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mise is promise
약속은 약속이다(Promise is Promise)
"약속은 약속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좋은 말인 듯도, 당연한 말인 듯도 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많이 접했을 듯한 저말은, 여러 상황에 쓰일 수 있는 말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저 말을 사용하는 상황은, 대체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누군가가 사용하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당신이 약속했었잖아! 그럼 지켰어야지”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불법 사채업자의 협박을 받는 무서운 상황이 겹쳐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같은 말을 어려운 상황에서 약속을 지켜낸 사람이 할 때는 느낌이 확 달라진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에서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지능은 좀 떨어지지만, 누구와의 약속이든 항상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영화 중반부, 포레스트 검프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버바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새우를 너무나 좋아하는 버바는 군 복무를 마치면 고향에 돌아가서 새우잡이를 하는 것이 꿈이다. 그때 같이 동업을 하자고, 버바가 포레스트에게 제안을 하고, 포레스트는 같이할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전투 도중에 버바는 전사하고 만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같이 동업하기로 약속한 친구가 죽어버렸고, 어차피 그건 말로만 했던 것이니, 그 약속도 사라졌다고 우리는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포레스트 검프는 다르다.
군 복무를 마친 포레스트 검프는 버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버바의 고향으로 간다. 가진돈을 모두 투자해서 배를 사고,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새우잡이로 큰 성공을 거둔다. ‘버바 검프 새우’라는 회사를 만들고, 수익창출에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동업자 버바--아이디어는 제공했다고 할 수 있겠다--의 몫이라며 버바의 가족에게 거액을 전달한다.
남들이 비웃어도 죽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힘든 그 약속을 우직하게 끝까지 지켜내는, 순박한 포레스트 검프의 모습이 주는 뭉클하고 진한 감동이 있다. 그렇게 약속을 지키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이 포레스트 검프가 자주 하는 말이 바로 “Promise is promise(약속은 약속이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이런 미담을 가끔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지방의 중소도시에 살고 있다. 중소도시일 뿐만 아니라, 관내에 소재하는 초, 중, 고, 대학교를 통틀어 학원 야구를 하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는, 그야말로 야구의 불모지다. 기본적으로 야구를 고려해서 만들어진 장소는 애당초 없다. 야구의 저변이라곤 전혀 없는 이런 곳에서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겪었던 어려움이 참으로 많지만, 그중에서도 야구를 할 만한 장소를 찾는 것이 가장 크고 항상 어려운 문제였다.
너무 작은 새 학교 운동장
주변에서 가까운 운동장이라고 하면 우리 중 십중팔구는 근처 학교 운동장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 학교들의 대부분은 오로지 학업만을 중시해 가는 최근의 경향에 맞춤 제작되어 있다. 직선, 대각선, 이렇게 저렇게 아무리 끝과 끝을 이어도 직선 100미터 트랙조차 나오지 않는 조그마한 운동장이 대부분이다.
딱딱한 공을 사용하고, 그 공이 강하게 제법 긴 거리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야구라는 운동은 생각보다 훨씬 큰 공간을 필요로 한다. 수비를 하기 위해 선수들이 자리 잡는 범위 만으로도 제법 넓은 면적이 필요하지만, 홈런으로 경기장을 벗어나는 공이 내려앉는 곳의 안전까지 확보되어야 하고,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는 파울볼을 대비해서도 야구는 경기장 자체에 더하여 넉넉한 여유공간(프로야구 경기장의 관중석 정도)이 필수적이다. 경기 도중에 야구공이 학교 건물을 향하거나 담장을 넘어갔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이런 문제들을 종합해 보면, 도심의 주택가에 있는 학교들은 모두 야구장으로는 부적격이다.
이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도심에서 떨어진 교외의 학교들을 물색해야 했고, 30~40분에서 1시간, 때론 그 이상 소요되는 곳이라도 기꺼이 달려갔다. 우리 눈에 야구가 가능할 것 같은 학교 운동장을 겨우 발견했다고 해도, 학교 측의 사용허가를 받는 것은 넘어야 하는 또 다른 난관이었다. 기본적으로 성인 남자들로 구성된 무리를 환영하는 곳은 없다. 학교는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우선 이들 사내들은 제아무리 신경을 쓰고, 마무리 청소까지 한다고 해도 반드시 흔적(담배꽁초, 휴지조각, 물병)을 남기게 되어있다.
게다가 야구는 기물을 파손한다는 인상이 뿌리 깊다. 운동장 사용권 획득을 위해 머리를 조아리는 시점에는, 운동장 뒷정리를 완벽하게 할 것이라, 굳게 다짐하지만 그건 화장실을 가기 전이다. 시간과 반복은 필연적으로 나태함과 느슨함을 불러오게 된다. 아무튼 이런저런 설움과 어려움 속에 인근 교외를 동서남북 10여 년 떠돌았다.
