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말이지
오늘 글향님의 연재 북을 보는데 '취향과 행복으로 나를 발견하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세상에, 우리 집과 이렇게도 비슷할 수가! 우리 집 주말 풍경과 비슷한 이야기에 웃음이 나왔고 또 공감이 가기도 했다.
*글향님의 연재 중인 나로카드 이야기를 보시려면 여기로
취행(趣幸) : 취행(취향과 행복) 나의 취향이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 길
멋진 말이다. 끄덕끄덕 하다가
취향과 행복 두 글자만 보면 행복하지만 이게 안 맞으면 ^_^
토요일 아침만 되면 우리 신랑은 새벽형 인간형답게 이른 기상으로 가족들을 돌아가면서 깨우고 등산을 계획한다. 근처 산은 물론 한두 시간 거리까지 운전해서 웬만한 출렁다리, 호수 둘레길은 물론 다양한 산들은 올라갔다. 물론 감악산을 등반한 이후로 우리 앞에 석고대죄를 한 이후에 '등산'이야기가 쏙 들어갔지만,
최근엔 출렁다리 이야기로 시작해 다시 스멀스멀 등반의 기운이 느껴진다. 죽을 뻔(?)해서 다신 안 가고 싶은 감악산도 출렁다리만 제발 건너자고 하여 벌써 속는 셈 치고 두 번이나 갔다 왔다. >_<;;; 이쯤 되면 등산이 아니라 출렁다리를 좋아하는 건가, 싶지만 출렁다리도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꽤나 신중하게 딱 한 번만 건넌다.
*결국 왔다 갔다 여러 번 출렁다리를 건너는 둘째를 잡아야 하는 건 또 내 몫 -_-;;;
-아니, 등산을 왜 이렇게 좋아해? 원래 움직이는 거 싫어하지 않았어?
-응, 선율이 잡으러 댕기기가 힘들더라고. 산에 오르면 앞만 보고 가니까 에너지를 확 빼놓고 평지보다 길이 한 길이니까 아이를 보기 쉬운 거 같아.
신랑이 등산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어이없기도 하고 짠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평화 누리 공원이나, 서울대공원 같은 곳에 가도 선율이는 거의 내가 잡으러 따라다녔는데 무슨...;;; 하다가도 그 말은 삼켰다. ㅋㅋㅋ
나는 평일에 늘 아이들과 붙어있었기에 혼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거나 카페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싶다. 물론 내가 사람들과 선약이 있거나 주말에 약속이 잡히면 신랑이 아이들을 볼 테니 언제든 나가라고 하지만 혼자서 '나만의'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을 꺼내기가 눈치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박물관에 가거나 카페에 갈 때도 주말마저 온전히 쉬지 못한 신랑을 생각해서 둘째 아이를 끌고 나오곤 했다. 아이들도 저마다 취향이 제각각인데 주말이면 무조건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 먹고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바람이 불어도 무조건 나가자, 나가자, 집 나가자(?) 파인 둘째와 맛집에 가거나 뭔가를 만들고 실험·관찰을 좋아하는 첫째도 극과 극, 취향이 전혀 반대다. 이쯤 되면 둘째와 신랑을 연결해서 세트로 돌아다니면 좋으련만 그 둘은 상극이라 서로가 서로를 찾지 않는다. ㅋㅋㅋ
신랑은 어딜 가도 늘 둘째보단 첫째 손을 잡고 싶어 하고 선율이도 포용 범위가 넓고 좀 더 멀리까지 뛰어다닐 수 있는 내 손을 잡아 끈다. 취향이 잘 어울리는 사람끼리 잘 맞을 듯 하지만 사실은 반대인 사람을 골라서 맞춰줘야 하는 아이러니란! 여기에 취행의 비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취향과 행복이 안 맞으면 실로 불행할 것 같지만 사람들 제각각 취행은 다르기 마련이고 가족 안에서 그걸 조율하고 찾아가는 '과정'이 더 즐겁고 재밌는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땐 우리 엄마가 왜 이렇게 민속촌이나 방송국견학, 박물관처럼 오래된 물건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주말에 한 번씩 바람 쐬러 나가고 새로운 걸 배우고 좋아하는 것을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일이 엄청난 행복이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그럼 우리 아빠는? 아빠는 그때는 주 5일도 아니라 주 6일 근무라 일요일 하루만 쉬었음에도 토요일 퇴근을 서둘러서 언니랑 나를 데리고 극장에도 가주고 엄마에겐 쉬면서 이웃이나 친구들도 만나게 해 주고(엄마도 늘 일을 하셨다) 주말 둘 중에 하루는 무조건 밖으로 온 가족을 데리고 나갔다. 서울랜드, 서울대공원, 롯데월드, 민속촌 이런 곳을 정말 많이 다녔는데 아빠의 취미가 사진 찍는 거라 오래된 수동 카메라로 주말마다 언니와 나, 엄마를 많이 찍어주셨다.
지금도 아빠와 엄마는 서로 전혀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 집에서 조용히 요리를 하거나 주중 피로를 주말 낮잠으로 잘 쉬어야 하는 엄마는 외출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선호하는 편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주말에 엄마는 가급적 외출을 잘 안 하고 우리 집에 줄 밑반찬을 열심히 만들거나 집안 꾸미는 걸 좋아하는 취향답게 이리저리 가구나 물건 배치를 바꾸곤 하신다. 이런 엄마와 달리 아빠는 지금도 바둑, 장기를 두러 기원에 나가거나(수동 카메라는 어디에 팔아먹지도 않았는데 보이질 않는다고 하신다;; ㅋㅋㅋ) 친구를 만나러 외출하신다. 주말에 친정에 가도 늘 바쁜 아빠 얼굴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그래도 두 분은 여전히 잘 지내신다. 아빠가 출근할 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다르게, 맛있는 도시락 반찬을 싸주는 것도 엄마고 엄마가 좋아하는 보름달빵과 바나나를 사서 퇴근하는 우리 아빠다.
