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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공개수업

함께 잡아주고 밀어주고 끌어주는 기쁨

by 앤나우

아이들 태권도 공개수업에 갔다.

코로나 이후로 처음 하는 공개 수업이라고 한다. 관장님께선 일반 수업과 똑같이 1시간 반으로 진행되기에 이 수업을 위해서 아이들과 따로 특별한 훈련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괜히 더 특별하게 잘하기 위해서 아이들도, 선생님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어떻게 수업이 이루어지고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자리라는 게 좋았다.





어린이집 하교 후에도 놀이터에서 벗어날 생각을 안 하는 둘째 때문에 태권도 학원을 보내야지 생각했다.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늘 두세 시간씩도 놀이터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지치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피아노학원과 미술 학원에선 너무 어리다고 좀 더 커야 다닐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차에 마침 놀이터에서 만나서 함께 어울렸던 재이가 태권도장에 간다고 해서 선율이도 같이 꼬셔서(?) 한 번 체험을 하자고 했다.


평소에 노는 걸 좋아하고 특히 달리기나 매달리기 같은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라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건만, 웬걸, 아이는 '학원, 공부, 또 다른 유치원'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는지 세상에!

태권도장에 도착하자마자 엘리베이터조차 타려고 하질 않았다. 병원에 갈 때도 이러진 않았는데;; 질질 끌려가는 모양으로 문 앞에까지 왔는데도 도저히 흥미를 보이지 않고 기웃기웃 서성이다 망설이고 안 들어가겠다고 버티기까지 했다. 함께 계단에 앉아서 쪼그리고 기다려 보기도 하고 다른 누나들과 친구 재이도 나와서 함께 들어가자고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태권도장 입구에서부터 새로운 걸 알았다.


아, 무조건 처음부터 다 쉬울 거란 법은 없구나. 활달하고 움직임이 많다고 해서 그걸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건 내 착각이었구나. 사실 율이는 발랄한 성격도 있지만 낯선 장소, 사람들에 유독 예민한 편이기도 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와락 안기기도 잘하지만 분위기와 눈치를 살피고 탐색의 시간을 꼭 가져야 했다. 규칙을 지켜야 하는 분위기가 싫었던 거겠지. 아이는 뻥 뚫린 야외에서는 직진본능으로 흥분해서 어디든 나아가고 실내 공간에선 조금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불안이나 긴장보다는 진짜 몸을 베베꼬고 부끄러운 듯한 모습이라, 사실 조금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주면 될 일이었다.

큰 아이는 또 둘째와 달리 낯선 환경을 좀 더 불안해하고 긴장도 많이 하는 편이라 익숙해질 때까지 노출을 많이 시켰던 것 같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서 적응력도 그만큼 빨라지고 자연스러워졌다.



그래, 이쯤 하면 됐다. 체험조차 못한 건 아쉽지만 아이가 이토록 싫어하는 걸 억지로 들이밀기도 싫어서 포기하고 가려고 했는데 관장님께선 괜찮다고 기다려주셨다. 쉬는 시간에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오게 하고 가위바위보 게임도 하고, 마이쮸도 주면서 문 앞까지 가는데 성공, 막상 수업을 지켜보니 재밌어 보였는지 그 안으로 들어가서 함께 참여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됐다. 첫날 2시간도 넘게 태권도 학원에서 대기하고 수업을 지켜본 덕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기다려주는' 관장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급할 것 없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런 아이들도 많다고 해주시는데 데려가는 시간에서 진땀을 빼긴 했지만 챙겨주는 마음에 감사했다. 예상대로 율이는 누구보다 태권도를 좋아했다.


아이는 태권도를 재밌게 다니기 시작했다. 얼마나 재밌게 다녔다면 초등학교 4학년 형이 부러워할 정도로, 공간이 생길 때마다 체력단련도 하고 품새 연습을 흉내내기도 했다. 그래서 동생과 같이 태권도를 배우겠다는 형도 함께 등록해 줬다. 다른 스케줄 때문에 매일 갈 수는 없었지만 스케줄을 조정해서 주 3일, 4일은 동생과 함께 태권도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영어며 수학 같은 *공부하는 학원은 한 군데도 안 다니는 4학년인데 태권도도 가고 싶다고 하도 졸라서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우선은 끈기 있게 다닐 것, 두 번째는 도장에서 동생을 챙겨주겠다는 약속을 한 후 함께 등록해 줬다.

