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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Dec 10. 2022

우울할 땐

귀걸이부터 뒤적뒤적


 나는 칭찬에 약하다. 그게 외모가 됐든, 성격, 대처 능력, 똑똑한 머리, 재능이 됐든 그냥 내 목소리가 됐든 칭찬이면 전부 좋았다.


나는 늘 칭찬에 목말랐는데 어린 시절부터 그게 충분치 않았다. 엄마가 외모에 대한 신경을 엄청 많이 써줬는데 나는 엄마가 입혀준 옷, 묶어 준 머리 방울 하나도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프릴 달린 원피스, 샤방샤방 여성스러운 옷과 구두, 쫑쫑 꽉 땋은 머리 등등 엄마는 연년생인 언니와 나를 완벽한 ‘알프스의 소녀들’ 콘셉트의 트윈스 룩을 입히고 싶으셨던 것 같다.

(얼마 전 언니가 엄마에게 소포를 받았는데 식탁보같이 넓은 드레스였다고 ㅋㅋ 엄마는 지금도 어린 시절 그대로 자기를 꾸미고 싶어 한다면서 한참 웃었다. 형부랑 언니는 처음에 진짜 엄청 화사한 식탁보인 줄 알았다고 한 그 옷은 지금은 차마, 입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나는 전부 입이 댓 발 나와있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뭔가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엄마가 꾸미고 싶은 대로 다 입은 언니는 예쁘다고 칭찬을 받았고 나는 그게 또 질투 나서 속상해했던 기억이 난다.


성인이 돼서도 우울하고 기분이 축 처진 날이면 오히려 화장을 했다. 뭐 대단한 화장은 아니지만 립스틱을 바르고 기분이 산뜻해질 가볍고 반짝이는 귀걸이를 골라서 착용했다. 나는 집에서 계속하고 있어야 편안한 귀걸이와 외출용 귀걸이가 따로 있는데 나갈 마음을 먹었을 때 준비한 귀걸이를 하면 기분이 급 좋아졌다. 귀걸이를 한 순간 1.5배로 예뻐 보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마지막 반짝이 하나가, 혹은 팔랑거리는 꽃 모양 액세서리 하나가 나를 더 빛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다이어트는 10배 넘게 예뻐 보인다는데 그건 ㅋㅋㅋ 아예 시도조차 안 했네;;)


마음이 우울, 울적하다 ->전환이 필요하다 -> 외모에 살짝 변화를 준다 -> 내가 좋아하는 립스틱, 예쁜 귀걸이 하나만으로 거울을 쳐다볼 때 기분이 좋아진다.  (향수로 칙칙 마무리!)


심각한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생각보다 내 외모에 만족하고 살았다)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나’를 꾸미는 것만으로 마음이 뿌듯했다.  속상하고 낙심된다고 더 진한 화장을 한 건 아니지만 작은 가방 안에 내가 좋아하는 립스틱이나 미니 향수 하나가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꾸미기 좋아하는 엄마의 보이지 않는 영향으로 나 역시 나를 꾸미는 일이 조금 더 의미 있게 느껴진 건지도 모른다.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이란 것도 마음에 들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하고 싶은 머리를 하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어디서든 부르는 거, 이 자체가 나에겐 제일 큰 반항같이 여겨졌다. 반짝이 재킷, 아이보리 색 베레모, 기다란 속눈썹, 뭐가 나에게 어울리는지 몰라도 해보고 싶었던 스타일대로 원하는 대로 나를 꾸밀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기쁨이고 재미가 됐다.  헤드윅, 글램 록 같이 어마어마한 요란한 스타일도 아닌데 뭐. 막상 그렇게 내 멋대로 입고 싶은걸 다 입고 이상한 신발도 신어보니 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괜찮네, 세상 화려한데 너한텐 어울려!


 주변의 반응들에 더 기분이 좋았다. 노홍철이 패셔니스타라고 생각하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역시 자신감이다. 누가 뭐래도 자기가 입고 만족한 모습 그대로 자기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있으면 그게 치마가 됐든 너덜너덜 망사 셔츠가 됐든 그게 중한 게 아니다. 나는 근본 없는 내 옷차림과 스타일을 내가 제일 사랑했으니까. 그 자체로 장 땡, 최고 아닌가도 싶고 멋 내느라 조금 불편한 구두를 신을 때 삐끗한 거 말고는 내 스타일에 언제나 가장 만족한 건 나 자신이었다. 대학교 일 학년 때만 해도 수수한 면바지에 범생이 셔츠, 무난한 조끼, 그 위에 더 무난한 재킷을 걸친 내 사진과 졸업할 때쯤 내 사진을 비교해보면 재밌다. 그 전날 열심히 쫑쫑 머리를 땋고 잠들어서 나이아가라 파마 같은 단발에 무지개색 니트, 뾰족한 구두까지 아주 멋대로, 마음대로, 그래도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깐.


꾸미기의 출발과 변신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지금은 아침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헐레벌떡 세수도 못하고 외출할 때도 많은데 마주치는 이웃들이 '예뻐 예뻐. 이리 와서 차 한 잔 하자'하면 뭔가 찜찜해서 잠깐이라도 집에 꼭 들러서 나만의 변신을 꾀한다. 빡빡 개운하게 세수를 하고 제일 먼저 귀걸이부터 고른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수면에 들 때 하는 귀걸이와 외출용 귀걸이, 꾸미고 싶은 날 하는 귀걸이, 우울함을 해소하는 귀걸이, 나 대신 귀걸이가 돋보이는 날(ㅋㅋ귀걸이*내가 이만큼 널 존중해), 통증을 완화시켜주는 귀걸이(이런 건 꼭 치과에 갈 때마다 했다) 등등 귀걸이 하나마다 사연이 있어서 귀걸이가 아주 중요한 사람인데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은 대부분 둥그스름한 꽃 모양, 심플한 진주 귀걸이 종류다. 요걸 알아챈 사람은 없겠지? 하고 혼자 요리조리 변화를 줬는데 어느 날 치과 신경치료를 갔을 때 


박나경 고객님은 항상 그때그때 그날마다 귀걸이가 바뀌는데 전부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예뻐요.


한 간호사가 이렇게 말해줘서 신기하기도 하고 소녀 같은 그 간호사에게 급 호감이 됐다. 나의 만족이지만 누군가 눈치채 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줬으니까. 사실 신경치료 통증을 참아내느라 내가 다른 것보다 귀걸이를 엄청 고심하며 고른 나날들이었다. 얼굴에 천을 덮어도 귀걸이가 보이지롱.

세수를 하고 대충 크림을 바르고 귀걸이 하나만 "쨘" 바꿔 차고 나가면 대부분 사람들 반응은


아이고, 세수 하나 안 하나 똑같네. 아까랑 똑같아. 아까도 예뻤어. (기분 좋은 말이고 고마운 말인데?? ㅎㅎㅎㅎ세수 안 하고 다녀도 되나 싶다.)


그래도 내 안에 만족감은 확 다르다. 세수하고 개운한 건 물론 나를 꾸몄으니까. 이젠 아이 둘을 키우느라 예전처럼 좋아하는 카키색 쉐도우도 못 바르고(눈두덩이가 있어서 이 색을 제일 좋아한다.) 아이라인이며 눈썹이며 마스카라, 다 할 시간은 없지만 귀걸이 찰 시간은 지금도 충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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