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에 충실해야 좌절을 피한다.
경영학
대학교의 학과 중 하나인 경영학과. 대다수 현대인들에게 ‘경영학’이란 이름은 꽤나 친숙하다. 그런데 경영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는 지를 아는 사람도 그만큼 많을까?
"경영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요?”,
"경영학? 그거 경제학이랑 비슷한 거 아니에요?”
라는 질문을 적잖이 받곤 했다.
경영학과는 문과에서 갈 수 있는 학과 중에, 법학과만큼이나 익숙하고, 학생들이 선호한다. 학생들이 선호한다는 것은 취업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학부에서 무엇을 전공했든 상관없이 모두가 뛰어드는 비슷한 취업전선에서는 실제로 어떤 변별력을 갖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채용을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등에서 배운 것보다는 경영학에서 배운 것이 당장 사무실에 앉혀놓고 일을 시키는데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도 같다.
회계(會計)는 중요
더 오래전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경영학은 대체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 기업들과 함께 성장했고, 그즈음 대학들에 학과도 생겼으니, 비교적 역사가 짧은 학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만 가는 기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현장에서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들을 학문화한 것이라, 역사는 짧지만 아주 실용적이고 유용한 학문인 것은 확실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경영학은 기업의 경영에 필요한 것들을 몇 가지로 대분류 한 세부 전공들을 배우는 학문이다.
- 환경 분석과 장단기 목표 설정, 기업 내 자원배분 등에 관한 경영전략
- 자금조달과 투자에 관한 재무관리, 투자론
- 제조업의 생산에 관한 생산관리, 품질관리
- 고용과 노동 방식에 관한 노무, 인사, 조직
- 생산자와 소비자 간 재화, 용역의 이동과 판매에 관한 마케팅
등을 배운다. 이런 것에 더하여 꼭 배우는 필수과목이 있는데, ‘회계(會計)’다.
회계를 통해 기업의 재무상태를 보여주는 재무상태표와 일정 기간 동안의 경영성과를 보여주는 손익계산서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외부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정보가 되고, 내부의 경영진에게 의사결정의 중요한 자료가 되니, 이를 읽고 이해하고 작성하는 능력은, 기업에서는 당연히 아주 중요하다.
나는 회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어쩌면 깨우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고, 큰 문제의식 없이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회계라는 이름이 붙은 과목을 딱 3개 수강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1학년 때 친절한 선배들의 권유로 '회계원리'를, 군 복무를 마친 후 복학해서는 '재무회계', '원가회계'수업을 들었다.
회계를 배웠지만 회계를 못 배웠다
회계라는 것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는 삶을 살다가, 대학 1학년 때 '회계원리"라는 수업을 들으며 그것을 처음 만났다. 그때 회계원리를 강의하신 분은 나이 지긋하신 노(老) 교수님이셨다. 고등학교 때 국사교과서 어느 한 페이지 한 귀퉁이에서 본 듯한, 고려시대 송도에서 송상들이 사용했다는 복식부기인, '송도사개치부법(松都四介治簿法)'의 우수성에 대해 한참의 시간을 할애하여 설명하셨다. 기업회계의 일반원칙들을 신뢰성, 명료성, 충분성 등등 하나하나에 대해서도 매우 자세하게 설명을 하셨다. 교수님께서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거야 얼마든지 좋지만, 문제는 대학의 한 학기라는 것이 4개월이 채 안될 만큼 짧다는 데 있다. 대학노트 10페이지 정도 분량의 필기를 마치자 한 학기는 끝이 났다. 교재로 봐선 정말 도입부 중의 도입부 정도의 진도만을 나간 것이다. 나는 회계원리를 들었지만 회계의 원리에 대해 아무것도 알게 된 것이 없었다.
복학을 한 나는 놀랍고도 불행한 경험을 한다. 재무회계 수강 신청을 했다. '회계원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데 더 깊이 있는 재무회계를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를 잠시 걱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재무회계를 가르치신 분은, 1학년때 우리에게 '회계원리'를 강의하셨던 분과 같은 분이셨고, 한 학기 내내 나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기시감(旣視感)'이었다.
