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본방사수로 그리고 이후에는 재방으로 반복 시청한 프로그램이 교육방송의 '극한직업'이다. 가방끈 긴 이들은 절대 택하지 않을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에 오래 종사하다 극한에 이르러 고수가 된 이들. 그분들이 그간 남모르게 흘렸을 땀과 굳은살 박인 손마디와 주름진 얼굴에 경의를 표한다. 가방끈 길어도 저 하나의 입신양명에 골몰한 자들 다 합쳐도 그 고수 한 분의 삶의 무게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예순 넘어 김장의 고수가 된 아내의 손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아내가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찾아
종이에 부지런히 적는다.
때늦은 공부라도 하는 것일까?
몹시도 궁금해진 나는
아내가 잠시 자리 비운 사이
적어놓은 것 빠르게 훑어본다.
김치 담그는 법이라는
큼직한 글씨 아래
일반 김치며 파김치, 갓김치의 재료와
버무리는 순서 등등이
일목요연하게 적혀있었다.
짐작컨대 아내는
인터넷 곳곳에 숨겨져 있는
당대 김장 비급(秘笈) 찾아내
김장계의 고수(高手) 되려고
단단히 작정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십여 년 처가(妻家)의
김장계 주름잡으셨던 장모(丈母)님이
홀연히 세상 등지신 후
다섯 번의 김장철 지났는데
어깨너머로 배운 아내의 김치 맛은
그 다섯 번이 해마다 다르던 것이었다.
장모님 김장 비법의 전부는 아니어도
거의 전수(傳受) 받았다는 처형에게
이리저리 물어가면서 담갔음에도
그간 익숙했던 그 맛이 아니고
짜거나 싱겁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김장에 관한
아내의 심기일전(心機一轉)은
주부(主婦)로서의 내공(內工)이
수십 년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어
그 어떤 경지(境地)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미 일가(一家) 이룬 처형에게
일일이 물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비기(秘技) 익혀 그로써
또 다른 일가(一家) 이루리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것이다.
아울러 일가(一家) 이루는 김에
그냥 김치만이 아니라
파김치 좋아하는 사위와
갓김치 좋아하는 두 딸 위해
다양한 비법 더불어
익히려는 것일 것이다.
삼십여 년 한결같던
장모님 김치 맛의 비법이
재료나 버무리는 순서 같은
레시피에 있던 것이 아니라
당신이 담근 김치 쭉쭉 찢어
맛나게 먹을 가족들 생각하며
정성 다해 간하고 버무린
진지한 손맛이었을 것이니
아내 역시 인터넷에서 구한
다양한 비급들 참고는 하되
다듬고 버무리고 치대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손이 느끼는
최적(最適)의 맛 찾아낼 것이다.
비법(秘法) 달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담근 김치 맛나게 먹을
가족들의 얼굴 생각하면
절로 흐뭇해지는 그 마음
오롯이 손에 담는 것이
최고(最高)의 양념이며
최상(最上)의 간이라는 것을
반드시 터득하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아내는
입과 혀가 아니라
오직 손만으로 능히 김치 맛 가늠하는
김장의 절세 고수(高手)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