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누군가 끙끙 앓는 소리를 들어주는 거, 옆에 같이 누워주는 거
금요일, 오늘은 책 읽어주는 엄마, 이야기 선생님으로 1학년 아이들의 교실에 들어가는 날이다.
원래는 들고 갈 책을 도서관에서도 찾아보고 한 번씩 읽어보기도 하는데, 요즘 정신이 없어서 미리 읽을 책을 골라놓지도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내 책장에도 이미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고 함께 읽고 싶은 책이 한가득이니까. 어젯밤, 잠들기 전 부랴부랴 책을 두 세권 골랐다.
「할머니의 바닷가」, 「알사탕」 그리고 「나는 개다」
내가 책을 고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책을 좋아하는 큰 아이가 어렸을 때 계속 '또!, 또!'를 외치며 몇 번이고 읽어달라고 졸랐던 책들이다. (둘째는 책을 들이밀어도 책으로 집 만드는 걸 더 좋아한다^^;; 요즘 아이들의 취향을(?) 알기 위해선 둘째가 책을 좀 읽었으면 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ㅎㅎ) 백희나 작가님의 책에 저절로 손이 가서 두 권이나 골랐다. 「알사탕」은 아이가 배꼽 빠지도록 웃고, 좋아해서 뮤지컬로도 재밌게 본 기억이 났다. 책을 넘기다가 멈칫, 동동이 아빠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잔소리를 과연 내가 다 흉내 내서 읽을 수 있을까, 알사탕은 다시 조용히 책꽂이에 돌려놓았다.
오늘 아침, 앞 집 은진이에게 둘째 아이 등원을 부탁하고 학교로 열심히 뛰어갔다. 종소리가 울리기 전 9시 정각 전에 도착했다. 휴우, 크게 숨을 돌리고 교실에 들어갔다. 이미 책 읽기에 열중한 아이들이 나를 보자 책을 다시 학급 문고에 꽂아놓거나 서랍에 넣고 내가 들고 온 책에 집중한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 모습이 금세 쑥 큰 느낌이 들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두 권을 바라보다 아이들의 눈길이 쏠리는 『나는 개다』책을 골랐다. 역시나, 멍멍이를 좋아하는 아이들, 귀엽다. ^^
동동이네는 아빠, 할머니 세 식구가 한 가족이다. 슈퍼집에서 키우는 개, 방울이네 넷째로 태어나 엄마 젖을 떼고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구슬이는 동동이네 집으로 보내졌다. 그 집에 막둥이로 살기 시작한 구슬이의 이야기다. 엄마 방울이는 이 구역의 왕엄마답게 해마다 새끼들을 엄청 낳았는데 구슬이는 얼굴도 냄새도 희미하지만 동네에서 마주치는 개들이 자신의 형제자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밤마다 서로 화답하는 하울링에 우리는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뒷 이야기는 책으로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장면 장면이 예뻐서 상상으로만 즐기시거나 직접 보시길 바랍니다. 그림책은 그림이 중요한 책이어서 사실 사진 리뷰가 어려운 것 같다.
읽으면서 알았다. 이걸, 아이가 7살쯤에 읽어준 게 마지막이니까, 거의 5년 만에 다시 꺼내서 처음 읽어주는 거구나. 백희나 작가님의 다른 책 보다 이 책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지금 보니 구슬이의 털 촉감 하나하나, 표정이나 몸짓까지 전부 생생하고 재밌다. 갓 태어난 아기 강아지 모습과 성장한 모습들의 대비도 세밀하고 정교하다.
중반까지 재밌게 읽으며 강아지들의 서로 엉덩이를 '킁킁'거리는 인사법 이야기에 아이들과 웃기도 했는데
책을 미리 한 번이라도 읽지 않은 게 큰 실수라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어떤 장면에서 읽다가 동시에 눈물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요즘 독감이 유행이라 마스크를 쓰고 읽어줬는데 이미 눈물 콧물이 걷잡을 수 없게 됐을 땐, 마스크 안이 축축해지고 마지막까지 어떻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알사탕」만 재밌다고 휘리릭 들여다보고 이 책은 읽을지도 말지도 몰랐기에 아침에 한 번 읽어보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나의 실수 이기도 했다. 왜 주책맞게 눈물이 이렇게 나온 걸까. 읽었어도 또 눈물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터진 눈물방울들...
그렇다고 읽는 걸 멈출 수는 없다.
다 읽고 나오면서 화장실에서 눈물도 닦고 세수를 하면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눈물 · 콧물 범벅,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1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책에 나오는 구슬이의 표정이 처음엔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제일 웃긴 꼴이구나, 거울을 들여다보다 그제야 웃음이 다시 났다.
첫 번째 울컥한 장면은 여기, 가족들이 저마다 바쁜 자기의 일상으로 나가버리면 작은 강아지 구슬이가 하는 일은 가족들이 나간 현관문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나선, 구슬이는, 계속 가족들을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그러다가 작은 소리, 어떤 냄새에 귀를 쫑긋 하다가, 또다시 원래 그 자리에서 또다시 기다린다.
