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부지
사는 게
너무
심심하다 하셨다
큰 체구에
풍이 걸려 아무것도 못하니
사는 게 너무
외롭고
심심하다 하셨다
새벽 두 시
잠에서 깨 화장실로 향할 때
잠도 못 이룬 채
거실 천장을 향해
소처럼 커다란 눈만 꿈뻑꿈뻑 굴리던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여전히 풍채 좋으신
커다란 몸
이젠 풍이 걸려버린
불편한 몸
새벽 5시
어김없이 들리는 TV소리
뽀빠이 이상용 아저씨는
노인에게도
재미와 삶과 즐거움이 있다며
재치 있는 입담으로 웃음을 주지만
그건
몸이 아프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다
그건 우리 할아버지에겐
해당사항 無
풍이 들어 버린 우리 할아버지에겐
해당사항 無
할아부지,
통리에 하얗게 눈이 덮일 때면
산으로 들로
포동포동 가장 하얗게 살찐 토끼를 잡아주시고
통리에 파랗게 꽃이 필 때면
산으로 들로
산들산들 잠자리며 나비를 잡아주셨던
울 할아부지
이제는 손바닥만큼 작아지고 말라버린
황지 연못이
그때는 바다만큼 깊고 무서웠어요
황 부자 며느리도, 개도 돌아보는 순간
돌이 돼버렸다고
황지 못 전설을 재미있게 들려주셨던 할아부지
같은 얘길 몇 번이고 들어도
재밌고 무서웠던 어린 시절
그럼 저게 진짜 황부자 며느리란 말이지?
구멍 송송 난 돌을 가리키며
몇 번이고 되물었던
어린 시절
누가 봐도 가짜 동상인데
덜덜 떨며 손끝을 가리킨 어린 나를 번쩍 안아주셨던
우리 할아부지
도시락 컵라면을 두 개씩 드시고
시내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커다란 쟁반 짜장을
우렁찬 목소리로 시켜주시던 할아부지
광부 할아부지
광산 목공소에서 일하시다 손가락이
두 개나 잘리신 할아부지
나무와 돌을 친구처럼 조각하시던
조각가 할아부지
개울 아래 꼭꼭 숨어있는 예쁜 돌을 찾아
집에서 다시 작품으로 만들었던
돌 수집가
예술가 할아부지
이제는 그 어떤 직업으로도
부를 수 없는
그냥 할아버지
우리 외할아버지
할아부지
그래도 여전히
나한테
하나밖에 없는
참 좋은 우리 할아부지
할아버지는 손가락이 없는데도 늘 새벽부터 일하시고 우리에게 사탕이며 호빵이며 간식을 한 아름 사가지고 오셨다. 나는 아기였을 때부터 할아버지의 잘린 손가락 부분을 만지는 걸 좋아했는데 손톱 대신 짧아진 마디에 있는 맨질맨질한 부분을 만지고 또 만졌다. 볼 때마다 왜 이렇게 됐냐고 자꾸자꾸 물었다. 할아버지는 마디가 잘린 손으로도 나를 쓰다듬어주고 번쩍 안아주고 그때마다 '기계에 들어가서 잘렸지~' 웃으면서 대답해 주셨다.
엄마는 남동생만 줄줄이 세 명이나 딸린 큰 딸이었는데 할머니는 남자아이를 바랐는지 몰라도 할아버지만큼은 늘 몸이 약한 우리 엄마를 안아주고 가장 많이 사랑해 주셨다고 했다. 아빠가 사우디로 돈 벌러 가셨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엄마 옆에서 언니와 나도 몇 년간 키워주며 몸이 약했던 엄마 곁을 지켰다. 아마 그때 줄줄이 사탕으로 올라온 외삼촌 세 명을 우리 아빠가 함께 키워주기로 결심했던 것 같다. 언니보다 더 어렸던 나를 돌봐주셨던 두 분. 기억은 하나도 안 나지만 그래서인지 나의 영아기를 늘 지켜주셨던 두 분이기에 성장하면서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여름방학, 겨울방학마다 꼭 할머니댁으로 놀러를 갔다. 나는 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통리역에서 기차역까지 마중할 수 있는 표를 끊어서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두 분을 보면서 언니와 나는 헤어질 적마다 유리에 얼굴을 대고 울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두 분이 죽으면 어쩌지를 고민하고 미리 슬퍼하고 걱정했다.
언니, 우리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 이제 심심해서 어떡해?
