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습작 마무리)
죄를 고백하세요,
누구든 용기 내서 자기 죄를
고백하는 사람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후끈한 캠프파이어 열기보다 더 타오르는 열기로 전도사님의 한밤 집회는 수련원 안에서도 이어졌다. 그때였다. 은정이가 은아 옆으로 오는 게 아닌가.
-저..., 저기 은아야, 나는 널 용서할게.
-...?
은아는 갑자기 다가와서 조용한 틈에 자기 앞으로 다가온 은정이 행동만으로도 당황스러운데, 용서라니? 순식간에 자기에게 화살처럼 집중된 시선이 무서웠다.
-네가 평소에 날 무시하는 걸 알았어. 넌 나랑 같이 다녀준다고 생각했지? 맞지? 우리 호준오빠가 다 말해줬어. 너를 미워했어. 네가 너무너무 미웠어.
우리 호준오빠? 6학년, 초등부의 말 안 듣는 이호준을 말하는 거라는 걸 깨닫자마자, 은아는 자기도 모르게 양손에 주먹이 쥐어졌다.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떨리는 은정이 목소리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뭐? 이호준? 야, 지금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호준오빠랑 사귀어. 너는 몰랐겠지만 네가 호준오빠 꼬시려고 한 것도 다 알았어.
여기서부터는 떨리는 은정이의 목소리가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앉아있던 아이들마저 호준이 이름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뭔가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고 느꼈다. 은아는 손톱을 깎지 않아서 조금만 더 힘주면 손바닥 어딘가에 피가 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힘을 뺄 수도 없었다. 여기에서 힘을 빼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이 먼저 터질 것 같았기에.
-이 바보야!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호준은 이미 혜경언니랑 사귄다고. 내가 다 봤어. 혜경언니가 이호준을 꼬실라고 둘이 같이 앉아있을 때 호준이 어깨 위로 머리까지 기대고 스르륵 잠든 척도 하고 둘이 담요 밑으로 손도 이렇게 깍지 끼고 꽉 잡고 있는 걸 내가 다 봤어! 봤다고!
평소 얌전하고 말도 거의 없었던 은아가 울부짖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이제 떠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은아의 또렷한 목소리가 수련원 안, 전체로 울려 퍼졌다. 전도사님마저 할 말을 잃은 듯, 팝콘만 안 들고 있다 뿐이지 아침 드라마 같은 아이들의 삼각관계를 넘어선 사각관계, 호준이의 문어발 연애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푹 빠진 듯했다.
서로 잔잔하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고 아름답게 화합하는 시간을 기대했던 전도사님의 평온한 그림은 이미 고백이 시작되자마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전도사님의 사회에 맞춰 잔잔한 반주를 이어가는 고등부 영미언니도 당황해서 자꾸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배경음악을 깔아주고 있었다. 전도사님께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눈짓을 보내는 것 같았는데 전도사님은 미처 반주자의 애가 타는 구조신호까지 눈치챌 정신은 없어 보였다.
은정이와 은아, 우리의 은방울 자매보다 더 주목받는 두 아이가 있었으니 6학년, 문제의 이호준과 중등부 혜경이었다. 둘이 전기가 찌리릿 손을 맞잡아 전기를 옆으로 옮기는 게임을 하거나 아이엠 그라운드 같은 서로의 닉네임을 호명하는 게임을 할 때부터 뭔가 둘만 아는 신호로 까르르 웃거나 서로만 계속 지목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눈치를 챈 사람도 많았겠지만 워낙 여기저기 잘 웃고 잘 끼는 성격답게 둘이 사귄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 어, 저기, 나는.
호준이의 반격이 시작되는 건가? 혜경이는 초등학생 싸움에 괜히 잘못 걸렸다는 표정으로 아디다스 저지 주머니 위로 두 손을 찔러 넣은 뒤에 가만히 상황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에서 레이저라도 나올듯한 기세로 가장 노려보는 대상이 된 건 호준이도 은아도 아닌 용기를 내고 고백한 은정이었다.