1학년 '회계원리' 수업 때 배운 내용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딱 그만큼의 필기를 마치자, 한학기 '재무회계'는 끝이 났다. 회계원리를 수강했지만, 회계의 원리를 배우지 못했고, 재무회계를 수강했지만 재무회계는 맛도 보지 못했다. 친구들과 "우린 2만 원짜리 교재를 사서 1천 원어치만 배운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다. 학생으로서 탐구를 게을리했음을 탓할 수도, 운이 없었음을 탓할 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에는 교재 전체의 대략 5% 정도, 책의 도입부에 불과한 적은 시험 범위를 공부하고 그것으로 시험을 보고 적당한 학점을 받아서 편하다고 심지어 좋아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것이 큰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 나를 찾아온다.
입사 후 4년가량이 지났을 무렵, 새해와 함께 회계부서로 발령이 났다. 회사에서는 한 부서에서 어떤 일을 배우고 그것과 같이 지내다 보면 어느 날 다른 부서로 옮기고, 거기서는 또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일을 배우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새로운 부서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도 하고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된다. 설상가상 윗분들의 “저 친구는 경영학 전공이니 회계는 잘하겠지"가 나를 향했다.
공교롭게도 결산을 목전에 둔 시점에, 회계부서로 발령받은 나는 큰 시련에 빠진다. 부서의 인원이 적었고, 그 안에서 각자가 도맡아야 하는 부분이 명확했다. 실전에서 나는 힘겨웠다. 각 계정의 의미, 내가 하는 회계처리의 적절성, 결산에서 내가 해야 할 일, 무엇보다 내가 더듬더듬 행하는 수많은 분개(分介)들이 어떤 의미로, 재무제표에는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로 인해 결산이 지연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때도 그 후로 한동안 이어진 고달픈 실전을 겪고서야, ‘회계원리’ 수업에서 깨우치지 못했던 회계의 원리를, 거의 15년이 더 지난 후에야, 뒤늦게 깨우칠 수 있었다. 그때를 내 직장생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새로 꾸리고 있는 팀이 아니라면 포지션별 주전 선수가 이미 있다. 종목에 관계없이 단체경기는 대략 상황이 비슷할 것 같기도 한데, 경험이 없는 신입에게, 야구는 특히 더 진입장벽이 높은 것 같다. 프로 야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인 야구에서도 실력으로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는 한 신입이 설 자리는 잘 생기지 않는다.
야구 기술의 습득은 아주 어렵다
야구는 철저하게 분업화되어있고 포지션별로 역할이 분명하고, 요구되는 역량도 확실하다. 초보자에게 투구, 송구, 땅볼 포구, 뜬 공 잡기, 스윙, 주루, 슬라이딩 등 야구의 많은 세부 기술은 익히기가 아주 어렵고, 그것에 능숙함을 더하는 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실전을 대비한 반복되는 연습이 너무나 중요하고 개인의 적극성도 필수적이다. 한 포지션을 목표로 한다면 필요한 역량을 빨리 갖추어야 한다.
후보 생활은 힘들지만 필요하다
경험은 없지만 의욕이 넘치는 신입이 가끔씩 나타난다. 비시즌이라면 다 함께 모여 연습을 하는 기회가 제법 있지만, 시즌이 시작되고 나면 경기일정, 장소 섭외 등으로 인해 실력을 쌓을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각자의 생업으로 인해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아무튼 경기전 대략 1시간 전부터 몸 푸는 정도가 유일한 연습시간이 되고, 경기에 돌입하면 그들에게 허락되는 것은 벤치뿐이다.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은 꽤나 인내를 요구한다. 이것이 한두 달 이어지면 슬슬 한계점이 오기 시작한다. 그 시간이 3~4개월로 더 길어지면 화도 난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야구를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 벤치에 앉아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데, 소외된 것 같기도 하고, 동료들을 보고 있으면 별로 잘하는 것 같지도 않고, 본인이랑 별 차이 없는 같기도 하다. 그래서 본인의 벤치 신세가 납득되지 않지도 않는다. 지금 당장 경기에 투입되어도 충분히 그들만큼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팀의 감독도 벤치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는 신입을 지켜보면, 인지상정(人之常情), 경기에 투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임감도 느낀다. 하지만 사회인 야구에서, 감독이 신입을 경기에 투입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신입 길들이기’가 아니라, 그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를 투입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프로야구에서의 신인과 사회인 야구에서의 신입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신인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만 하면 되지만 신입은 야구를 못해본 사람이다. 그런 그를 경기에 투입하고자 한다면,
- 신입 타석의 아웃카운트는 그냥 포기한다.
