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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Jan 13. 2023

용서하기가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요 며칠 마음이 분노로 울그락 불그락 보글보글

폭발할 것 같고 터질 것 같고 아무리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엉엉 울어봐도 쉽게 용서가 되지 않았다. 짜증 나고 불안한 상태라 꿈자리도 뒤숭숭, 깨어있을 때도 멍하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와서 대판 싸우거나 아니면 내가 용서받고 싶은 사람이 아침에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해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하는 꿈을 꿨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착각과 같은 꿈을 새벽에 연달아 세 번이나 꿨다. 사실 따지면 별 일 아닌데 나한테는 너무도 심각한 별 일이 맞았고 이미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세 번이나 들었지만 난 그걸로 성에 차지 않았다. (*꿈이 진짜 현실과 통한다고 생각하니 신기하다!) 내 공간, 내 사생활이 중요한 건데 그걸 존중받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그런 생각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거까지 퍼져간다.


과거는 우리들을 과거 쪽으로만  
잡아당기는 것은 아니다.  
과거 기억의 여기저기에는,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강력한 강철로 된 용수철이 있어서, 그것에 현재의 우리들이 손을 대면,
용수철은 곧바로 늘어나 우리들을
미래 쪽으로 퉁겨 버리는 것이다.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우연히 조성기선생님의 페이스북에서 본 이 구절이 내 마음에 박혔다. 나는 이번 사건 하나가 아니라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나를 괴롭히고 그때도 지금도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는 똑같은 그 태도에 화를 내고 있구나. 그래서 일렁이는 감정 하나가 어긋났을 때 참을 만큼 참았던 다른 감정들, 꾹꾹 눌러서 오히려 잘해주려고 마음먹었던 것까지 와르르 용수철이 되어 나의 현재를 넘어선 미래까지

튕겨졌다는 걸 알았다. 내가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슬프게도 이 구절이 이토록 공감 갈 수 있구나. 금각사는 진짜 명문이 많은 소설이었네, 미시마 유키오의 끝은 비참하고 갈가리 찢겼지만 사실 이런 문장들은 현재를 사는 내 마음을 잘게 잘게 찢어놓는

것만 같다.


아이들이 둘 다 아파서 이번 주는 집에서도 키즈카페에 가서도 졸졸졸 애들을 챙기는 것도, 약을 세 번 먹이는 것도 왜 이리 지치는지.  컨디션과 수면이 무너지니 나도 덩달아 예민해진 게 당연한 걸까. 나도 잠시 내려놓음, 쉼이 필요한 사람인데 나는 상대를 배려를 해줬는데 배려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이토록 억울한 거구나.


용서가 사실은 마음 한 번 먹고 꿀떡 삼키고 하면 그만인 건데 이번엔 그게 쉽지 않았다. 지나가길 기다려야겠지. 한 템포 쉬고 이미 난리는 쳐도 달라진 상황이 없으니, 사과를 받을 상황에서도 제대로 사과를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과의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학시절 한경직 목사님의 ‘용서’란 책을 읽고 누군가를 용서하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마음인지 깨달았다. 그때와 달라진 내 마음에 씁쓸한 건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가 아니라 미시마 유키오의 구절에 오히려 위로받는 걸 보면.


억지로 용서를 하기보다는 내가 왜 이렇게 ‘화’가 안 풀리는 걸까를 생각해 봤다. 지질하고 옹졸하고 답답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이게 나인걸. 이렇게 내 감정을 토로하고 뱉어놓는 게 쌓인 눈 위에 걸어가는 발자국과 같다면 어딘가 이번 발자국은 좀 더 무겁고 아프고 생각보다 비뚤어져서 움푹 들어간 거겠거니 생각하련다. 언제가 노골노골 더러운 흙탕물과 함께 전부 녹아 없어져도 그 과정이 더러워도 눈 위의 발자국은 꼭 사라지는 것처럼 전환하려고 노력해도 붙잡고 난리 쳐보려고 해도 감정이 지나가는 게 아니니 나도 그냥 뚜벅뚜벅 걷고 이대로 지나온 걸 바라볼 수밖에. 눈이 녹길 기다려야겠다.


키즈카페에서 선율이가 연서 누나의 발을 밟고도 사과하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대신 아이에게 내가 사과하고 선율이를 잡아서 연서에게 억지로 데리고 왔지만 미안하단 말대신 누나 등만 한 번 쓰윽 훑고 지나가는 아이. 자기 전에 선율이랑 같이 대화하고 기도 하다가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선율아, 아까 누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하기 힘들었어? 누구나 잘못하고 실수할 때가 있어. 그래도 그 일에 대해서  ‘미안해’ 말해주면 그 말이 마법 같아서 상대방 마음을 풀어지게 할 때도 있거든.  사과도 진심을 다해야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아이에게 말하다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알아버렸다. 이기호 소설 중에 ‘사과는 잘해요’라는 소설이 있는데 나부터 시봉이와 진만이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걸 다시 배워야겠다. 그전에 조금만 더 생각한다면 발을 밟는 게 아닌, 마음을 밟는 상처는 안 생기게 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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