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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난자!

콩 심은 데 돈 난다

by 앤나우




으아아~똥콩은 싫어, 나한테 주지도 마!
똥콩 저리 치워!




손사래 치고 난리 치는 선율이. 다른 가족 세명은 기겁하는 아이 모습에 큭큭 웃음을 참는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고 진지하게 묻는다.


-똥콩이 왜 싫은데? 더러워서?

-똥콩 말도 꺼내지 마! 더러워, 아주! 찌그려졌어!


우리 셋은 똥콩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멍청하고 나른한 그 표정을 발견하곤 한 번 더 웃는다. 본인이 욕먹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먹고 마시느라 정신없다.

캬캬캬캬캬캬캌ㅋㅋㅋ


무슨 이야기냐고?



바로 보드게임, 보난자 이야기다.



글자도 그림에도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 선율이가 6살 가을이 넘어갈 무렵부터 어설프긴 하지만 연필을 쥐고 그리는 걸 조금씩 좋아하다가 '보드게임'에도 관심을 보였다. 신랑과 큰 아이 모두 보드게임을 좋아해서 집 근처 킨텍스에서 보드게임 페어나 비슷한 게임 행사가 열리면 종종 참여하는 편이다. 단 둘이서만! ^_^

최근에도 둘이 외출해서 다양한 보드게임을 잔뜩 사 올 정도로 통하는 게 많은 부자다. 우리 집엔 그림 맞추기보다 더 쉽고 기초적인 보드게임부터 머리를 꽤 써야 하는 고난도 보드게임까지 다양하게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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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가 좋아하는 '바보타임'과 선율이가 가장 애정하는 '코잉스' | 선율이가 들고 간 '코잉스'에 빠져버린 잘생긴 싱아





아직 숫자를 읽거나 구별하거나, 계산하지 못해서 그런 부분만 가족들이 도와주면 얼마든지 게임에 재밌게 참여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마치, 화투를 잘 못하는 친구에게 기본적인 룰을 알려주고 화투 점수 계산은 다른 사람들이 착착해주면 재밌게 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처럼. ㅋㅋㅋ(물론 여기엔 "점수 계산"시 속이지 않는 양심이 필수요소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다.


선율이의 시작을 연 보드게임은 이랬다.

포켓몬 메모루트, 노른자 톡! 물방울 뚝! 같은 게임을 내내 하자고 조르더니 조금씩 아이의 게임도 진화하기 시작했다. 피자를 만들고, 주사위도 사용하고 그러다가 우리가 하는 보드게임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쯤부터는 아빠가 퇴근하면 무조건 저녁을 먹고 30~40분 정도 가족 모두 "함께" 보드게임 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게임이 일찍 끝나면 20분 안에도 끝났지만 금요일 밤 같은 때 시작한 보드게임은 금세 한 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승부욕까지 발동하면 금방 잠들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보난자는 특이하고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는데


Bonanza
1. 노다지, 수지맞는 일
2. 신나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



바로 노다지란 뜻이다! 독일어 콩 Bohne(콩)스페인어 Bonanza의 합성어 겸 말장난이라고 한다. 다양한 콩들을 기르고 다시 금화로 수확하는 형태의 놀이인데 단순한 듯하면서도 빠져들고 꽤 재밌다. 특히 카드 그림이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개성만점이어서 카드를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칠리콩, 동부콩, 눈탱밤탱이된 콩도 있고 칠리콩은 진짜 칠리처럼 생겼다. ㅋㅋㅋ

*내 글을 읽고 한 번씩 해보면 좋겠다! 씨익



다양한 종류의 콩이 있고 플레이어는 원하는 종류의 콩을 골라서 키우거나 수확하고 교환할 수 있다. 물론 엄격하게 적용되는 규칙이 있고(예를 들면 첫 번째로 받은 카드의 콩은 무조건 심어야 한다) 상호작용이 중요한 게임이다 보니 거래도 난무하고 시끌시끌 재밌는 상황이 연출된다.


찾아보니 우베 로젠버그가 디자인한 농사 테마의 동일형 '셋 컬렉션 카드'가 유래라고 한다.
아미고에서 1997년 발매.



앞에 나왔던 아이를 거의 울상으로 짜증 나게 만들었던 똥콩은 정말 말 그대로 똥콩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몇 번 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아, 똥콩이 엄청 쓸모가 많구나.

처음에 '똥'이란 자체로 거부감을 가진 아이는 무조건 이 똥콩을 버리거나 선심 쓰듯 코를 막고 다른 식구들에게 뿌렸다. 선재는 영리하게도 이 카드들을 모아 돈으로 수확했고 금화를 늘려나갔다. 어...? 이게 아닌데 이상하게 생각한 선율이는 그때부터 똥콩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게임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똥콩을 아주 소중하게 꼭 움켜쥐곤 절대로 놓지 않았다.



다른 팀이 똥콩 싫지? 줄래, 하고 살살 달래도




아니! 이건 무조건 내 거야!




손에 꼭 쥐고 똥콩 하나도 소중하게 심는 통통한 아이 손이 웃기면서도 귀엽다. 점수 계산이 살짝 필요해서 우리 가족은 요즘엔 대부분 팀전으로 진행하는데(2 : 2), 선율이의 똥콩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린 적도 몇 차례 있어서 우리 모두 요, 똥콩을 가져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짠다.


사실은, 아이와 엄마 아빠 모두에게 노다지는 게임을 하며 목이 터져라 웃고 떼굴떼굴 구르고 웃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보난자!



그야말로 행복한 보드게임이다. 노다지는 사실 꾸준하게 밭에서 뭔가를 수확하고 차곡차곡 모으면 성공하고 똥콩도 쓸모가 있다는 교훈을 주기도 하지만 수다 떨고 웃다 보면 현재 이 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게 하는 그 자체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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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하나둘씩 스페셜 카드를 따로 제작 해보는 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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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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