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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가 봉황이다!

봉황 같은 마인드

by 앤나우

요즘 김연경 선수가 나오는 《신인감독 김연경》을 재밌게 보고 있다. 꼬박꼬박 다 챙겨본 건 아니지만 몇 편을 몰입해서 봤는데 감독으로의 역할을 할 때도 열정적으로,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대처로 선수들을 코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한 번씩 씩 웃을 때 매력이란! 사실 김연경 감독님이 대단한 건 거침없는 성격이 아니라 본인이 대단한 '실력'임에도 더 많이 분석하고 직접 부딪치고 노력하는 자세와 태도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김연경 선수가 자기 차가 긁힌 걸 발견하는 영상을 보게 됐다.

-어, 차가 긁혔네. 왜 긁혔지?

진짜 어디선가 긁힌 기억이 없는데 왜 긁혔는지 궁금해서 묻는 말투의 혼잣말 빼고는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탑승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아, '역시 돈이 많아야 사사로운 것에 연연하지 않고 저렇게 쿨하게 대처할 수 있구나.' 비싼 차일 텐데 아쉬워하거나 억울해하는 표정이나 제스처가 아니라 고치면 되지 하는 마인드가 남다르게 보였다.







"고 놈이 내겐 봉황이야" 박대성 화백 이야기




한국 수묵화의 거장 박대성 화백.

평생을 바친 830점의 작품을 세상에 환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림은 사유화되기보다 '많은 사람이 보고 즐겨야 옳다'는 예술 철학을 가지고 있다. 작은 그림은 혼자 보지만 큰 그림은 모두가 볼 수 있다고 한 넓은 대인배의 마음을 가진 화가이기도 하다. 한 때 언론에서 크게 다뤘던 '1억 원 작품 훼손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기 작품 위에서 장난치고 훼손한 어린 관람객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애인데 시비할 거리가 안된다, 그 아이가 내 봉황이다. 내 선전을 누가 해주겠냐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나는 이 일화에 대해선 얼핏 들은 적이 있지만, 평소에 박대성 화백에 대해선 자세히 몰랐다. 알면 알수록 대단한 분이란 생각이 든다. 한 달에 한 번,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모이는 날, 혜진쌤의 어머니께서 함께한 날이 있었는데 전철 안에서 이 이야기를 해주셔서 재밌게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님께선 우리 둘째가 생각났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이셨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 이야기를 듣다가
사실, 선율이가 생각났어요.
(나는 이 대목에선 크게 웃었다. 나도 선율이를 바로 떠올렸기에!)
그러니까 우리 선율이 역시 봉황처럼 아주 크게 될 아이라는 거지!
선율이 엄마, 지금은 아이 키우느라 힘들고
에너지를 따라잡기 어렵지만
그 애가 봉황이다! 그 애가 빛나는 사람이다! 잊지 마요.





올해 들은 응원 중 가장 따뜻하면서도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이야기 중에 왈가닥 우리 선율이를 떠올렸다고만 해주셔도 웃어넘겼을 거고 괜찮은데 뒤이어 우리 아이를 높여주고 더 크게 될 거라고 봐주시는 그 따뜻함에 감동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나!



아유, 미안하긴요. 저도 이 이야기를 듣다가 우리 둘째 생각이 났는걸요.