- 수비 때 공이 신입에게 가더라도 어쩔 수 없다.
- 혹시 대량실점의 위기를 유발해도 감수한다
이런 생각을 넘어서는 각오를 해야 신입의 투입이 가능하다.
거기에 실력이 분명히 더 뛰어난 누군가를 빼야 한다는 전제가 필수적으로 깔린다. 일종의 모험수를 두는 것이니, 같이 경기를 뛰는 다른 선수들의 공감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렇게 경기 내내 기회를 엿본다. 게다가 특별히 오랜 수련이 필요한 투수나 포수로는 아예 출전이 불가능하다. 타구가 많이 가는 포지션도 안된다. 비교적 먼 거리 송구를 해야 하는 내야 포지션(3루수, 유격수)에도 투입이 어렵다. 팀원이 던지는 공을 많이 받아내는 포지션도 안된다. 이런저런 고려에 고려를 하다 보면 선택지는 대략 우익수와 2루수 정도로 제한된다. 거기다 시작하자마자 포기하는 경기는 없으니 선발 투입은 어렵다.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박빙인 경우도 안된다.
경기 시작 후, 끊임없이 신입의 교체 투입 시점을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경기가 중반을 넘어간다. 고민했던 모든 난관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신입에게 어렵게 교체출전의 기회가 오게 되지만, 공을 크게 벗어나는 헛스윙만 몇 차례 하다가 들어오거나, 수비에서는 에러를 하거나, 어이없는 주루사를 당하고 하는 것이, 신입에게서 연출되는 장면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실수의 충격은 본인에게 가장 크다
특별한 사고 없이 경기를 마치는 행운도 있을 수 있지만, 팀의 승리를 날려버리거나, 대량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는 큰 실수를 하는 불운이 올 수 있다. 경험에 따르면, 경기중에 신입들이 하는 실수는 대개가 치명적인데, 이유는 실수를 했을 때 경험 미숙으로 인해 뒷수습까지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실수는 누구든 어떤 상황에든 할 수 있으나, 단체 경기인 야구에서 수비 도중, 특히 주자가 몇 있는 상황에서 하는 실수는 다른 종목에서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골프에서 오비를 하거나, 농구에서 턴오버를 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어쩌면 축구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하거나 자살골을 넣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런 것은 팀의 승패에도, 전 팀원에게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정작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좌절하는 것은 본인이다. 그것은 그 순간 동료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게 하고, 그 장면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 오는 출전 기회도, 경기중에 공이 자신을 향하는 것도 두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성급하게 운동장에서 뛰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고, 인내하면서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지겨운 벤치를 벗어나는 왕도가 또한 바로 연습이기도 하다. 개인 연습을 꾸준하게 열심히 하면 실력이 늘 수도 있는데, 그것을 실천하는 신입은 극히 드물다. 벤치에 있을 때도 팀원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자신의 기회를 준비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출전의 기회는 환희가 아니라 재앙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TV 중계를 통해 접하는 다양한 종목에서, 우리는 수시로 새 얼굴을 만난다. 그중 탁월한 선수에게 해설자들이 '신인답지 않다.'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것을 본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가장 이상적인 신인은 신인스러움이 비치지 않는 신인이 아닐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자신감이 고립되지 않도록 엄호하는 철저한 준비와 반복적인 연습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사회로 진출하려는 학생들도 그것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고.
덧붙여 그런 학생들을 돕는 조력자들에게도 같은 수준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겪게 될 실전이 그들에게 시련이 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노력 말이다. 나에게 회계를 가르친 것도, 가르치지 않은 것도 아닌 그때 그 교수님을 약간 원망하며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다면, 그들이 더 나은 선생님을 만날 기회를 빼앗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를 많이 생각했었다. 그런 교수는 모집단과 비교하면 극히 일부이겠지만, 누군가에게 배움을 주는 직업은 자신이 정년을 채우는 동안 오히려 학생들에게서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반문해봐야 할 것 같다.
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역할이 정해지면 그에 맞는 자격과 역량을 갖추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준비하는 시기에는 열심히 준비하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 즉시 배움과 연습을 다시 시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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