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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만년필 Sep 25. 2020

소비자 시대의 완성(?)

음악산업에서의 권력이동 #5

 음반의 판매가 급감하던 초기에 음반제작자들은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뉴스에서는 소리바다가 침해하는 저작권 문제가 거론되는 일이 많았고, TV토론에서도 생산자들(음반 제작자 때로는 아티스트까지)은 소리바다의 폐해와 위법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가요계는 비용 지불 없이 소비되는 자신들의 음악에 평점심을 잃기도 격분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오마이 뉴스

 생산자들의 논리는 크게 2가지였다. 첫째는 나쁜 음질로 음악을 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꼭 CD를 구매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저작권 침해 문제였다. 저작권 문제는 분명히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본 그들의 다른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었다.


 이미 MP3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을 다시 CD의 세상으로 돌려보내자는 것인가? 좋다는 음질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사람의 귀로는 구별도 안되었다. 또한 음질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 오직 MP3 뿐인가? 재생기기, 스피커, 이어폰, 헤드폰의 품질은 음질에 더 한 차이를 가져온다.


 MP3는 이미 충분히 보급되었다. 크게 차이가 난다는 그 음질을 제외하면, CD는 MP3 앞에서 명함도 못 내민다. CD플레이어는 아무리 휴대용으로 제작된 것이라 하더라도 CD라는 규격의 매체를 재생해야 하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MP3플레이어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크고 투박했다. 여러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여러 장의 CD를 들고 다녀야 하며, 그래서 겪게 되는 CD를 계속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더해진다. CD가 음질이 좋다고 하지만 라디오에서도 가끔씩 CD가 튀는 걸 듣곤 했는데 전문가들도 그런 건 어찌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이점에서 CD는 또 감점을 받는다. 파일 음악은 애초 손상된 파일이 아니라면 절대로 튀는 일이 없다.

CD플레이어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렇다 저렇다 갑론을박이 요란했지만 모든 논란의 근원은 하나였다. 돈을 주고 음악을 사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소리바다는 결국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완전히 잃어버렸던 것은 되찾아도 예전 그때 그대로이긴 힘들다. 생산자들이 법적 투쟁 끝에 되찾은 절충안은 ‘음원이라는 생소한 이름과 함께 돌아온다. MP3플레이어가 너무나 대중화되어 있었으니 MP3라는 대세를 거스를  없었고, 그에 적합한 콘텐츠를 판매하는  외에 다른 옵션(예를 들면 CD 재활성화 같은) 있을  없었다.

 

 여기저기 유료 음원사이트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연이어 통신 기능을 가진 음향기기(스마트폰)가 등장하면서, MP3를 스마트폰에 저장하기보다는 스트리밍이 일반화된다. 그 많던 레코드샵은 모두 다 사라지고 지금처럼 몇 개의 음원 회사들로 시장은 재편되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MP3플레이어는 CD 레코드샵을 먹었고, MP3플레이어는 스마트폰에게 먹혔다.”


소비자의 시대는 완성된 것일까?”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20세기에 열심히 음악을 들었다. 21세기에도 음악을 듣고 있지만, 같은 일이 너무 달라졌다. 무엇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저렴해졌다.

애플 뮤직 (출처 : Pixabay)

 우리는 웬만한 음원 회사들을 다 안다. 멜*, 벅*, 지* 등등 비슷한 가격에 서비스도 다를 게 거의 없다. 음악의 가격은 왜 이렇게 저렴해진 것일까?

  MP3플레이어 시대였던 음원 사이트 초기에는, 음반의 생산비, 유통마진의 소멸 등으로 가격 인하의 여지가 많이 생기긴 했을 것이다. 물론 새로 유통을 담당하게 된 IT기업과 수익을 배분해야 했겠지만, 그러나 그보다는 소리바다를 겪으면서 공짜 음악에 익숙한 소비자들을 구매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을 것이다. 또 소비자들은 이미 너무 많은 공짜 음악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것이 가격을 높게 책정하기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음원 사이트

 저렴하게 시작했으니 딱히 가격을 높일 만한 구실도 없었겠지만, 지금의 음악이 저렴한 이유는 아무래도 구매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제 음악은 구매하는 게 아닌 것이 되었다. 대여하는 것일 뿐이다. 월정액 요금을 내는 동안은 창고 전체를 내어주는 식이다.

 

 음반을 사던 그때도 좋았다. 레코드샵을  , 거기에 서서 고를 , 집으로 들고  , 포장을 벗길 , 그런 설렘과 기쁨의 소확행은 음반이라는 이름과 운명을 같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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