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의 경험
선택의 인생
순간순간 우리가 하는 선택은 어쩌면 물방울 같다. 안개 입자처럼 미세한 것도, 흐름을 바꾸는 큰 물줄기도 있고... 그런 선택이 낳은 무수한 물방울과 물줄기로 각자의 삶은 결정된다.
작게는 식사 메뉴부터, 친구를 만나고, 취미, 진학, 취업, 사업 등의 모든 일에 우리의 선택은 개입하고, 하루 중에도 끊임없이 그것들로 우리의 일상은 결정된다. 알람이 울리면 바로 일어날지 5분만 더 잘지, 점심으로 뭘 먹을지, 아메리카노로 할지 라테로 할지, 주말에는 운동을 할지 친구를 만날지...
당연한 얘기지만, 지금 살아내고 있는 우리 각자의 삶은 그런 셀 수 없이 많은 선택 위에 펼쳐지는 것이다. 땅을 치며 하는 후회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찔함도, 두고두고 미소 짓게 하는 선택도 몇 개씩은 있기 마련이다.
탁월한 선택
나를 스쳐간 수 없이 많은 선택들 가운데, 스스로를 한없이 칭찬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2004년 2월 7일 토요일 오후에 있었다. 그날의 선택이 가져온 변화가 직장을 제외한 내 인생과 일상의 반을 차지했고 그것이 내가 시간, 환희, 좌절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에게로 인도해 주었다.
아주 맑은 날이었고, 바람도 없었다. 겨울의 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을 시기지만, 계절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따뜻했던 기억이다. 들떴던 기분 탓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 며칠 전에,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Daum 카페 한 곳에 가입을 했다. 하지만 그 후로 계속 망설이고 망설였다. 그것은 설렘과 호기심 뒤에 있던 도전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주 5일 근무가 시행되기 전이어서, 그날 오전에는 근무를 했고, 점심을 먹고 퇴근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마트에서 샀던 저렴한 글러브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고, 야구를 막 시작한 대여섯의 앳된 어른들과 처음 회우했다. 같이 스트레칭을 하고 캐치볼을 시작했다. 표면이 가죽이고, 모양만이 아닌 실제 실밥이 있는 진짜 야구공을 처음 던지고 받아본 날이다. 야구가 아이들만 하는 놀이도, 야구가 직업인 어른들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게된 날이다.
‘그깟 사회인 야구를 시작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호들갑인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다. 아닐 수도 있지만, 야구의 불모지에 사는 내겐 그랬고, 적어도 요즘 청년들에게는 분명히 그런 것 같다. 나는 내가 야구장으로 나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야구는 정말 재미있는 것'으로 각인해둔 '내 유년시절의 기억'을 꼽는다. 요즘 청년들에겐 이것이 결핍되어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의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야구가 재미있는 경기라는 기억, 친구들과 함께 야구를 했던 기억... 그들에겐 이런 기억이 전혀 없다.
프로야구가 갓 생기고, 그것이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던 때에 나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의 방과 후는 곧 노는 시간이었고, 다른 그 어떤 종목도 감히 넘볼 수 없었던 프로야구의 높은 인기 탓에 남자아이들이 하는 놀이 중의 최고는 명백히 야구였다.
많은 친구들이 거의 매일 학교 운동장에 남았고, 편을 나누어, 자기 팀을 자이언츠 또는 베어즈 등으로 명명하고는 고무공, 테니스공으로 야구를 했다. 모두가 글러브를 가진 것이 아니어서 대체로 글러브는 부족했고, 수비를 마치고 공격하러 들어갈 땐 그 자리로 수비하러 올 상대팀 친구를 위해 자기가 쓰던 글러브를 운동장 바닥에 두고 들어가곤 했다. 배트 하나로 양 팀 모두가 돌려가며 사용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그런 일들은 모두 추억이 되었지만, 그래도 야구란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놀이인지를 알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을 분명하게 기억 속에 담아둘 수 있었다. (*그때도 야구는 아이들의 놀이이고, 야구하는 어른은 프로야구선수뿐인 것으로 알았다.)
텅 빈 운동장
내가 연차를 내고 쉬는 날, 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가끔 운동하러 갈 때가 있다. 수업이 다 끝났을 오후, 거기엔 아무도 없을 때가 가장 많다. 있어도 기껏 2~3명 정도의 아이들이 공을 차며 노는 것이 가장 흔한 광경이다. 야구를 하는 어린이를 만나는 일은 정말 드물다.
우리 시대는 초등학생에게조차도 방과 후 여유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방과 후란 학원을 일순(一巡)하는 시간일 뿐이고, 아침을 먹은 직후에 맨 가방은 저녁을 먹기 직전에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다. 마치 국가 간에 과도한 군비경쟁을 하듯, 영어와 수학으로 아이들을 치열하게 경쟁시켜 놓았다. 운동장을 제대로 한번 달려보지도, 야구공 한 번 만져보지 못하고 생활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안타깝다. 어릴 때 맘껏 뛰어놀았던 우리가 자신의 아이들은 그것을 누리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봉쇄해 버린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 청년인 이들의 유년시절도 다르지 않다.
회귀를 만드는 기억
나는 야구에 심취한 삶을 살았다. 팀과 선수들의 이름과 온갖 기록을 꿰고,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중계를 정말 열심히 본다. 머릿속에 자꾸만 야구게임이 떠올라, 다른 게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직 야구게임만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PC와 Playstaion을 넘나들며 Hardball 6, Triple Play, High Heat, MVP Baseball, MLB the show까지 다양한 야구게임을 섭렵해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주는 크나큰 즐거움도 내가 직접 뛰는 야구에 비할바가 되지 못한다.
사회인 야구를 시작한 뒤로 오랜 기간 그것을 즐기면서도 계속 후회했던 것이 한 가지 있다.
‘아~ 좀 더 일찍 시작할걸!’이 그것이다.
이제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더 나이 들어 이걸 그만두면 무슨 낙으로 살아갈까'를 벌써 걱정하고 있다. 그만큼 야구는 재미있다. 오감을 만족시킬 취미를 찾고 있다면 지금 당장 주변에서 야구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보길 권하고 싶다.
아이들이 활자, 모니터, 휴대전화만을 뚫어지게 보며 하루하루를 보내기보다는 파이팅을 외치고, 내 공을 기다리는 글러브를 향해 공을 던지고, 배트로 공을 날려 보내고, 베이스 사이를 내달리고, 플라이볼을 잡으려 하늘을 보고, 야구공을 쫓아 힘껏 질주하며 자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도 야구가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다. 그러면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야구를 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은 어른이 된 그들을 반드시 야구장으로 다시 불러내 올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