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가 돼준 유년시절 성장, 그리고 사람들
맞아, 성장은 너무 아프다. 고통 없는 성장이 있었으면 할 정도로 성장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슬픔이나 눈물, 고통이 따르는 것 같다. 인사이드아웃의 행복한 결말처럼 슬픔이나 불안이가 있기에 한차례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기쁨이가 더 웃을 수 있는 건 잘 알겠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의 세계로 나간다는 건 역시 가슴이 아프다. 나는 누구보다 기쁨을 추구하는 기쁨이 자체이기에 슬픔의 본질로 들어가는 자체가 남들보다 무섭고 무겁게 느껴진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시작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어느 날 슬픔을 발견한 한 꼬마의 이야기-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시작부터 눈물을 쏟았던 이 책을 피아노 학원에서 다시 만났을 때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피아노 학원에서 읽은 책은 이희재 작가님이 그린 만화책이었는데 꼬마 제제가 맞거나 상처를 따가워하는 부분 같은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상상했던 모습보다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그저 어른들에게 잘 보이고, 동생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애교를 부리거나 기분을 맞춰주느라 동분서주하는 모습에서 특히 마음이 아팠다. 영리하고 사랑스럽고 또래보다 조숙한 제제. 나도 어린아이 었지만 글로리아 누나와 쎄실리아 빠임 선생님처럼 제제에게 편이 돼주고 맞고 있을 때 막아주고 싶었을 정도로 그 아이의 감정에 온통 '몰입'했다.
어른이 돼서 다시 읽어보니 알겠다. 이건 너무 아픈 성장 이야기라는 것을. 제제는 철없는 개구쟁이 말썽꾸러기가 아니라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아이구나. 제제가 유일하게 아이와도 같은 순간, 솔직한 모습 그대로인 순간은 그의 라임 오렌지나무 '밍기뉴'앞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뽀르뚜가 아저씨' 앞에서 솔직한 마음을 말해줄 때뿐이란 걸.
어른이 되니 좀 더 알겠다. 학대와 방치 속에 자란 아이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더 영악해지고 때론 더 철없어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아이였을 땐 잘 몰랐던 게 보이니 어린이 돼서도 이 책을 여전히 좋아하고 제제를 사랑했다. 눈물은 더 났지만, 제제 덕분에 좀 더 좋은 어른이, 밍기뉴 같은 친구가, 뽀루뚜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 책에 등장하는 평범한 대화 한 마디 한마디가, 일상 속이 나에겐 눈물버튼이었다.
"괜찮아요."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너무도 슬프고 실망스러워서 이런 일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고만 싶었다.
내놓을 거야. 혹시 알아. 기적이 일어날지? 있잖아, 형, 난 선물을 받고 싶어. 딱 하나만이라도. 아주 새 거로. 나만의 것 말이야.
아빠…… 아빠가 절 때리시겠다면 반항하지 않겠어요. 막 때리셔도 좋아요.
선생님께서 가끔 저 대신 그 애한테도 돈을 주셨으면 좋았는데. 그 애 엄마는 남의 집 빨래를 하세요. 애들이 열한 명이나 된대요. 게다가 모두 아직 어리구요.
이 병은 결코 비어 있지 않을 거야. 난 이 병을 볼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거야. 그리고 이렇게 생각할 거야. 내게 이 꽃을 갖다 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나의 학생이라고. 그럼 됐지?
소용없어, 누나. 첫 번째 풍선은 한 번밖에 못 만들어. 첫 번째 풍선을 잘 만들지 못하면 그걸 다시 만들 수도 없고.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없어져.
엄마,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내 풍선처럼 됐어야만 했어요.
식구들은 의심이 갈 정도로 내게 잘해 주었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잃은 것처럼 허전했다. 나를 다시 예전의 나로 되돌려 주고, 사람과 그들의 선한 마음을 믿게 해 줄 중요한 무엇인가가 사라진 것 같았다.
만약 아빠가 안 주겠다고 하면 날 사겠다고 하세요. 아빤 돈이 한 푼도 없으시거든요. 아빠는 분명 날 팔 거예요.
인생이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하마. 네 말대로 하고 싶기는 한데 너를 네 엄마 아빠한테서 데려 올 수는 없어. 그건 옳은 일이 아니야. 지금까지도 널 아들처럼 사랑해 왔지만 앞으로는 진짜 친아들로 대해 주마.
우리에게 감동적인 순간, 기억을 떠올려주고 소중한 '사람'에 대해서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감동'이라고 썼지만 온통 상처와 학대, 고통으로 성장한 아이가 바로 제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은 아이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픈 성장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그렇기에 늘 그 자리에 있고 마음을 터놓는 작은 라임오렌지나무와 친구가 되고 유일한 어른다운 어른인 뽀루뚜가에게 안겨 마구 어리광도 피울 수 있었던 거겠지. 남들은 평범하게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맛있는 도시락을 싸서 놀러 가는 소풍이 여전히 특별하고 소중한 일이 되는 아이들이 세상엔 여전히 많다. 나는 어떻게 특별하고 소중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고 싶어지는 연말이다.
유년이 우리의 많은 것을 형성해 주고 자라게 해주는 뿌리라면 나의 유년과 성장은 어땠을지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나우앤톡'회원들과 함께 나눈 기억도 난다.
(우리 나우앤톡, 여러분 잘 계신가요? ㅎㅎㅎ)
2024년 내가 꿈꾸는 열매가 있나요?
(서로에게 주는 짤막한 메시지도 적어보아요.)
‘제제’에겐 상상의 친구 밍기뉴(슈르르까)와 뽀르뚜가 아저씨, 따스한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도 뻗어나가는 가지와 단단한 성장의 줄기가 됐지만 아빠의 매, 가족들의 학대와 낙인도 아픈 성장의 계기가 됐을 것 같아요. 모든 성장엔 기쁨만 있는 건 아니지요. 현재 나를 괴롭게 하지만 나아가게 하는 걸 조심스럽게 찾아봐요.
돌봐주는 든든한 나무와 같은 가정, 울타리 넓게 뻗은 그늘 같은 사람 한 명, 주변의 환경이 아이에겐 단단하게 박히고 성격과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뿌리가 되기도 합니다. 나의 유년의 뿌리(쓴 뿌리, 기쁨의 뿌리도 좋아요, 나를 일으켜준 경험과 나에게 용기를 준 사건이 있다면 같이 적어주세요.)
세상에, 2024년이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에 2024년 초에 나눴던 책 이야기라니, 뒤늦은 나의 뒷북에 할 말을 잃다가도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워크북 자료를 만들고 뭘 나누고 싶었던 걸까.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읽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무척 많다.
사랑 없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제 안의 사랑에 만족하기도 하지만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절망할 때가 더 많습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9화 『마지막 고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