-그래, 이호준! 네가 말해봐. 이 모든 게 어떻게 시작된 건지 말해봐. 다 말해보라고! 고백은 호준이, 그래. 네가 그렇게 우리 오빠라고 하는 이호준 오빠가 나한테 먼저 했어.
은아는 호준이가 우물쭈물 뭔가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 이대로 꾹 참았던 뭔가가 드디어 터져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전도사님은 이쯤에서 상황을 끊어주긴커녕 더 이야기를 해보라고 마이크를 이리저리 옮겨주는 사회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은정아, 나는 네가 이미 오래전부터 호준오빠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어. 내가 그걸 왜 모르겠어. 항상 6학년 자리 쪽만 먼저 기웃기웃하고 기도하다가도 호준 오빠 자리를 힐끔거렸잖아. 네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은 안 했지만 기도 때마다 살짝 뜬 눈이, 보디가드 피구 할 때도 오빠 짝꿍이 되려고 순서를 나랑 바꾼 걸 나는 이미 다 알았다고.
-아, 아니. 나는...
다시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는 은정이 목소리 위로 이미 꽉 찬 눈물이 후드득 바닥에 떨어졌다.
-이 바보야, 널 은근히 무시해서 맨날 심부름시키고 뒤에서 네가 옷도 못 입는 찐따라고 놀리고 웃은 것도 바로 혜경언니랑 이호준 패거리야. 이호준은 왜 널 가지고 놀았는지 알아?
-...!
-그건 내가 먼저 고백을 단칼에 거절했기 때문이야. 나는 둘이 사귀는 것도 뒤에서 널 놀리면서 노는 것도 전부 알고 있었다고. 그렇게 하면서도 이호준은 나한테 와서 우리 집까지 와서 집 앞에서 나한테 세 번이나 고백을 했던 거야. 그것도 너를 핑계 삼아 걸고 이야기하면서까지!
-은아야. 으흐흐흑 난 그것도 모르고, 나는.
울먹거리는 은방울 자매는 이제 더 이상 누가 ‘쌍방울 자매’로 불러줄 것 같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둘이 서로 울음을 참아가며 삼키며 부둥켜안고 있었다.
영미언니의 반주는 한 구간만을 반복했던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한 구절 구간 반복에서 어느덧 축복송으로 바뀌어있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랑,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선물, 나는 널 위해 기도하며 네 길을 축복할 거야
전도사님의 손짓이나 사인도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안 영미언니가 자기 멋대로 고른 은아와 은정이에게 바치는 축복송이었던 셈이다.
-자자, 여러부운, 이제 각자 자리로, 웅성웅성 그만, 쉿! 조용조용! 다시 기도 합시다, 기도하자고요. 하나님께 죄에 대한 고백, 이유 없이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죄가 있나요? 그렇다면 고백을 하세요. 기도 하세요!
눈물을 닦다 말고 은아는 은정이를 쳐다봤다. 이미 욕을 하던 혜경이네 무리도, 우물쭈물하던 호준이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은아는 은정이 눈물을 닦아주다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은정아, 우리 여기 더 있지 말고 나갈래? 나가자.
은정이는 콧물까지 나서 눈물범벅인 얼굴을 어쩔 줄 모르고 후드티로 닦아내고 있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은정아, 이리 와봐, 괜찮아.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게.
아까 캠프 파이어 시간에 계속 튕겨 나왔던 은아의 돌멩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 모양만 봐도 자기 돌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불에 타지 않고 온전히 싸여있던 깨끗한 종이 아래 깨알 같은 은아의 글씨가 적혀있었다.
▶▷ 쪽지엔 뭐라고 쓰여있었을까, 쓰는 게 좋을까, 안 쓰는 게 좋을까,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고백의 끝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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