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산업에서의 권력이동 #에필로그
“마음대로 소설을 한번 써 봅니다.”
80년대까지 LP > 90년대 CD > 2000년대 MP3 > 2010년대 스트리밍...
80년대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최근 30년은 기술의 발전과 진보 탓에 대략 10년 주기로 빠르게 변해왔다.
스트리밍이 음악산업 진화의 끝일까? 이 방식은 '디지털화된 콘텐츠산업'의 종착역일까?' 역사 속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변화를 인지하기 힘들다. 현재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알 수도 없다. 우리가 어떤 과정에 있는지, 다음 단계는 어떤 모습일지를 예측하기도 대단히 어렵다. 막연히 '지금 이대로 그냥 계속 가는 것 아닌가?'가 가장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경험이 말해주었다.
음반을 많이 구매했었던 나는 지금의 방식이 저렴해서 좋다. 내가 음원사의 모든 음악을 듣는 건 아니지만, 예전 CD 1장의 가격으로 매월 듣고 싶은 음악을 언제든 듣는 지금의 방식은 가성비면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현재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는 월정액 비용을 지불하면 콘텐츠를 무한 제공하는 NETFLIX의 방식과 동일하다. 무한이라는 단어에 솔깃하여 횡재라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소비자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온라인을 이용하는 콘텐츠 산업들은 결국 같은 형태의 서비스를 하게 되는 것인가 보다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음악의 소비방식은 영화와 같지가 않다.
NETFLIX의 과거 모습은 비디오 대여점이다. 일반인은 대개 영화를 자신이 본 것과 안 본 것으로 구분한다. 대체로 영화는 한 번만 본다. 두 번을 보는 일도 드물다. 그래서 예전에도 비디오는 판매가 아니라 대여가 더 활성화되었던 것이다.
음악은 다르다. 음악은 듣고 또 듣고, 욕망이 다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은 원래부터 대여가 아닌 구매가 기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는 생산자들이 다른 마음을 먹는 순간 상황이 또 돌변할 수 있음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10여 년 간의 MP3플레이어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음악 파일을 충분하게 소유하고 있었다. MP3플레이어에 손수 음악을 입력하고 삭제하고 했다. 소리바다가 살아 있을 때 그랬고, 음원 사이트 초기에는 다운로드가 많았다.
"생산자들은 늘 주어진 상황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택한다."
소비자들이 이미 다량의 MP3 파일을 충분히 소유하고 있다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 무엇일까? 바로 스트리밍이다. 음악 자체가 아니라 편리함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지금 음원 사이트들은, 스마트폰 통신사들처럼 경쟁사 회원을 뺏어오더라도, 더 많은 회원을 확보하여 월정액 요금을 받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스트리밍은 스마트폰이 없이는 불가능한 서비스이고, 스마트폰 시대에 최적화된 서비스이고, 구동 기기에 저장과 삭제의 번거로움을 없앤 현재로선 가장 편리한 음악 서비스이다. 하지만 이는 스트리밍의 반쪽 얼굴일 수 있다.
만약 음원 공급자들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두 가지 방안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스트리밍의 가격을 인상하는 것, 다른 하나는 스트리밍을 중단하는 것이다.
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스트리밍은 현재의 음악시장 상황에서 최대한의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역습을 위한 일보 후퇴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잃었던 주도권을 되찾을 방편이 될 수 있다. 스트리밍은 두 얼굴을 가진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음원사들이 맘먹으면 언제든 스트리밍을 종료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은 다시 음원 구매에 나설 수밖에 없다. 어쩌면 어떤 새로운 플랫폼에서 일지도 모를 일이다.
"설마 그렇게 할까?"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생산자들이 예전의 황금알 낳는 거위를 추억한다면, 소리바다 사태를 기억하고 있다면, ‘와신상담’ 언젠가는 결행을 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만약 언젠가 '스트리밍 중단'이라는 반격을 노리고 있다면, 현재의 스트리밍 시대는 소비자들의 수중에서 음원 보유를 가장 자연스럽게 효과적으로 줄여가는 과정일 수 있다. 이것이 완성되면 음원을 다시 비싸게 팔 수 있을 것이다. 나라면 그럴 것 같다. 권력의 중심축이 아주 서서히 생산자 쪽으로 다시 이동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뭐 어떤 방식이든 미래의 우리는 또 열심히 음악을 듣고 있을 것이다.
비용을 더 내든, 덜 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