남들은 주요 과목 학원에 다니느라 태권도를 하나 둘, 끊는 추세에 엄마는 반대로 태권도를 등록해 준 거라며 얼마나 생색을 냈는지 모른다. ㅋㅋㅋ 컴퓨터, 미술, 피아노, 도자기같이 좋아하는 것만 4년 넘게 다니는 아이라 사교육을 안 한다고 할 순 없지만 학교 성적과 관련된 학원은 하나도 없기에(T_T) 마음에선 계속 영어나 수학 학원에 보내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뭐 이것도 이거대로 뭔가 하고 싶고 조를 때에는 우선 간절히 원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준 후(한 달 정도 고민해 보기), 그럼에도 가고 싶다고 할 땐 기회를 주는 게 맞는 것 같다.



저녁 시간에 태권도를 다녀온 후엔 둘 다 얼마나 뛰었는지 머리까지 흠뻑 젖어서 나에게 달려왔다. 날마다 다양한 활동, 게임도 그날그날 영상으로도 보내주시고 상담 전화까지 친절하게 해 주셔서 태권도가 원래 이렇게 다정한 곳이던가, 마음마저 뭉클해졌다. 집 앞 단지 안까지 차량도 해주시고 큰 형아가 있는 덕분에 나에겐 저녁에 자유시간이 늘어났다. 태권도가 끝나자마자 달려온 두 아이들 입에서는 '태권도 더 하고 싶어요'가 자동으로 나왔다. 방금 하고 왔는데 바로 또 하고 싶을 만큼 어마무시하게 재밌는 수업이구나, 점점 궁금해졌다. 오늘은 무슨 활동을 했고, 무슨 상을 받았고, 날마다 작은 성취를 통해 기쁨을 쌓아가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 것도 기쁘고 즐거웠다. 하지만 능숙한 엄마라면 언제까지나 내내~ 아이가 이런 상태일 거라고 믿지 않는다.

3개월 차쯤에는 반드시 슬럼프나 슬슬 반복된 패턴에 지루해지는 타임도 오기에.


기초 체력 훈련이 이어지자 끈기 있는 첫째는 도전하고 힘들어하지 않았지만(본디 싫증을 잘 안 내고 하나를 해도 끝까지 하는 걸 목표 삼는 아이라 걱정은 하지 않았다) 운동을 어떻게 해서든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둘째는 점점 '태권도 가기 싫어요', '힘들어요'하는 말이 하나, 둘씩 늘었다.


PT체조 준비 훈련이나 전신 타바타 운동 같은 걸로 준비 운동을 하는데 아마 그 과정이 조금 힘들었나 보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관장님과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하고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맨날 보냈다.

다독일 때도 있었고 다급하게 챙기며 같이 나가기도 했고 태권도장으로 직접 같이 걸어가 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끈기랑은 거리가 먼 둘째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 나 태권도에서 이렇게 땀 흘리면서
내내 (앉아서 발끝을 가리키며) 손 뻗기를 했는데
하나도 안 힘들었어!
나 이제 잘해!




땀이 났는데도 너무 재밌었어!




땀이 줄줄 났는데도 재밌었다는 아이 말에 땀범벅인 아이를 꽉 끌어안아줬다.



징징 거리며 힘들어서 태권도를 쉬겠다며 태권도 갈 시간에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다는 아이였지만(속이 너무 빤하게 보여서 성공할 수 없는 거짓말들ㅋㅋㅋ) 끈덕지게 한 달을 보냈더니 다시 즐거움이 시작됐다. 다시 지루하고 힘들어질 때도 이 태도를 기억하기로 다짐했다. 기쁜 감정은 지금 잠시 또 지나갈 수 있지만 끈기 있게 도전하고 기다렸더니 '할 수 있게 되는' 성취는 온전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거니까. 나도 포기가 빠르고 끈기는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인데 아이를 키우며, 나보다 더 끈기 있는 아이들 덕분에 인내를 조금씩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일부러 귀한 공개 수업 자리를 마련해 준 관장님께 정말 감사를 드린다. 평소 아이들 수업을 영상으로도 보고 소통도 자주 하지만 어떤지 늘 궁금했던 엄마로, 아빠와 함께 주말에 아이들 수업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건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번에 태권도 수업을 가서 땀을 뻘뻘 흘리며 품새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너무 기특했고 별 거 아닌 한 동작이 별 거 아니라 엄청나다는 걸 바로 앞에서 느꼈다.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그 많은 동작을 외우고 정확하게 하기 위해 기억한 아이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아직 다닌 지 얼마 안 된 우리 아이들은 품새 시범을 보이진 않았지만 멋진 형아, 누나들의 특별 순서가 있어서 참 좋았다.




참관 수업을 하고 좋았던 점이 참 많았는데 몇 가지를 꼽아보자면




태권도는 생각보다 기초체력 훈련을 탄탄히 해야 하는 운동이다.

집중하고 기다리고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배우고 활용할 수 있다.

태권도는 혼자서 수련할 수도 있지만 '함께'했을 때 더 즐겁다.