5년 전 아이에게 읽어줄 땐 몰랐는데 이 장면이 이토록 슬픈 장면이었구나. 나는 평소에 강아지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물린 기억은 없지만 엄마가 워낙 동물을 싫어해서 어렸을 때도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무서워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고양이는 조금 좋아하긴 했지만 지나가는 강아지가 막 귀여워서 어쩔 줄 몰랐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그냥 텅 빈 집에서 -그것도 가장 활기찬 아침부터- 사람들이 마지막 발걸음을 멈추고 신발을 후다닥 신었던 현관에 망부석처럼 멈춰있는 강아지 구슬이의 모습은 너무 짠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시골에 계시는 우리 할머니 생각도 갑자기 나고.
참, 그림책 하나가 볼 때마다 다른 걸 펼쳐주고 내가 잊었던 어떤 감정을 깨닫게 하고 나를 울리고 있다.
-할머니, 이제 우리 갈게. 들어가, 들어가. 계단 또 내려오면 힘들어.
얼른 들어가라고 인사를 해도 할머니는 엄마와 우리 식구들을 태운 차가 멀어질 때까지, 점이 되어 안 보일 때까지도 그 자리에 늘 앉아계셨다. 38킬로. 너무 마르셔서 후, 불면 꼭 쓰러지실 것 같은 가느다란 몸으로도 우리가 가는 길을 끝까지 쳐다보고 계셨다. 갑자기 구슬이의 작은 등에서 시무룩하게 턱을 괴며 기다리는 표정에서 영주 서릿골에 계신 울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어쩌다 한 번씩 드리는 안부전화에도 반가워해주시고 좋아해 주신 할머니. 기다리고 계셨던 거구나.
뒷부분을 읽기가 힘들었지만 목소리 톤을 바꿔서 요리조리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는데 아이코!
더 큰 게 뒤에 남았구나!
한 차례 사건이 있고(*직접 책으로 꼭 보실 분들을 위해 말을 아끼고 싶다. 이 장면이 왈칵 눈물이 또 나온 부분이기도 하고) 끙끙거리고 답답해하는 구슬이가 힘들어하자 동동이가 그 소리를 듣고 조용히 나오는 장면이다.
가족이란, 누군가 끙끙 앓는 소리를 들어주는 거 옆에 같이 누워주는 거
멀리 있는 누군가를 찾고 그리워할 때 날마다 생각하고 떠올리는 가족도 있지만 늘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해주는 소중한 숨결도 있다. 결혼을 하면 내가 떠나온 원가족이 있고 독립해서 내가 같이 일궈낸 우리 가족이 또 생긴다. 원가족으로부터 분리되고 떠나서 내가 선택하고 일군 가족을 돌보고 우선시해야 하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강연을 본 적이 있다. 자식은 자식이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게 아니지만 부부는 서로가 선택해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룬 공동체다. 또한 함께 아이들을 낳고 키우기로 한 선택과 책임이 있는 곳이기에. 부모로서의 책임과 현재 내가 속한 곳의 남편, 아내, 아이가 있다면 그곳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을 했다.
지금도 많은 부분을 친정 엄마, 아버지에게 심적으로 크게 의지하고 엄마가 일요일마다 차려주는 밥상에 든든하고 포근한 마음을 느낀다. 늘 베풀어주신 사랑이 너무 깊고 당연해서 감사보다는 익숙한 감정이 먼저 든 적도 많다. 언젠가 나도 구슬이의 형제자매처럼 하울링으로만 '아울~'울면서 희미한 냄새와 희미해진 얼굴을 그리워할 날이 올까 하는 심경이 들었고, 이런 생각을 하니 슬퍼졌던 것 같다.
나만 아는 내 눈물과 외로움, 아픔이라고 생각한 걸 나보다 더 작은 내 아이들이 들어주고 내 곁에서 위로해 줄 때 나 역시 그런 뭉클한 경험을 한 적이 많았고 나보다 더 크고 넓은 마음으로 나를 감싸 안아주는 아이들 덕에 힘을 내고 웃은 적도 많았다.
아이들이 아주 작게만 앓아도, 살짝만 미열이 나도 후다닥 아이들 온도를 체크하고 병원에 데려가거나 몸을 살펴주는 것처럼 아프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아프지?'라고 물어보는 가족, 가족이란 존재가 여태껏 이렇게 크고 따뜻한 울타리였구나 하는 기억들이 나에겐 뭉클하게 다가왔다. 최근에 큰 아이가 독감으로 아프고 간호한 기억이 떠올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두 분 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지만 언젠가 희미해질 기억 속의 나의 부모님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늘 한편에 있다. 지금도 오도카니 앉아계실 할머니를 떠올리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인지 몰랐다. 이것 역시 우리가 '가족'으로 묶여있고 함께 했던 시간과 사랑이 있었기에 감사한 추억이고 기억이 아닐까. 어젯밤 별거 아닌 일에 둘째를 혼내다 결국 울면서 잠들게 했는데 부족하고 못난 엄마가 책을 읽다가 어린 동동이만도 못하다는 생각에 많이 미안하고 뜨끔했나 보다. 그래서 오열 아닌 오열로 막을 내리게 된 책 읽기 시간.
왜 울었는지 한 참 생각하다가 그냥 일기로 간직하기로 했다.
▶ 나는 개다 | 백희나작가님 | 책 읽는 곰
▶ 알사탕 | 백희나작가님 | 책 읽는 곰
▶ 할머니의 바닷가 | 로살린 비어드 쇼 (이혜옥 옮김) | 한국듀이
#나는개다
#백희나작가님
#우리가족우리식구
#원가족과떠남
#몹시쓸모있는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