언니, 두 분이서 우리 보고 싶어서 어쩌지.
자석끼리 서로 붙고 끌리듯이 통리로 가는 기차를 타는 시간이 참 좋았다.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눈이 무릎까지 쌓일 정도로 온통 하얬던 통리.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았던 낡고 작았던 '한보'아파트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놀거리가 없던 언니랑 나는 삼촌들이 남겨놓은 만화책이며 종이학, 할아버지가 모아놓은 돌멩이를 가지고 놀았다.
거기에서 언니랑 나랑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뒹굴거리고 맨날 과자 사다 먹고(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신 용돈으로) 할머니가 구워준 생선이며 고기반찬에 살이 통통해져서 서울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 댁에서 본 하늘은 별이 쏟아질 듯 많았다. 〔모든 별들은 음악 소리를 낸다〕, 이 소설을 읽을 때도 제목을 보자마자 유년시절 통리의 밤하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당시 옛날 분 치고는 키도 180센티가 넘으시고 풍채도 좋으신 할아버지께서 풍이 걸리시고 쓰러지시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셨다. 할아버지를 돌보는 게 힘에 부치신 할머니께서 살이 10킬로 넘게 빠질 무렵 요양원으로 할아버지를 모시던 날 엄마는 엄청 많이 우셨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할아버지를 뵈러 요양원에 갈 때마다 얼른 가라는 그 손짓에 더 마음이 아팠다. 정신이 끝까지 온전하셔서 스스로 어눌하게 말하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거동조차 할 수 없다는 게 부끄럽고 답답해 보이셨다. 나는 그때 마주하는 할아버지의 껌뻑껌뻑 감았다 뜬 눈이 너무 슬퍼 보여서 할아버지 얼굴만 봐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산으로 들로, 늘 호방하게 다니시며 건강하셨던 할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한 걸음조차 못하고 밥도 제대로 수저질도 못하고 누군가 위생장갑으로 발라놓은 생선을 덜덜 거리며 드시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엄마는 늘 헤어지며 할아버지 귀에
"아빠, 정말 사랑해요. 우리 천국에서 꼭 만나요."라고 속삭였다. 엄마가 저렇게 사랑 고백을 잘하는 분이라니, 놀라면서도 할아버지 볼에 얼굴을 비비는 엄마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나한테 아들을 세 명 낳을 거라고 하셨는데 두 명을 낳았네, 할아부지. 언니는 할아버지 말처럼 아이를 네 명이나 낳았구. 우리 선재는 요양원에 데려갔는데 선율이는 못 보고 떠나셔서 할아버지가 선율이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게 가끔 궁금하더라고. 할아버지의 석수들은 아직 그대로야. 할머니가 방 한쪽에 하나도 안 치우고 그대로 가지고 있어. 할아버지가 직접 나무로 조각한 원앙도 할머니가 나랑 임서방한테 선물해 줬어.
대학교 시창작 시간에 시를 써오라고 했는데 나는 왜인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시를 적어 갔다. 나는 늘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정서적 사랑이 부족하다고 여겼는데(이걸 이야기하면 우리 부모님은 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허용해 주고 사랑해 주는 이 풍부한 감정이 늘 어디서 오는지 늘 궁금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유 없이, 그냥, 무작정 내 편이 돼주고 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셨던 어린 시절 두 분이 떠올랐다. 내 삶의 가장 약하고 어렸던 순간에도 온 마음으로 나를 챙겨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챙겨준 두 분. 이상하게 우리 할머니는 나한테 살갑고 따뜻한 분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넘칠 만큼 맛있는 밥과 간식과 선물로 언니랑 나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주셨고 할아버지는 늘 웃는 얼굴로 언니랑 나를 꽉 안아주셨다. 새벽에 출근하는 길에도 늘 잠들어있는 언니와 내 방이 춥진 않은지, 우리가 이불을 차고 잠든 건 아닌지 우리 자리를 살펴주시고 나가시던 그 큰 손의 촉감을 기억한다. 추위를 그렇게도 싫어하는 내가 늘 겨울방학이 되면 통리에 가있는 한 달 넘는 시간을 일 년 내내 기다렸다. 언니와 둘이 기차를 타고 갈 정도로, 거기엔 늘 두 분이 변함없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계셨다. 나의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신천리에 사셨던 친할머니는 내가 20살 무렵 돌아가시고 통리에 사셨던 우리 외할아버지도 선재가 4살 무렵,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이제 나에겐 영주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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