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꼭 해야 한다 나 아닌 누군가가

위치(포지션) 정하기 - 포수 정하기

by 따뜻한 만년필

우리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학교에 간다. 어쩔 수 없이 경쟁에 노출되기 시작하고, 삶은 고달파진다. 각 학교에서는 최고학년을 거치고, 상급학교로 진학을 이어간다. 진급 때마다, 진학 때마다 모두들 다짐한다. 지난 학년, 지난 학교에서 가졌던 나의 초라한 위치 따위는 잊고, 새 학년 새 학교에서는 좀 더 잘해보리라는 꿈을 꾼다. 석차로 대변되는 위치 정하기에서, 더 높은 위치에 안착해보겠다는 꿈이다.


그러나 다들 경험했다시피 그런 단꿈에 젖어보는 시간은 짧고, 냉혹한 현타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마음속으로 하는 다짐이야 언제든 쉽게 할 수 있지만, 실천 없는 공허한 다짐에는 파동이 따라올 리 없으니 말이다. 결국 다시 마주한 현실 앞에서는 금세 체념하고 순응하게 되는 것도, 반복을 통해 익숙한 일상이 된다.

치열한 위치 정하기 경쟁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우리는 열심히 '위치 정하기'를 한다. 더 좋은 학교, 더 나은 직장,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인생은 다사다난하고 모두가 그때그때 각자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데, 이런 것들은 결국 더 나은 내 위치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사실, 위치 정하기는 끝이 없다. 내가 지금 어디에 속해있느냐도 '위치 정하기'의 결과이지만, 내가 속한 모든 곳, 모든 시간에서 '위치 정하기'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근무할 부서가 정해지는 것도, 업무분장이란 이름의 역할 분담도, 나의 위치를 정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한 부서 안에서의 위치 정하기에서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더 익숙한 것, 더 쉬운 것, 더 편한 것을 기대하며 더 나은 위치를 위한 다툼이 은근히 치열하다.


그런데 이런 자리다툼에는 열중하고 그것으로 내가 갖게 된 결과에 기뻐하는 일에만 치중할 뿐, 그로 인해 누군가는 나 대신 더 어려운 것, 더 불편한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위치 정하기란 상대평가와 같아서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다. 학교에서의 석차도 내가 몇 등 올라가서 기뻐할 때, 내려간 누군가는 슬퍼하고 있을 것임은 필연적이다. 더 나은 위치로 옮기면서 내가 버린 자리에 온 누군가의 얼굴을 확인하는 일이란 좀처럼 없다. 자신이 입시나 취업에 성공했을 때 불합격했을 누군가를 우리는 모른다. 결국 나의 포지션 정하기는 누군가의 포지션 정하기와 별개가 아님을 우린 깨닫지 못하며 살아간다.


한 부서에서 일하면서 항상 본인의 업무가 과중하다고, 자신이 맡은 일이 어렵고 힘들다며 불평하고, 업무를 재조정해주길 원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은행 창구처럼 함께 고객을 나누어 응대해야 하는 일에서 자신의 편의를 위해 취하는 고의적인 나태함이 동료들을 더 힘겹게 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마치 지금은 군대에서 금지되었다는 '선착순 얼차려'와 같다. 내가 지금 열심히 달리는 이유는 벌을 피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으로 그 벌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결실을 맺기를 바라는 것이다


공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우리는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축구를 많이 많이 하면서 자란다. 축구를 시작할 때마다 골키퍼를 할 사람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축구 중계를 보며 골을 넣는 공격수에 열광하는 우리 모두가 하나같이 공격수를 탐하는 탓이다. 야구에서는 포수가 그렇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들 한다. 야구장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투수를 꿈꾸고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최동원, 선동열, 박찬호, 류현진이 각인되어 있다. 이것은 엘리트 체육 선수들도 그럴 것이고, 사회인 야구에서도 다르지 않다. 야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만화에서 주인공은 항상 투수이고, 실제로도 팀에서 가장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지는 선수가 투수를 맡는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포지션 정하기에 들어가면 각자가 다른 역할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때 자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주인을 찾기 가장 힘든 포지션이 포수다. 당연하다. 포수의 역할이 실제로 매우 힘들고 고달프기 때문이다.


포수는 무척 고달프다

우선 걷기조차 힘들 만큼 온갖 장비들로 무장을 해야 한다. 그 장비들은 파워를 증강시키는 아이언맨 슈트가 아니다. 언제든 흉기로 돌변하는 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어느 하나 빠짐없이 착용을 해야 한다. 녹음이 짙어가고, 점점 기온이 올라갈수록 그 장비들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작년부터 코로나를 겪으면서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는 가볍고 얇은 마스크 하나가 체감 더위를 얼마나 더 상승시키는지를 우리는 모두 경험했다. 나는 한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 적이 있는데, 여름에 오토바이를 기피하게 하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헬멧이다. 달릴 때는 그나마 조금 낫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헬멧을 쓰고 신호등에 걸려 서있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다. 얼굴의 반만을 덮은 얇은 마스크 만으로도, 편안하게 앉은 자세로 오토바이를 탈 때 조차도 헬멧은 더위를 배가 시키는데, 포수는 상체와 다리에 보호대를 착용한 상태로 헬멧을 써야 하고, 한여름 한낮에도 그 상태로 힘든 운동을 해야 한다. 헬멧 속에서 자신의 입김은 히터가 되고, 몸에 있는 모든 땀구멍이 뿜어낸 육수는 머리, 얼굴, 속옷을 흠뻑 적신 후, 온몸을 타고 흐른다.