실패란 게 없이 '도전'의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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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도구로 날마다 다양한 수업을 할 수 있는 태권도 (아이들 윗몸일으키기 실력에 깜놀!*_*)






우리 아이들이 기초체력이 이렇게 향상된 줄 몰랐다. 윗몸일으키기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빨리 잘하는 줄 몰랐는데 그동안 땀 흘린 보람이 느껴졌다. 발차기도 손날 막기도 모두 '코어'힘이 바탕이 돼야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서있을 수 있다. 기초체력이 있어야 하기에 근력 운동을 통해서 체력 단련을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아이들과 같이 바깥놀이를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체력장이나 기초단련 같은 시간을 가진 게 아니라 아이들이 얼마큼 성장하고 뭘 잘하고 부족한지 몰랐던 나에게는 새롭게 눈이 떠지는 순간이었다. 집에서도 조금씩 온 가족이 체력 단련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운동도 되고 더 좋을 것 같았다.


태권도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적과 상대한다고 생각하고 싸우는 훈련을 하는데 그게 바로 '품새'라고 한다. 효과적이고 합리적으로 스스로 방어하고 공격 태도를 취하는 아이들이 멋있어 보였다. 단순해 보이는 동작인데도 절도 있고 단정한 힘이 느껴졌다. 왜 땀이 나는 지도 알 수 있을 만큼 집중하는 아이들 모습이 멋져 보였다.


서로 팀별 경기를 하거나 기초 단련을 할 때도 뒷사람이 앞사람 발목을 잡아주고 팔 굽혀 펴기를 할 때도 흔들리지 않게 매트와 발을 붙잡아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것보다 앞에 있는 아이들이 잘하도록 잡아주고 숫자를 세주는 모습이 더 기특하고 귀여웠던 것 같다. 아이들은 늘 해오던 일상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축구공만 날아와도 늘 자기 혼자 차고 싶어서 공을 들고뛰었던 둘째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앞사람 윗몸일으키기도 도와주고 팀별 게임도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동작이 날카롭진 않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첫째 아이 모습도 기특하고 멋졌다.


목소리가 작거나 조금 주저주저하는 아이들에게도 '다시' 한 번 더 도전의 기회를 주면서 하나씩 매일 이루는 성취의 기쁨을 누리는 수업이었다. 다른 아이들 모두 사랑스럽고 예뻤다. 흥분한 둘째가 말을 너무 많이 하고 까불어서 살짝 부끄럽긴 했지만(*관장님 죄송합니다) 그 마저도 즐겁게 포용해 주며 카리스마 있게 수업을 이어나가는 관장님께 박수 쳐 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수업을 하는 초기에도 선율이는 이미 운동 실력도 뛰어나고 불안하거나 긴장하는 거 없이 다 도전해 보는 아이기에 태권도 수업으로 뭔가를 하기보다는 수련의 의미로 기다리고 화합하고 규칙을 배우는 '태도'를 배운다고 했는데 6살 우리 아이에게 꼭 필요하고 내가 원하던 부분이었기에 공감하며 들었다. 날뛰는 아이들이 오히려 태권도를 하고 더 설치는 경우들도 있기에 그런 우려들로 태권도를 배우지 말라는 주변의 만류들도 많았다. 이런 부분에서 고민되기도 했지만 관장님이 상담 시간에 전화로 해준 말씀에 오히려 더 배우고 집중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됐다.

우리 아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무도인의 태도'라니! 무도인이 되기에도 지금도 너무 수다스럽고 촐랑거리지만 ㅋㅋㅋ 수련할 때만큼은 이제 제법 진지해질 것 같은 아이들 모습을 기대해 본다.

첫째 아이에겐 몸을 사용해서 움직이는 날마다의 성취와 도전의식을 쌓아가겠다고 해주셨다. 아이들이 다닌 지 6개월이 조금 안 됐지만 매번 소통하고 아이들의 크고 작은 도전에 손뼉 쳐주고 재밌게 수업해 주시는 관장님께, 재밌는 수업의 과정을 사진 찍어주시고 유치부 활동도 살펴주시고 마음까지 살펴주시는 차량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여기는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 오빠들이 동생들과 수업하면서 수업도 봐주고 필요한 동작도 도와주는데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빨리 적응하고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태권도 학원은 안 다녀봤기에 어떤 곳인지 더 궁금했는데 이번 참관 수업에 아이들의 손날치기 격파를 눈앞에서 직접 보니 이런 통쾌함이 있구나, 느낄 수 있었다. 체력단련부터 태권도는 어쩐지 엄마*아빠에게 더 필요한 운동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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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아들보다 더 환하게 웃고있는데 초상권이 있기에 ㅋㅋㅋ




*공개 참여 수업 후기도 영상으로 만들어 주셨다. 감사합니다, 박성준 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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