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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충채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아이의 이름 짓기

by 앤나우

6살 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는 자랑스럽게 그동안 자기가 만든 만들기 자료며, 스케치북을 당당하게 내밀었다. 특이하게 발달사항이 꽤 꼼꼼하게 체크 됐는데 거기엔 할 수 있다 O / 할 수 없다 X로 나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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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형태나 글자로 표현한다 (아니요 o)




일곱 살이 됐는데도 여전히 글자를 읽고 쓰기는커녕, 관심도 별로 없는 아이. 유일하게 한 군데 아니오가 더 크게 눈에 들어왔다. 읽어주는 내용에도 관심을 가지고 친숙한 글자도 찾고 책도 소중하게 다루는데 왜 글자에는 관심이 없을꼬, 하며 아이가 만든 작품들을 하나씩 펼쳐보는데!



두둥,


김충채의
곤충채집통



이란 글자가 보이는 게 아닌가?!

***심지어 우리 아이는 김씨도 아닌데?!



뭐지? 이건, 아이를 즉시 호출했다.


선율아, 선율아, 너 이름 뭐야?
▶ 응! 임선율!
어, 그런데 충채는 누구야?
▶ … .
아니, 엄마가 궁금해서 그래, 여기 충채라고 쓰여있네, (스케치북을 보여주며) 김충채!
▶ 아, 엄마, 선생님도 이거 보시고 '우리 반에 충채가 있었나?' 하고 막 웃었어.



다시 놀이에 집중하느라 달아나는 아이;;; 김 씨 성은 어떻게 된 거냐 물으니, 가장 따라 쓰기 쉬운 옆자리 친구 이름을 베꼈다고 한다.

충채, 충채는 그럼 어디서 나온 이름일까, 들여다보니

들여다보다가 또 한 번 빵 터졌다!


ㅋㅋㅋㅋ


바로 아래글자 '곤집통'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빨강초록으로 색칠해 놓은 이름이구나, 이건 뭐 『유주얼 서스펙트』같은 반전도 아니고 ㅋㅋㅋ 하마터면 집통이 될뻔한 걸, 그래도 제법 이름 같은 걸 고른 센스라니, (순전히 그냥 찍어서 쓴 거겠지만 ㅋㅋㅋ) 이 사실이 웃겨서 데굴데굴 굴렀다.



한글을 전혀 모르고 못쓰는 7살 아들도 엄마인 나도 둘 다 이게 부끄럽지 않고 걱정은커녕 웃음꽃 만발이니 신랑이 이건 심각한 문제라고 닦달하기 시작했다.


왜, 큰 아이만큼 학습에 열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붙잡고 가르치지 않냐고 했지만, 5살부터 유치원에서 통글자로 글씨를 읽힌 큰 아이는 거의 스스로 글자를 그때부터 읽었고 책을 워낙 좋아해서 한글을 공부하기도 수월했다. 그런데 둘째는 아예 책에는 관심이 없고 책만 펴도 그걸로 집이나 징검다리를 만드는데;;;


혼자만 따라 쓰기도 잘 못한다는 이야기에 선생님께서 고생하시겠다는 생각에, 집에서 회초리도 붙잡고 가르치다가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어서, 좀 더 기다려주기로 했다.


중요한 건 아이가 글자를 모르는 거에, 스트레스받고 부끄러워하거나 위축된다면 나도 더 민감한 반응을 보였을 텐데 글자를 모르는데 일말의 부끄러움도 불편함도 못 느끼는 아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고 문을 열어가야 할지, (헤쳐가야 할 길은 막막할 것 같지만) 일단 오늘은 웃으련다!




오늘부터 너의 예명은 김충재야, 김충재! 가라! 충채몬!!




*왠지 포켓몬스터통채집해야 할 것 같은 이름이다.










글씨꼴이 단단하네요! *책 읽기 도반 심선생님
언젠가는 다 할 한글과 구구단! [영웅은 공부 따윈 안 한다네] 사진도 보내주신 ㅋㅋㅋ *혜진쌤
너무 귀여워요, 귀여우면 끝난 거 아닐까요? *'몹·글'의 글메이트 bella님


이 보내주신 글을 읽다가 세상에 같은 현상을 다르게 봐주는 분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웃을 수 있구나 갑자기 뭉클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화내지 않고, 웃으며 구구단도 한글도, 천자문도 줄줄 외우는 충채를 즐겁게 상상하며 오늘도 굿 나이트



#일단웃자

#한글을모르는아이

#한글공부어떻게하나요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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