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의 세상, 개들의 놀이 그리고 고양이

서로 다른 이들과 어울리기

by 따뜻한 만년필

"개의 행복과 정상적 성격은 무리 안에서 형성되는 다른 개와의 접촉의 산물일 정도로 개는 매우 사회적인 동물이다." - Daum 백과 '개' 중에서


개가 사람들에게서 개별적으로 길러질 때는 어쩔 수 없이 홀로인 경우가 많지만, 자연 속의 그들은 항상 무리를 이룬다. 유기견들도 몇 마리가 만나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고, 야생의 개라 일컬어지는 아프리카의 리카온, 호주의 딩고도 모두 무리를 이루어 살아간다. 이점에서 개는 사람들과 정말 유사한 것 같다. 개도 사람만큼이나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실 사람만큼 타인 의존적인 생명체도 드물다. 아무런 대책 없이 나약한 이 생명체는 누군가의 도움 없다면 생존조차 불가능하다. 갓 태어났을 때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숨쉬기 정도뿐이고, 혼자서는 먹는 것도, 조금의 이동조차도 하지 못한다. 자연 속에서라면 온갖 포식자의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할 것이고, 생존을 위해 필수인 의식주부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지금 생존해 있는 모든 이들은, 부모님을 비롯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왔다는 증거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가족, 학교, 마을, 회사 등 갖가지 조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그 울타리 안에 머문다. 이렇게 우리는 평생을 인간사회 어딘가에 기대어 살아간다.


"고양이는 무리 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 - Daum 백과 '고양이' 중에서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런 체계를 달가워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느 정도 자립이 가능한 정도로 성장하고 나면, 마치 자기는 애초부터 그 누구의 도움 한번 받은 적 없는 듯, 도도한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공동체 생활은 불편하고,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저 생활방식이 조금 다른 것뿐이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몹시 개인적인 듯, 때로는 아주 이기적인 듯도 보여 눈총을 받곤 한다. 동료들과 대화도 많지 않다. 마치 우글거리는 개들 속에 섞여 있는 고양이만 같다.


어쩌면 소수자들의 삶이 대체로 이런 모습인지 모른다. 그래서 다수인 개들에 비해 소수의 고양이들은 훨씬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본성은 숨기고 개를 흉내 내며 살아야 한다. 개인척 하지 않으면 살아내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고양이 걸러내기

인간이 만든 조직들은 기본적으로 고양이들을 원하지 않는다. 고양이들도 자신의 습성을 여과 없이 노출해서는, 교우관계도, 취업도, 원만한 사회생활도, 생계유지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런 고양이들은 곳곳에 생각보다 다수 존재한다.

회사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일하는 곳이고, 동료 간, 부서 간, 협조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타인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 동료와 협력을 잘하는 사람, 모나지 않은 사람을 뽑고자 한다. 채용면접에서의 질문도 이런 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면접은 어쩌면 고양이를 걸러내려는 과정이다.


다른 사람들과 협동하여 이루었던 성과, 학교생활이나 아르바이트 등에서 타인과의 마찰, 동료와 갈등했던 경험, 그런 어려움을 극복했던 사례에 대한 지원자의 경험을 묻고, 답변의 진실성 여부, 예를 들어, 혹시 본인의 경험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본 것, 누군가에게 들은 내용을 암기해 온 것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 꼬리 질문을 계속 이어간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완벽하게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조직에든, 그런 갖가지 허들을 어떻게든 넘어온, 고양이가 항상 있다. 말수가 적고 속을 내비치지 않는 이들, 동료들과 교류도 별로 없고,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이들, 회식 시간이 힘든 이들, 이들은 동료와 다른 부서와 협력에도 다소 인색한 듯 보인다. 본인에게 맞지 않는 일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어서, 남들보다 쉽게 스트레스를 받고, 사소한 일에도 민감한 듯도 보인다.


야구는 개들의 놀이

야구는 기본적으로 개들의 놀이이다. 단체종목이 대체로 그렇지만, 야구는 특히 협업이 중요한 운동이다. 혼자서 벽에 공을 던지거나, 동전을 넣고 배팅을 하는 야구연습장을 이용하는 것은 고양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무수한 단면을 가진 야구의 한쪽면에 불과할 뿐 진짜 야구는 아니다.

다 같이 모여서 스트레칭을 하고, 2명씩 마주 보고 서서 공을 주고받으며 몸을 풀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때려준 공을 처리하는 수비 연습, 받은 공을 다른 누군가에게 던지는 송구 연습, 누군가가 던져주는 공을 때려내는 타격 연습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리고 경기에 들어가면 공을 잡은 사람은, 즉시 다른 누군가에게 던져야 하고, 그 공을 받아주는 이가 반드시 있다. 순서대로 배팅을 하고, 줄지어 베이스 라인을 달리고, 내가 친 공이 만든 틈을 타 진루를 하고 득점을 하는 이가 있다. 나 또한 누군가의 안타로 진루를 하고 득점을 한다. 이렇게 야구는 팀 동료와 끊임없이 교감하는 운동이다.

이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 단체경기 속에서 혼자만의 경기를 수행하는 이들이 있다. 별 대화 없이 자신의 영역에 오는 공을 처리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자기에게 돌아오는 한 타석 한 타석도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대화하고 교감하기보다는 그 안에서도 고독하다. 마치 개들의 놀이에 뛰어든 고양이 같다. 이렇게 야구를 하는 이들은 때로 타인의 실수에 민감하고, 타인의 경기력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마치 자신의 영역을 침해당한 고양이처럼 반응한다. 동호회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우니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거나 하면 곧잘 팀을 뛰쳐나가서 다른 팀으로 옮기기도 한다. 그곳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오래전부터 나는 ‘저런 친구들은 혼자 하는 마라톤이나 헬스를 하지,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스트레스받아가며 왜 굳이 야구를 하려고 할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때의 내 결론은 '고양이들도 끊지 못할 정도로 야구가 재미있는 놀이긴 하지!’ 정도였다.

다들 조금씩 다르다

지금은 그들을 좀 더 이해하려 한다. 취향도, 그것을 넘어선 각자의 어떤 선택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같은 일을 다른 이들보다 훨씬 힘겹게 해내고 있다. 공동체 생활을 좋아하는 이도, 그렇지 않은 이도 있다. 좋아하는 이들이야 아무런 어려움이 없겠지만, 그 속에서 힘겨워하는 고양이는 그 정도의 모습을 보이는데도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을 수 있다.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며 어쩌면 조금씩 사회성을 키워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다수의 개들과 그 속의 몇몇 고양이는 같이 배우고, 같이 일하고, 야구도 같이 한다. 고양이만의 장점도 많다. 집중력이 뛰어나고 성취도가 높다. 맡은 일을 탁월하게 깔끔하게 처리하고, 고양이가 수시로 자신의 매무새를 다듬듯, 자기 관리, 주변 관리에 철저하다. 이런 이들도 조직에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나의 위치는 어디쯤이었던가를 가끔 생각해본다. 개와 고양이 사이 그 어디쯤에서 일생을 오락가락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때로는 좀 더 개처럼, 때로는 좀 더 고양이처럼.


*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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