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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Dec 12. 2022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보다가

-드라마 리뷰가 아님-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보다가 

드라마를 볼 시간도 없지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제목부터도 임성한스러운,-결혼작사 이혼작곡-드라마 한 장면을 봤다.
드라마는 몇 분 밖에 안 봐서 뭐 드라마에
대한 감상도 평가도 아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여) 주인공이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더니 빨리 밥을 먹고 가야겠다고 한다. 때마침 웨이터가 식전 빵을 가져다주자 여자 주인공이 말한다.



버터도 가져다주세요, 무가염으로-

뭐지??!!(ㅋㅋㅋㅋㅋㅋㅋㅋ)


오초 전까지 진지한 둘의 결혼에 대해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등장한 무가염 버터라.... 음;; 뭐지? 뭘까... 빵 터졌다.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는 절대 아니지만 인어 아가씨 복수극을 좀 재밌게 봤는데 이 작가는 늘 이런 식이다. 진지한 장면에서도 아주 뜬금없이, 길고 고상한 주인공의 취미와 고집하는 음식, 취향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분위기가 너무 뜬금없어, 빵 터지고. ㅋㅋ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이 아주머님의 드라마에도 말발 최강 무술 대회라도 열렸는지, 우열을 가리듯 전부 잘나고 말 많은 주인공들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듯이 말이 많다고, 말을 잘한다고 똑똑하고 지혜로운 것은 절대 아니다. 닮고 싶고 설레게 하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안 나오는 드라마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하이킥'시리즈를 좋아했는데 시트콤의 재미는 물론 보면서 콩닥콩닥 심장이 뛰고 슬퍼서 눈물이 펑펑 났다. 엉뚱한 매력의 캐릭터는 덤으로 웃음을 가져다주었고.)

그 사람의 됨됨이와 성격으로 이런가 보다, 끄덕이게 되는 게 아니라 무가염 버터를 먹고 이런 음악을 듣고 이렇게 말하니까 이런 사람으로 보이겠지? 속이 너무 뻔히 보인다.  

웃겨서 빵 터졌다가 이내 채널을 돌렸다.

인정옥 작가,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모자라고 어리숙한 인물들, 극단적으로 가난한 인물, 심지어 대부분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 급으로 나와야 하는 술집 종업원이 주인공이다. 고상한 주인공은 한 명도 없었지만 계속 보게 되는 몰입감이 있다. 가진건 없고 나약한 인물들이지만 특유의 강인함, 나름의 고집이 고상하게 느껴진다. 이경희 작가의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어떻고. 차무혁(소지섭)이 찾은 또 다른 쌍둥이 윤서경(전혜진)의 달동네 집은 있는 그대로 춥고 초라하고 슬펐다. 재벌집이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단칸방을 내내 비춰주는 그 드라마에 나는 마음이 자꾸 울컥하고 움직였다. 이렇게 작은 방에서도 울고 웃고, 말 그대로 드라마가 펼쳐진다. 이 자체가 감동이고 재미를 줬다. 우리가 못살아본 어마어마한 부잣집, 펜트하우스 이야기도 물론 흥미롭지만 드라마를 위해 설정을 하고 꾸며낸 티가 발각되는 순간 흥미를 잃게 된다. 자극적인 막장 스토리는 충격적이었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좋다", "만나고 싶다"하는 인물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는 채널을 돌리게 할 뿐이다.

작가를 찾아보지 않았지만 최근엔 ‘나의 아저씨’, ‘런 온’을 재밌게 봤다.

 이걸 쓴 게 '나의 해방일지'가 나오기도 전인 한참 전인데!! 나는 이미 박해영 작가의 팬이 돼버렸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를 했는데 이 두 개의 드라마가 있어 올봄과 초여름이 행복했다. 더 재밌게 본 건 '나의 해방일지'인데 뭔가 자꾸 할 말이 더 생겨났던 건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사실이 신기하다. 두 개 드라마 리뷰를 정리해보고 싶다.
친정집 바로 앞 카페가 박해영 작가님의 친한 대학 동기가 운영하는데라는 걸 알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너바나, 엘라 피츠제랄드, 고전 영화 LP판이 다시 드라마를 떠올리게 했다. 구 씨(손석구)가 대사 한 마디 없다가 처음으로 "뛰어, 마을버스 온다!" 하는 장면에선 심장이 얼마나 콩콩닥닥 콩닥콩닥 했는지! 두고두고 다시 보면 볼수록 "사람이 너~~ 무 싫어!"같은 평범한 대사가 나를 다시 울리고 빠져들게 했다. 나는 거기에 나오는 염창희(이민기) 동네 친구 삼총사 모임을 좋아했다. 특히 오두환(한상조)!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콕콕 찌르지만 따뜻하다.
주인공들한테 배우고 싶은 뭉클함이 있다.

사실 ,,
이건
내 이야기다. 내가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처럼 

여기서 이런 걸 먹으면 요런 사람으로 보이겠지?
이 책과 음악을 읽고 들어야 요렇게 보이겠지.


나 역시 꾸며지는 고상함에 치중하던 시기가 분명 있었다. 사춘기도 아닌 성인이 돼서도 꽤나 오랫동안 아무도 날 의식하지 않을 때도 내가 나를 의식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다듬어가기보다는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드라마에서조차 그런 걸 보는 건 이제 뻔하고 싫다.

만들고 꾸며지는걸 독자도, 시청자도 알아챌 정도면 뭐 말 다했다. 그래도 또 세상엔 다양한 드라마가 존재하고 덕분에 어딘가 닮은 듯 흉내 내는 과거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기도 했으니까. 임성한 작가, (이제는 PB라고 불러야 한다. 프렌즈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가 피비인데! 화가 나는 이유는 뭘까?) 뭐, 아무튼 드라마에다 자기가 하고 싶은 상황, 온갖 혼돈 그 자체를 집어넣으며 어마어마한 원고료를 받고 있다고 하니 본인의 만족감은 높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왠지 작가 본인이 무가염 버터는 절대 안 먹을 것 같단 말이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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