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저린 다리 풀고 일어나시게,
일어나 곰삭을 대로 곰삭았을 천 년 사유(思惟) 들려주시게
산꼭대기 토굴(土窟)에 든 승허(承虛)는
미리 만들어둔 박달나무 의자에 앉아
굴 밖을 응시했다.
시절(時節)은 완연한 가을이라 마주 보이는 산이
온통 색색(色色)으로 물들어
마치 새로 단청(丹靑)이라도 올린 듯
참으로 고왔다.
동진출가(童眞出家)로 산에 든 지
어언 육십여 년이니
새삼스러운 풍경 아닐 터인데
몇 해 전 서원(誓願) 세운 이후부터는
나뭇잎 한 잎 물드는 것조차 결코 가볍지 않아
마음 깊은 곳까지 그리도 물들이던 것이다.
미동조차 없이 밖을 보고 있던 그가
내내 없던 바람 일어 숲 일렁이자
비로소 눈길 거두어 아래 내려다보았다.
아래, 삶에 달리 승속(僧俗)의 구분 있을 리 없지만
그가 보고 들은 아래 세상에서의 삶은
화택(火宅)에서의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불길은 바깥에서 안으로 휘몰아치기도,
나라 안 어느 한 곳에서 일어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번지기도 해
저잣거리의 생(生)은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수(隋)에 이은 당(唐)의 침략과
삼국(三國)의 대립으로 인한 갈등과 분쟁이
근래 들어 더 격화되어 도탄에 빠진
중생들의 한탄과 비명소리가
첩첩(疊疊)의 산과 재들 넘어 깊고 깊은
산중 법당에까지 전해져 승허는
달포 전부터 목탁 아예 내려놓고
염불(念佛)조차 변변히 외지 않았다.
불가(佛家)에 입적(入籍) 후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수행의 근본 삼아 지금껏 정진했으나
엄혹한 생의 굴레에 갇혀 날마다의 삶 자체가 고통인
작금의 저잣거리 중생들에게 들려줄
그 어떤 위안의 말씀 하나 깨치지 못하고
헛되이 공양미만 축낸 세월이었구나는 생각에
법당(法堂)에서도 선방(禪房)에서도 앉은 자리가
죄다 바늘방석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간 들었던 화두(話頭)며
외었던 수만의 법문(法文)들이
활구(活句)가 아니라
한낱 사어(死語)에 지나지 않던 것이었다.
뎅그렁, 뎅그렁
이레 째 곡기(穀氣) 끊고
물만으로 버티며 면벽(面壁) 중이던
승허의 귀에
처마 끝 풍경소리가
여느 때보다 더 청아(淸雅)하게 들리고
그것이 어느 순간 소리가 아니라
제 안에 이는 바람으로 그를 간단없이 흔들 때쯤
승허는 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부좌 풀고 일어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바깥으로 나온 승허는 황급히 그를 부축하려는
상좌(上佐)의 손을 웃으며 물리치고
마루에 걸쳐둔 죽장(竹杖) 들어 짚고는
토굴 향해 난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올라갔다.
서원(誓願), 화택(火宅)에서의 생이 이어지는 한
끊임없이 묻고 또, 물을 중생들의 물음에 답하고 싶은,
아니, 기어이 답해야만 하는 불의 소멸에 관한 그 답
구하고자 세운 간절한 그것-.
짧은 가을 해 지려는지 핏빛 노을이
토굴 입구에 어른거리고
저녁 범종 소리 은은하게 들리자
오른발 들어 왼 무릎에 얹은
승허의 입가에 미소가 일었다.
훗날 야단법석(野壇法席)에 펼쳐놓을
용화세상(龍華世上) 향한 그의 깊고
깊은 사유(思惟)가 비로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들어보시려는가? 사유는
만상(萬想)이 비롯된 한 상(想)의
진면목(眞面目) 보고자 하는 것으로
그것은 또한 끊임없이 이는 바람의 출처 쫓아
그 이전의 고요에 이르려는 것이네.
바람을 탓하지 마시게, 수시로 일었다
스러지는 것은 다만, 그대의 마음일 뿐이네.
불이(不二), 미륵도 야차도 극락도 지옥도
다 그대 한 마음이 짓는 변상(變像)들이네.
자, 그대 그간의 생(生)에 일었던
바람의 궤적(軌跡) 전부 드러내 보여주시게.
실상(實像)이든 허상(虛像)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