어릴 적, 박물관이나 미술관, 전시회 같은 곳에 데려가면 전시물엔 전혀 관심도 없고 복도에서 뛰다가 관계자에게 쫓겨난 전적이 있는 아이었기에. 불행 중 다행일지(?) 선율이는 전시실 안보다는 전시실 복도, 로비에서 뛰거나 넓게 트인 그 공간들을 좋아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도 재밌는 「노 가면」 같은 것이 있는 [일본 전시관]을 들어가자고 꼬셔도 어두컴컴한 분위기, 낯선 유물이 있는 곳은 발을 디딜 생각조차 안 하고 쌩 하니 복도로 뛰어갔다. 선율이가 처음 쫓겨난 곳은 민속 박물관, 모든 유물이 유리관 속에 있는 도자기로 된 파주 도자기 박물관이었는데 거기서도 로비에서 뛰다가 직원분의 경고를 듣고 얼른 밖으로 후다닥 데리고 나온 기억이 있다. 뛰는 아이를 놓치고 제대로 못 봐서 어찌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신랑과 내가 번갈아서 전시관 밖에서 아이랑 뛰어놀고 다시 안에 들어가서 번갈아서 한 명씩 관람을 했다. 우리 부부에겐 나중엔 이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패턴이 됐다. 그래야 잠시 잠깐이라도 둘 다 '관람'이 가능했으니까. 둘째와 함께 간 박물관은 언제나 박물관 안에 있는 유물이나 그림보다는 거기에 있는 나무와 계단, 복도, 정문 앞 공터가 먼저 떠오른다. 천방지축 철부지 아이를 철없다 탓하지 않고 감싸준 어른들의 마음, 넓은 대인배 같은 시야, 또 우리 선율이가 바로 봉황이고 크게 될 아이라고 따뜻하게 말씀해 주신 혜진쌤의 어머님까지 따뜻한 마음까지 아이를 키우는 건 진짜 우리 부부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경제적으로 부를 쌓고 조금 더 여유가 많은 김연경 선수나 박대성 화백도 돈이 많으니 이렇게 쿨 하게 넘어갈 수 있는 거지, 하다가 사실은 둘 다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뭐, 돈이 많아서 마음의 여유는 남들보다 조금 더 가질 수 있다고 해도 타고난 '봉황'같은 대인배스러움은 진짜 더 중요한 일이 뭔지 바라보는데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사사롭다면 사사로운 것 같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큰돈이 깨지고 시간을 다시 들여야 하고, 허망함을 가져다주는 일이 왜 화가 나지 않을까. 화가 때로는 분노로 바뀌는 것도 순식간이듯이 나는 대부분 화를 이렇게 감정적으로 소비했던 것 같다. 하지만 화를 내기보다 더 중요한 곳, 내가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곳에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쓰면 나는 물론, 상대방에게도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분노가 아닌 '봉황 마인드'를 가지고 펼치면 내가 혼자 품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다시 좋은 기운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릴 수 있다. 화를 내고 난리를 치고 분노를 길길이 다 쏟아내면 그건 그냥 화 덩어리 '나 자신'인데 다른 시점에서의 생각은 주변 사람과 상황마저 변화시킨다. 김연경 선수나 박대성 화백은 누군가의 눈치나 평가보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큰 획을 그은 분들이니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법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진짜 쿨함과 가짜 쿨함은 아주 사사로운 일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지, 무슨 일에 부르르 떠는지 살펴보면 된다.


아주 사소한 일에 부르르 떨어서 억울해하기도 했던, 강약약강처럼 더 큰 대의도 아닌, 아이들 일로 사사로이 마음을 쏟아 화를 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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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림자가 나보다 더 작아졌어!" 올해 여름 제주도에서 | 나의 작은 '봉황' 선율이






KakaoTalk_20251114_235854331.jpg 박대성 화백의 '코리아 판타지' 백두에서 한라까지 | 솔거미술관 (혜진쌤이 찍어주신 작품)





*'코리아 판타지'를 보고 혜진쌤의 옆지기님이 한국 문화 예술의 "김밥 천국"이라고 했다는데 그 이유는 없는 게 없는 김밥천국처럼 우리나라 역사, 문화의 발자취 중에 없는 게 없어서라고, ㅎㅎㅎ 작품을 보고 바로 공감이 돼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박대성 화백님은 아이와 그 엄마가 전시관에 대한 좋은 기억과 추억을 담아가길 바랐기에, 자기 작품을 미끄럼틀 삼아 놀았던 아이의 기분과 추억을 그대로 존중해주기도 했지만 미술관 측의 관리에 대해선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이셨다. 더 넓고 큰 봉황으로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해 안전한 안전선이 있는 것처럼 그런 부분도 주의해서 잘 가르치고 지도해야겠다. 미술관의 안전선은 존중과 공존의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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