공을 받고 있는 우리 팀 포수

포수가 힘든 두 번째 이유는 자세 때문이다. 포수는 경기장에 속에 있는 모든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앉은 자세를 취한다. 우리의 알상에서는 서있는 것보다는 편하게 앉는 걸 선호하지만, 포수의 앉음은 그런 앉음이 아니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일 수 없고 쪼그려 앉아야 한다. 불편한 한 가지 자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건, 지금 바로 딱 1분 동안만 쪼그려 앉아 있어 보면 느낌이 온다. 그것을 기본자세로 해서 앉았다 섰다를 체벌 수준으로 셀 수 없이 2시간 이상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무릎에도 제법 무리가 간다.


세 번째 이유이자, 포수를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끔씩, 그러나 반드시 찾아오는 고통의 시간' 때문이다. 포수가 착용한 장비는 부상 방지를 위해 중요부위를 최소한으로 가린 것일 뿐, 사실은 빈틈이 많다. 야구를 보는 팬들은 타자가 친 공이 필드 쪽을 향하는 것에만 오직 관심을 갖는데, 반대로 포수를 노리는 공은 의외로 많다. 너무나 가까운 거리 탓에 타자의 배트를 스쳐오는 공을 포수로서는 피할 틈조차 없다. 보호대 위에 공을 맞는다고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장비가 공은 막아주지만 통증까지 막아주지는 못한다. 충격은 고스란히 장비를 뚫고 들어오며, 고통은 뼈를 파고든다. 어떨 땐 공에 눈이라도 달린 듯 어떻게든 보호장비가 없는 빈틈(어깨, 허벅지, 팔, 발, 손 등)을 찾아 직격 할 때도 있고, 정말로 운이 없는 경우엔 급소를 강타하기도 한다. 낭심 보호대라는 장비가 별도로 있는데, 만약을 대비해서 —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방심과 나태함은 맑은 날에 검은 하늘과 별을 보게 만든다. 득점을 위해 홈으로 돌진하는 주자와의 충동 가능성도 있어서 포수는 부상의 위험도 가장 높다.

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겠다는 구세주와도 같은 지원자가 나타나면, 그 순간 다른 이들은 — 그 부담이 자신을 피해 갔다는 사실에 — 안도한다. 그의 결단과 희생에 모두는 잠시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가 포수를 맡는 일은 아주 당연시된다.

포수는 매우 중요하다

모두가 포수를 기피하지만 포수는 너무나 중요하다. 포수 역할을 수행할 만큼의 역량을 갖추기까지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자기 팀의 모든 수비수를 한눈에 지켜보는 포지션은 포수가 유일한데, 실제로 포수는 시종일관 그 관점에서 경기를 이끌어 간다. 그만큼 포수의 역할과 리드는 중요하다.


좋은 포수가 되려면 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우선 공을 안정적으로 잘 받아야 한다. 프레이밍(스트리크 존을 살짝 벗어나는 공을 존 안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받아내 스트라이크 판정을 이끌어내는 기술)도 중요하다. 투수가 던진 공이 바운드되어 들어올 때 공을 뒤로 빠트리지 않게 하는 블로킹도 중요하다. 호시탐탐 다음 베이스를 노리는 주자들을 견제하고, 도루를 저지하는 송구 능력도 중요하다. 상대 타자의 성향을 분석해서 투수가 던질 구종을 정해주고, 투수의 템포를 조절해주며, 가끔씩 타임을 걸어가며 경기의 흐름을 조율한다. 상대팀의 득점을 저지하는 최후의 방어선에 있고, 우리가 실점하는 모든 순간을 가장 가까이서 목도한다.


뛰어난 선발투수는 5~6일마다 한번 출전하지만, 포수는 매일 출전이 가능하다. 그래서 특급 포수를 보유한 팀은 항상 강하다. 삼성이 한국야구를 지배하던 때에 진갑용이 함께 있었고, 박경완을 보유했던 현대와 SK도 언제나 강팀이었고 여러 번 우승했다. 양의지도 자신이 몸담은 두산과 NC를 모두 우승시켰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명포수가 있는 팀은 항상 강팀이었다. 호르헤 포사다의 양키스, 버스터 포지의 샌프란시스코, 야디어 몰리나의 세인트루이스는 모두 여러 번 우승했다.


태어났던 때에 비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눈부시게 성장하고 발전하고 풍요로운 나라에 지금 나는 살고 있다. 그 시간을 지나고, 어쩌다 보니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대기업 직원과 공무원만을 꿈꾸는 시대를 지금 우리는 살게 되었다. 경제성장률도 중요하고, 수출도 중요하다. 요즘 세대들은 소확행워라벨을 중요시하고 이런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는 것 같다. 개개인의 '삶의 만족도'와 '행복추구'를 최고로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다른 누군가가 해주기를 바라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는 또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도 계속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 대신) 누군가는 구의역에서 혼자서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수리해주길 원하고, (나 대신) 누군가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나탄을 치워주기를 원하고, (나 대신) 누군가는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작업을 해주기를 원한다. 아주 잠시 잘못 정한 위치의 대가치곤 너무나 가혹하다. 사망한 사람들은 왜 모두 어김없이 하청업체의 미숙련 비정규직인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터에서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거의 매일 뉴스에 등장하지만, 그 사람이 나와 나의 가족, 나의 친구가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는 지점에서 우리의 생각은 끝을 맺는다. 언젠가 미숙한 내가, 혹은 내 아들딸이 포수를 맡아야 하는 경기가 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역량 부족으로 포수를 못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포수를 기피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숙련 신입에겐 절대로 포수를 맡기지 않는다. 이런 불문율의 규칙이 일터에서는 왜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포수 없는 야구는 있을 수 없다. 누군가는 포수를 해야 한다. 내가 야구장에서 보낸 모든 시간, 모든 경기에서 포수를 맡아준 누군가가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그들 모두를 기억하겠다.


*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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