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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해 보이는 우산도 뒤집어진다

올해의 경험과 성장

by 앤나우


알레 작가님을 만나러 가는 날,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왔다. 불의 날, 화요일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집 근처 카페까지 와주신다고 해주신 덕분에 가벼운 마음과 발걸음으로 나와야지 했는데 세상에!


바람이 엄청났다, 으앗 추워,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커다란 파라솔 사이즈 우산을 집어왔다. 평소엔 무거워서 잘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 우산이지만 뭔가 바람을 잘 막아줄 것 같다는 이유로, 바람도 뚫고 나갈 것 같은 기세로 우산을 들었다.


바로 집 앞 카페라 뛰어가면 2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무거운 우산을 쓰고 가는데, 갑자기 엄청난 바람이 한차례 불더니 우산이 홀라당 뒤집어졌다.



순식간에 무방비상태로 하늘로부터 물벼락 맞는 기분.

뭐지?



이렇게 무겁고 단단한 뼈대를 가졌는데 왜 우산이 뒤집어진 거지? 어이없고 황당한 감정에 이어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후다닥 카페 처마로 들어가서 우산을 살펴봤다. 거대한 생선가시 같아 보이는 우산살들들이 천에서 분리됐을 뿐인데 이미 우산의 형태가 아닌 것 같았다. 너덜너덜 삐죽삐죽 튀어나온 철사와 넝마가 된 것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우산 살을 지탱해 주는 얇은 실 몇 개가 바람에 뜯겨 있었다. 내가 바람의 방향에 대항해서 꽉 잡는다는 게 사실 우산에는 아무 소용도 없었던 거다.


물건이 물건의 기능을 한다는 건 과연 뭘까?

무조건 크다고 튼튼해 보인다고 그 기능을 하는 게 아니구나, 깨달았다. 아주 작지만 얇게 하나씩 이어진 실 하나가 우산살을 촘촘하게 받쳐주고 있었고 그렇게 연결된 철사 하나하나가 버텨주기에 '우산'이라 불리고 기능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얇고 투명한 비닐우산도 우리가 우산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실 비를 막아주고 기본적인 기능은 다 붙어있기에 우산인거지 한 번 이렇게 날아간 우산은 그 이전 모습이 어찌 됐든 우산이 될 수가 없었다. 선율이가 들고 다니는 작은 아기 우산도, 급해서 구입한 투명 비닐우산도, 작은 우산도, 햇볕을 가려주는 양산도 모두 우산을 우산답게 해주는 기능이 있었던 거구나.


고리 끝에 하나하나 우산살을 끼우면서 무조건 대항하고 뻣뻣하게 굴기보단 그냥 바람에 살짝 우산을 숙였으면 더 좋았을걸, 무조건 커다란 게 최고다, 물을 하나도 맞지 않게 해주는 것만 생각했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강한 바람이 몇 차례 불 때 이미 우산은 중심을 잡기 힘들었고 바람에 날아갈 것처럼 떨렸다. 그때 오히려 짧게 내 몸 쪽으로 웅크리듯 우산을 잡는 건데, 그럼 물벼락 맞아서 정신 차릴 일도 없었을 텐데.


뒤집힌 우산 덕분에 여기저기가 젖고 물이 뚝뚝 흘렀지만 또 우산을 생각하면서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대단한 건지, 평소엔 있었는지 조차 몰랐던 우산살을 받쳐주던 얇은 실 하나가 사실은 우산의 심장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런 실 하나에 버텨낸 우산의 구조가 사실은 비, 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막아주고 보호했던 건데 작다고 해서 지나치거나 가볍게 넘긴 건 없었는지도 떠올려봤다. 나를 나답게 해 주는 거, 내 삶을 버티게 해주는 것도 어쩌면 대단한 사이즈의 엄청난 게 아니라 사실은 이렇게 작고 사소하고 스쳐 지나가는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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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가 항상 들고 다니는 우산이 떠오르는 대목, 우산에게 '아르튀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 마침 배달된 '오늘의 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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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를 돌아보며, 글쓰기를 마치는 소감을 묻고 있었다.


나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부분은?

올해 경험과 성장을 통해 느낀 감정은?

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뒤집힌 우산 에피소드처럼 사실 그동안 나는 내가 매 순간 화를 못 참고 버럭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늘로부터 엉뚱한 물벼락을 맞으면서도 화가 난다기보단 "왜"그랬을까? 뭘까를 먼저 떠올렸다. 새롭게 발견한 내 모습이다. <몹*쓸 글쓰기>를 통해 매일 글쓰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별 거 아닌 이 작은 일상이, 사실은 매일의 나와 내 모습을 관찰하게 하고 성찰하게 했던 것 같다. 튼튼하고 강해 보이는 뼈대가 있어도 언제든 뒤집어지고 찢기고 심지어 날아갈 수도 있다. 이번 우산 사건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뒤집히고 날아간다고 해도 그게 별로 큰일이 아니란 점을 느꼈다. 비를 좀 맞아도, 우산을 잃어버려도,은 계속된다.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다른 내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맞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이들에게도, 일상에서도 화와 짜증이 엄청나게 줄어있었다. 불안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었는데 몇 해 전부터 이런 성격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성장할 수 있었던 많은 요인 중에 나에겐 '글쓰기'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구나. 왜 그랬는지, 질문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뻗어서 이유를 찾아보는 과정이 회피하는 과거의 나와는 달라진 점이다. 왜에서 더 들어가서 엉뚱한 방향인 죄책감, 자책감으로 흐르지 않고 담담히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사실을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일상이 무조건 자책으로 흐르고 엉뚱한 데서 완벽을 부르짖었던 내 마음이 '굳이'그렇게 안 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이런 경험과 성장을 날마다 느끼는 건 아니지만 신호를 받고 이전보다 전환이 빨리 되고 조금씩 성장해 가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열정이나 시련은 사실 외부로부터 오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걸 마주하는 나의 생각, 삶에 대한 작은 태도, 습관에서 오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을 배워가고 쌓아가는 한 해였다. 그러니까 보이는 모습과 기대하는 내 모습에 커다란 괴리감도 사라진 지 오래다.


언젠가 앞집에 이웃으로 지내고 있는 친한 동생 은진이가 해준 말인데 그 말이 나를 참 기분 좋게 했다.



나경언니, 언니는 언니의 말 한마디로 핵심을 알려주기도 하면서 분위기도 바꿀 수 있는 사람이야. 늘 언니만의 흐름을 가지고 있고, 즐거움과 웃음을 주는 사람이야.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아만다, 우리 은진이의 말로 대신한다. 내가 힘들고 누군가를 싫어하는 사람들, 장소를 떠올릴 때도 은진이의 말이 한 번씩 생각났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피하기 보다도 내가 잘하는 게 그거라면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보게 됐다. 피하기보단 답을 찾아가는 사람으로 계속 계속 1mm라도 성장해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알레 작가님을 만나고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질문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시 시작된 글쓰기와 이어질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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