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만에 먹어보는 초등학교 급식인가!
운영위원회라든가, 올해의 마지막 학교모임이라고 하지 않고
올해 마지막 '정담회'모임이 있었다.
정담회
세 사람이 솥발처럼 벌려 앉아서 이야기하는 모임.
1. 정답게 주고받는 이야기.
2.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이야기.
교감 · 교장선생님 두 분을 비롯, 운영위원회 회장을 포함한 학부모 11명이 함께 하는 자리였다.
인상이 좋으신 3학년 학생의 아버님 한 분도 참여하셨다. 갑자기 브런치에서 알게된 페르세우스작가님이 생각난 건... ㅎㅎㅎ 이런 자리에 아버님이 선뜻 오시기 힘드셨을 텐데 작년엔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아빠'로도 활동하셨다고 한다. 오오! 베테랑이시다! 점심시간에 함께 급식을 먹을 때 옆 자리에 앉으셨는데 학교와 아이 이야기를 하며 수다 꽃을 피웠다. 아빠들이 더 많이 기회를 조금씩 만들어서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나는 이런 모임을 귀찮아하는 편인데 올해 책 읽어주는 엄마 활동을 하면서 학부모 연수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고 일회성 모임이 아니라 연강으로 모둠별 실습도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 덕분에 타학교 운영위원회에서 하는 '성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볼 수 있었다. 유익하고 알찬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우리 큰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금요일마다 그림책을 들고 가서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작년에는 2학년 아이들도 했다고 하는데 올해는 1학년 아이들에게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이미 큰 아이는 고학년 형님이 됐다. ㅎㅎ
큰 아이가 3살 무렵부터 그림책과 동화책을 엄청나게 읽어줬다. 주변에 누나, 형들이 많아서 물려준 좋은 책도 다양하고 꽤 많았는데 그때마다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읽고 또 읽었다. 한 권만 더 읽어달라고 아이가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애절하게 쳐다보면 이내 마음이 약해져서 목이 쉬더라도 그래, 한 권만 더 하면서 책을 펼쳤다. 읽을 때마다 다른 게 보였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들어서 짓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책 읽기 프로그램은 꼭 참여를 해보고 싶었는데 정작 내 아이가 일 학년일 땐 지원자가 많아서 탈락하고 올해는 그냥 지원하자마자 바로 읽어달라는 요청이 왔다. 기분이 좋았다. 내 아이는 없지만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들어가서 수업 전에 내가 고른 새로운 이야기 한 편을 아이들에게 즐겁게 읽어줄 생각을 하니.
나는 아이들과 책, 이야기, 모두를 좋아하는데 그 모든 걸 합친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다양한 봉사의 영역이 있지만 내가 즐겁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나마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도 쉼과 '전환'이 되고 싶었다. 신중하고 책을 고르고 또 골랐다.
놀이터 죽돌이(?) 아들을 둔 덕에, 일 학년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는 얼굴이 수두룩 했다. 여기저기서 반가운 인사가 들렸다. 어수선한 분위기도 잠시, 이내 집중해서 이야기에 빠져드는 아이들 표정을 보는 건 행복했다. 어떤 상상을 하는 걸까, 다소 산만해 보이는 아이들이 질문을 던져도 그런 아이마저 사랑스러웠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 주고 즐거워해 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처음 읽어준 책은 피터레이놀즈의 '느끼는 대로'였는데 마지막에 우리가 느끼는 대로 행복을 표현해 보자라는 말에 돗자리에 드러눕는 아이들도 있었다.
1반 선생님께서 뛰어오셔서 아이들에게 책을 한 번 더 읽고 싶다며 책을 두고 가달라고 하셨고
-어머님, 혹시 무슨 일을 하셨어요? 너무 재밌게 잘 읽어주시는데요! 깜짝 놀랐어요. 저도 집중해서 아주 재밌게 들었답니다. 감사해요.
라고 칭찬까지 해주셔서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동화구연이나 책 읽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그림책 읽어주는 건 전공하지 않아도 나의 전공 분야기도 하니까. ㅎㅎㅎ
작은 시작 덕분에 학교에 갈 때마다 사실 금요일이 빨리 돌아오는 듯하기도 했고 분주할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고 설레는 일이었다. 신랑이 금요일마다 둘째를 등원해 주거나 앞집 친한 동생 은진이에게 선율이를 부탁해야 했지만 모두가 도와준 덕분에 1년을 참여할 수 있었다. 세상은 역시, 나 혼자, 내 뜻으로 한다고 해도 귀한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이 함께 해야 나아갈 수 있나 보다.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어서 그런지, 책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서 그런지, 학교가 나에겐 즐거운 놀이터 같았다.
오늘도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그 말 한마디에 바로 가겠다고 신청했지만 생각보다 유익하고 즐거운 정담회 시간이었다. 내가 느끼고 배운 부분을 나눌 수 있었고 올 한 해 좋았던 부분, 아쉬웠던 부분과 건의 사항도 터놓고 말할 수 있었다. 아... 또 내가 제일 많이 떠들다가 온 것 같긴 하지만, ㅎㅎㅎ
그만큼 올 한 해가 나에겐 이것저것 학교에 대해 경험하고 누릴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책 읽는 어머니, 이야기 선생님이 없었다면 전혀 몰랐을 '학교'의 또 다른 부분들을 만나고 알 수 있어 좋았다. 함께 해준 이야기 선생님들과 애써주시는 선생님들, 직원분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어서 감사했다.
급식은, 우리 선재의 말처럼, 끝내줬다! ㅋㅋㅋ 왜 맨날 두 그릇씩 먹는 줄 먹어보니 알겠더라,
닭다리는 이븐 하게 구워졌고 세상에 간은, 간잽이 저리 가라, 짜지도 너무 달지도 않고 적당히 짜고 맵고 달달하고 매콤했다. 선재가 늘 극찬하는 영양사 선생님께선 정말 앳되게 보이셨는데 최고!!
아,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급식 얼마만이 아니고, 나는 초등학교 때 한 번도 급식을 먹은 적이 없다.
반전 ㅋㅋㅋㅋ
늘 빨간색 일제 코끼리 밥통에(우리때 유행하던 보온 도시락 통이다) 엄마가 밥과 국과 반찬까지 전부 다 담아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ㅋㅋㅋ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도시락도 늘 우리 반 아이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와, 급식 최고!
엄마가 되니 역시 급식 최고!!
매일 점심마다 이렇게 퀄리티 높고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니, 절로 힘이 날 것 같았다. 시간표는 못 외워도 아침마다 선재가 한 달 급식표를 뚫어져라 보고 달달 외우는지 오늘에야, 밥 한 숟갈을 뜨면서 직접 몸으로 느꼈다. 탁 트인 급식실도 깨끗하고 무엇보다 넓고 깊은 급식판이 안정감 있어서 좋았다. 토마토 카프레제는 무슨 치즈가 두장씩, 발사믹 소스도 훌륭했고... 아, 먹는 이야기가 끝이 없다, ㅋㅋㅋㅋ
(심지어 나는 카레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닭고기 카레가 맛있었당>_<)
급식 모니터링을 하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꼭 한 번씩 해보라고 추천해드리고 싶다.
정담회 이야기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먹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 밤에 군침 좔좔 흘리는 ㅋㅋㅋㅋ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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