카트니의 앨범에 수록된 1곡의 듀엣곡 ‘Say Say Say포함). Top 10을 기록한 곡은 무려 28곡이다. 이런 수치들은 마이클 잭슨의 업적임과 동시에 그를 본 적 없는 현세대들에게 King의 위상을 즉시 말해준다.

 오래전부터 TV 프로그램의 하나 또는 특정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순위를 매기곤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우리나라 차트 중에 가장 공신력이 있었던 것은 KBS ‘가요 Top 10’이다. 그나마 가장 관심이 높았고 인기가 있었고, 방송 다음날에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된 거의 유일했던 차트라 생각된다. ‘가요 Top 10’ 순위라고 하면 좀 인정하는 분위기는 확실히 있었다.(※싱글 음반 판매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단일곡들의 인기순위를 어떻게 집계하는지 나는 당시에 참 궁금해했었는데, 얼마 전에 찾아보니 일종의 설문조사로 집계를 했던 모양이다.) 그 프로그램마저도 폐지된 것은 분명 아쉽다. 그런데 방송이 되고 있을 당시에도 나는 ‘가요 Top 10’에 큰 아쉬움이 있었다. 그것은 '5주 골든컵' 때문이다. 아무리 기세가 등등한 곡도 5주간 1위를 하면 그다음 주부터는 차트에서 완전히 강퇴시켜 버리는 이상한 제도가 있었다. 어떤 곡 최정상의 인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지금 이 노래는 과거의 그 노래에 비해 얼마나 더 인기 있는지를 비교할 수 없게 머리를 싹둑 잘라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왜 빌보드를 만들지 못했을까?

 우리는 왜 아직도 갖지 못할까? 만들만한 권위와 권력을 가진 곳에서 그것을 하지 않았거나, 못한 것이 이유겠지만 너무나 안타깝다. 이 문제를 그들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것인데, 노력이 아쉽다. 우리에게도 빌보드(※ 이하의 '빌보드'는 '빌보드' 자체가 아니라 공신력을 가진 하나의 차트를 통칭)가 있었다면 지금 우리는 소중한 자료와 지표들을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긍금하지 않은가? 히트될 당시에 온 나라, 온 방송을 뒤덮던 조용필, 이문세, 이선희, 조성모의 노래들,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노사연 '만남', 서태지와 이이들 '난 알아요', '하여가',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 김건모 ‘잘못된 만남’, H.O.T ‘캔디’, 원더걸스 'Tell Me'의 성적이 궁금하다. 브라운 아이즈, 빅뱅, 블랙핑크, BTS의 노래들은 몇 주나 1위를 했을지 조용필, 서태지의 기록에 얼마나 접근했을지, 이미 넘어섰는지, 아직은 못 미친 건지 정말 궁금하다.


 나의 아들딸에게 조용필이 왜 가왕인지를, 서태지와 아이들은 당시에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들의 노래가 당시에 얼마나 히트를 했었는지, 어떤 앨범은 다른 앨범에 비해 얼마나 더 인기가 있었는지를 설명하려고 하면 일단 막막해진다. 십수 년, 몇십 년 지나 진부해진 노래를 들려주는 것으로는 절대로 설득되지 않는다. 아무리 신중하게 선곡을 해봐야 반응은 항상 동일하다.

“아~ 옛날 노래."

 이런 설명이 성공하려면, 지금 세대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도전하고 있고, 과거 레전드들도 도전했던, 같은 목표에 대해 그들 각자가 이룩한 결과물을 비교해야 이해가 되는 것이다. 우리에겐 이런 것이 없으니 설명은 길어지고 장황하며 설득력은 없다.


지금이라도 우리만의 빌보드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소중한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지금도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전 14화 스트리밍이 가져온 빌보드의 변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