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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Dec 03. 2022

라라랜드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라라랜드 

내가  왜 이 영화를 지금 봤을까.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미소 지으며 똑같이 센강을 뛰어들 수 있다.


내가 하려는 건, 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그런 게 아니었을까.

꿈꾸는 미치광이들을 위해 고독과 열정과 분노로 터질 것 같은 사람들을 위해, 센강에 뛰어드는 일.


내 아이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 전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 

나도 글을 쓰고 싶었는지 모른다.  미아처럼 시도조차 준비조차 안 하면서, 막상은 겁나서 덤빌 수도 없었던 내 모습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더 참혹한 말을 듣더라도, 재능이 없어서 차라리 자살하지-라는 비난을 받아도 그대는 앞으로 나갈 수 있는가.


꿈과 사랑. 영원한 난제를 영화에선 너무나 고전적인 방법과 황홀한 영화적 기법으로 명료하게 표현했다. 집중 '팍' 하라고 주인공을 제외하곤 전부 어둡게 다 차단해버리고 나만 봐!! 주인공의 얼굴에만 초점을 맞춘다.

아웃 포커스. 아니, 아웃포커스 정도가 아니다. 노래하는 주인공 자신을 제외하곤 전부 검은 배경 속에 덮인다.  지금 이 말에 귀 기울여!! 집중하도록 우리를 유도한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라라랜드를 정말 멋있게 표현한 것도 뛰어나지만 나는 오히려 심플하지만 주인공의 얼굴만 클로즈업된 장면이 더 좋았다.  꿈꾸는 사람에게 어두운 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뻔하디 뻔한 포커스가 나에겐 위로가 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 외면하고 싶어도 그 말을 안 듣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못 들을 수 없게. 


인생의 중요한 꿈은 전부 이뤘지만 정작 그 사랑은 마음에 묻어야 할 때 우린 과연 뭘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영화, 음악, 그림, 짤막한 지난 일기 구절, 친구와의 수다, 현재 무언가 자신이 바쁘게 하고 있는 일... 

추억 속에 있었던 나 자신을, 지난날의 연인을, 나의 꿈을 다시 찾아보게, 끄집어내는 영화다. 

선재가 나중에 자라면 이 영화를 꼭 같이 봐야지. 


*내가 영화를 사랑하게 된 건 순전히 아빠 덕분이다.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우리 집은 티브이 드라마도 밤엔 아예 시청 금지였는데 유일하게 토요일 밤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항상 케비에스의 토요명화가 먼저, 그다음에 주말의 명화가 좀 더 늦은 시간까지 길게 방영됐다)는 새벽 몇 시가 됐든 끝까지 시청하게 해 주었다. 그날 하루의 자유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나는 언제나 새벽까지 주말의 명화를 끝까지 시청하곤 했다. 태양을 가득히, 루이말의 잃어버린 아침(굿바이 칠드런), 작은 신의 아이들, 나의 빈센트, 당시에 어린아이가 보기엔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명작까지 내 눈과 마음속에 고스란히 저장됐다.  탐 크루즈의 텝스나 델마와 루이스, 하이랜더 같은 영화를 나는 티브이에서 봤다는 게 언제나 자랑스러워서  주연 배우와 감독 이름, 촬영 감독까지 나의 영화 노트에 기록해서 달달 외우곤 했다. 당시 영화는 책 보다 나를 더 강하게 매료시켰다. 두세 시간 안에  나를 다른 세계로 들었다 났다 했지만 그 세계도 결국 내가 속한 세계란 걸 말해주고 있어서 좋았다.  


라라랜드는 영화적 상상과 즐거움을 로맨틱한 분위기로 말해주고 있지만 또 그와 반대로 지나치게 현실적인 분위기라 더 좋았다. 

아주 미묘한 대화에서 서로의 입장을 오해하고 마법 같은 황홀한 장면도 낮에 보면 다시 보니 별 거 아니네, 최악이라고 말할 정도로 시간이 우리에게 부린 권태 같은 씁쓸함을 잘 담고 있다. 반복된 우연 속에 인연이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인연 역시도 만들어 가고 지켜나가는 인내가 필요하다. 

각자의 삶에 충실하게 차근차근 쌓아온 자리가 있다면 거기가 바로 우리의 라라랜드가 아닐까. 

세바스찬의 셉스, 미아의 영화 촬영 공간과 엄마의 자리처럼. 

라라 랜드는 나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변화하고 꿈꾸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2017년 7월 12일 밤 메모


일기장 메모장을 하나씩 들춰보고 있다.
5년 후 지금의 나 (앤나우 댓글) : 변화하고 꿈꾸는 게 두렵지 않다. 느리지만 내가 여기에 있다고 손짓할 수 있다는 사실이 뭉클하다. 똑같은 꿈은 아니지만 꿈꾸는 사람들과 같이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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