요즘 부쩍 크려고 하는지, 밥을 먹은 지 10분도 안 돼서 뒤돌면 배고프다고 하는 선율이 때문에 주방에서 자꾸 뭔가 달그락달그락 머물러야 하는 게 살짝 짜증이 났다. 긴긴 겨울방학도 힘든데 겨울 저녁도, 겨울밤도 주방에 머물다 보면 더 길게만 느껴진다. 요리를 싫어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는 엄마, 오늘은 이걸 못 먹었어, 저걸 못 먹었어하면서 못 먹고 놓친 걸 발견하곤 꼭 먹어야 할 것처럼 말하거나 내일은 꼭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할 때도 있다. 대부분 먹고 싶다는 걸 해주려고 하는 편이지만 몇 개 못 먹고 지나칠 때도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지 싶은데 아이는 기가 막히게 기억을 하거나 눈 뜨자마자 그 음식을 말한다. ㅋㅋㅋ(아, 무섭다~_~)
어제도 저녁 먹고 이제 국수를 먹었으니 밥을 먹어야겠다고 해서(아니, 국수가 저녁이었는데 뭔 소리?)하면서
한 번에 좀 몰아서 잘 먹고 식사가 끝나면 그만 좀 먹으면 안 되겠냐는 내 말에 아이는 곰곰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엄마, 나는 노는 것도 좋은데 먹는 것도 좋아해요.
나는 먹는 게 즐거워.
노는 게 제일 좋고 맛있는 거 먹는 게 2등이야.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글향님의 글을 보는데 그냥 갑자기, 우리 아이의 이 말이 생각났다. 이토록 솔직하게 자기 취향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을까. 노는 게 제일 좋아, 뽀로로처럼 놀고먹는 게 가장 즐겁다는 아이는 뽀롱뽀롱 마을이 나오는 만화는 좋아하지도 않지만 자기 취향과 행복을 좇아 사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이거다.
다만, 엄마 나이도 있고 사람들 눈도 있으니 너무 한량같이 보이면 안 되니까 대놓고 내 취향은 그냥 놀고먹는 거야 할 수가 없으니 때때로 그 취향이 독서와 산책, 영화 보기 같은 걸로 둔갑해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책을 읽고 거리를 걸으면서 관찰하고 달리는 일, 영화에 몰입해서 보는 시간 모두 나에겐 놀고 쉬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먹는 이야기는... 입 아프니 고만 말하자, ㅋㅋㅋ
나와 함께 음식을 먹을 때마다 늘 내 취향에 맞춰주는 미선 언니가 있었다.
-나경인 초밥을 좋아하니까, 여기 동네에 가성비 좋은 초밥집이 생겼어, 와서 이거 먹자
다정하게 말해주는 나의 슨씨.
알고 보니 이 언니는 초밥 종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오히려 매운탕 취향인데 맛있어 보이는 초밥은 전부 내 접시로 쏙쏙 덜어준다. 몰랐는데 대학교 시절부터 사회에 나가서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만 먹었다. 반건 오징어와 땅콩, 수제비짬뽕탕, 낙지와 초밥, 어느 날 언니가 회도 초밥도 전혀 취향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때 그 충격과 미안함이란!
갑자기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워서 물어봤더니 언니의 답은 명쾌했다.
나는 선택장애가 있어서 뭘 고르는 게 늘 스트레스거든. 근데 너는 늘 맛있는 거 먹고 싶은 게 확실하고 뭘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좋아. 이거 먹어도 저거 먹어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가 너한테 맞춰서 따라가는 건 전혀 힘든 일이 아니니까. 너랑 같이 있는 시간이 좋은 거지, 먹는 건 뭐.
저마다 다른 취향이 함께 있을 때 행복하려면 서로 지금,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자각해야 한다는 거, 앞서 취향이 안 맞으면 마치 행복하지 않을 것처럼 말했지만 의외로 행복은 단순하고 간단한 일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가지고 놀고, 잠을 잘 지언정 책은 보지 않지. ㅋㅋㅋ (우리 집 둘째)
오늘도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수많은 재밌는 책들 속에서도 선율이의 취향은 확고했다. 어린이 자료실에 있는 공룡과 스펀지밥 인형으로 실컷 재밌게 놀고 햇볕이 따땃하게 잘 들어오는 곳에서 한숨 자야겠다고 드러누웠다. 아니, 이렇게 책이 많은 곳에서 책을 한 번도 안 들춰보기도 힘들 텐데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새로운 의미로 또 감탄한다. 큰 아이와 나는, 어린이 자료실 햇살 앞에 벌러덩 눕는 선율 이를 보면서 둘이 눈이 마주치고 찡긋하며 서로 웃었다. (대충 끄덕끄덕 웃음을 참으며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일단(?) 다행이었고 부끄러움은 언제나 엄마 몫이지만 저렇게 용기 있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아이가 살짝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 하고 싶은 거, 일단 뭔지 알고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뛰어넘어 내가 이걸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지 혹은 혼자 있고 싶은지 파악해 보는 것도 취행으로 가는 길이리라.
선율이도 나도 가족들과 사랑하는 누군가의 취향을 존중하고 서로 맞춰주는 행복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기를! 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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