드디어 야구장을 가지다.
그렇게 방황하던 기간에 야구인들은 야구협회를 출범시키고, 관내 야구동호회들이 모두 참여하는 대회를 개최하고, 야구장을 갖기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그 결과 시와의 협의를 통해 2개의 축구장으로 사용하던 공터를 활용하는 야구장을 만들게 되었다.
협회는 높이 1.2미터, 폭 5미터의 철재 프레임 수십 개를 이어 붙여 만든, 펜스를 경계로 하는 야구장을 만들었다. 비록 축구장 2개의 사용료를 시에 납부해야 하고, 잔디구장도 아니지만,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가까운 도심에 맘 편한 장소가 생긴 것만으로도 우리 야구인들에게는 너무나 기쁘고 감격적인 일이었다. 전용이 아니란 것이 좀 아쉽긴 했지만 오랜 고생과 노력 끝에 소중한 야구장을 갖게 된 것은 꽤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전용이 아니면 어떤가? 어차피 야구하는 것은 똑같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시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사용하겠다고 통보가 오면 당일 우리가 야구할 장소를 잃음에 더해, 운동장을 비워야 했다. 수십 개로 해체한 펜스를 걷어서 운동장 가장자리로 옮겨야 하는 문제가 함께 다가온다. 우리가 그곳에서 다시 야구를 하는 날에는 반대로 다시 펜스를 또 설치해야 한다.
시에서는 매년 가을에 지역축제를 개최한다. 그때마다 우리 야구장을 임시주차장으로 활용해 버린다. 축제가 보름간이나 이어지는 탓에, 그 기간 중에 반드시 한번 이상의 비가 오는데, 비로 질퍽해진 맨땅에 차량들이 만드는 수없이 많은 바퀴 자국은 야구장에, 우리 가슴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다. 우리가 그곳에서 다시 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펜스 이동 설치에 더해 오랜 시간의 평탄작업을 위한 수고가 더 요구되는 것이다.
사회인 야구 인구가 많이 증가하며, 지방 구석구석까지 야구장의 수요가 많았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지방도시들이 그 주변 읍면군으로 둘러싸여 있듯이, 내가 사는 곳도 읍면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지금은 그 읍면군의 대부분이 전용야구장을 갖고 있다. 거의가 잔디구장이기도 하다. 참으로 부럽고 아쉽다.
내가 사는 곳만 바다에 둘러싸인 섬처럼 아직 전용야구장이 없는데...
야구장에서는 정장 입은 사람이 낯설다.
이런 우리들에게 실낱같은 빛줄기가 기웃거릴 때가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야구복을 입은 어른을 보는 것이 낯선 만큼, 야구장에서는 정장을 빼입은 사람이 낯설다. 계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철새들처럼, 때가 되면 정장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반드시 야구장에 나타난다. 총선거, 지방선거를 가리지 않고 그들의 계절에 그들은 찾아온다. 그리고 하나같이 전용야구장을 약속한다.
야구장에 나타난 그들이 한 표를 부탁했다는 이유로 내가 그들에게 표를 던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당선된 것이 아니라서 낙선자에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당선된 이가 그 누구든 우리 야구장을 다시 찾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야구장에 대한 그들의 일시적이고 의도적인 관심도 지나간 계절과 함께 사라지고는 없는 것이다.
그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그들의 약속대로라면, 우리는 이번 주에 어느 야구장으로 갈지 선택의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지만, 우리 시의 야구인들은 여전히 같은 곳에서 뛰어놀고 있고, 가끔씩 펜스를 옮기고 짓밟힌 바닥을 정비한다.
공약은 공약일 뿐
동화, 위인들의 전기 등의 여러 일화를 통해, 어릴 때부터 약속의 무거움에 대해 교육받으며 자라서인지, “약속은 약속이다”가 익숙한 명제지만, “약속은 약속일뿐”이라고 단 두 글자만 바꾸면, 일순간 약속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선거문화가 많이 개선되어, 과거에 비하면 지키지 않을 약속을 남발하거나, 공약이라는 사탕발림에 투표하는 행태는 많이 달라진 것 같기는 하다. 유권자로서도 공약이란 것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그런 약속보다는 그들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자세히 보고, 어떻게 일할 사람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서 투표를 하는 것만이 옳은 것 같다.
그래서 항상 그렇게 투표하고 열심히 펜스를 옮긴다.
* 표지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