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엄마, 사과는 잘하는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늑대아이
언니가 아이를 줄줄이 낳았다. 그것도 먼 타국,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킹스맨의 나라 영국에 살면서. 첫 조카는 사랑스럽고 정말 예뻤지만 내가 놀기에 바쁜 아가씨 때였고 내가 결혼할 때쯤,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서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언니와 형부, 대가족이 한국으로 왔다. 친정집이 시끌벅적 아이들로 꽉 찼다.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퀭한 부모님 얼굴을 보면서 그때 당시 형부와 언니의 소원이 언제나 ‘잠 한 번 실컷 자는 거’였는데 그 말을 왠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을 예뻐했지만 나는 당분간 신혼을 즐겨야지, 아이는 뭐 없어도 괜찮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다 네 번째 조카가 예니가 또 태어났고 엄마와 언니 산후조리도 해주고 함께 지낼 겸 영국으로 날아갔다. 꼬물꼬물 귀여운 아가를 보니 결혼 2년 차에 접어들던 나도 처음으로 아이를 낳고 싶어졌다. 예찬이, 예나, 예아, 예니까지 한 명도 ‘내 계획은 없었지만 하나님의 보너스, 선물’이라는 언니 말을 들으면서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키우는 기분은 어떨까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계획하자마자 감사하게도 바로 임신을 했고 그렇게 첫째 아이 선재를 낳았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그것부터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날카로운 전신마취의 기억부터 있지만 사실 키우는 거에 비하면 낳는 건 뭐 ㅜㅜ (나영언니 말처럼 출생은 인생의 ‘점’ 같은 순간이었네) 어른들이 왜 그렇게 하루라도 아이가 배속에 있는 게 행복하다 했는지 하루하루 아이랑 씨름하면서 깨달았다. 잠만보인 나에겐 끊임없는 잠과의 싸움, 그냥 내가 없어지는 기분, 한 번도 목이 빠져라 기다린 적 없는 신랑이 돌아오는 시간만 쳐다보는 망부석이 된 기분, 그동안 내가 알았던 나 같은 모습은 전부 사라지고 아이랑 꽁꽁 묶여서 갇힌 기분이 들었다. 잠깐 설거지를 해도 화장실을 가도 앵앵하고 울면 그게 그렇게 마음에 쓰였고 샤워를 하는 중에 화장실까지 배밀이로 기어 와서 찰박찰박 물놀이를 하는 아가를 발견하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아이한테 전부 채워주고 잘해주고 싶었는데 생각처럼 잘 안되고, 살림도 아이 돌보기도 둘 다 못하는 것 같고 그게 답답하고 속상했다.
선재야, 미안해. 엄마가 이것만 해주고 빨리 안아줄게. 엄마도 너무 힘들어.
내가 읽은 육아 책에선 분명히 하던 걸 다 내려놓고 아이를 먼저 안아주라고 했는데 아이를 안아주고만 있으면 집안일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어쩌라는 거지? 더 이상 내가 읽은 수많은 육아 서적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신랑까지 한 달에 이주, 길게는 보름씩 출장을 갔는데 깜깜한 걸 무서워하는 나는 2주 내내 온 방에 불을 다 켜고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 아이랑 밤새 책을 읽고 장난감으로 놀다가 잠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을 보니 뭔가 내가 힘든 게 이상한 건가, 다들 나보다 힘든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밝게 살아가는데 나는 왜 혼자 이렇게 답답하고 막막하고 뭐가 나랑 안 맞는 거 같은지, 자꾸 비난의 감정, 죄책감, 자책감, 우울감 등 뾰족한 화살이 나를 향해 콕콕 아프게 날아왔다. 동굴에만 꽁꽁 숨어있고 싶었다. 깨있을 때도 혼자서 자유롭게 다니고 어디론가 훨훨 날아가는 꿈을 자주 꿨다. 현실에서 멍하니, 아이랑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이대로 그냥 꽁꽁 숨어서 아이가 날 못 찾았으면 좋겠다, 잠들어서 잠든 채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어, 엄마 어디 갔지? 엄마가 진짜 없네, 빨리 찾아야 하는데, 엄마! 엄마!
*삐리릭*탁!
하고 도어록 문을 여는 소리에 후다닥 미친 사람처럼 아이에게 뛰어갔다. 선재야, 미안해. 많이 무서웠지, 잠시라도 무서운 생각으로 파고든 내가 소름 끼쳤고 아이를 공포에 떨게 한 게 미안했다. 아이가 내 분신 같고 세상 제일 귀했지만 나를 가장 미치게 하는 존재기도 했다. 안고 꾸벅꾸벅 나도 같이 잠들기 일쑤였고 어쩌다가 낮잠 자는 시간이면 아이가 깰까 봐 아예 불을 전부 꺼놓고 아껴 놓은 영화를 봤다. 일기를 쓰고 좋아하는 소설책을 꺼냈다. 육아를 배워본 적이 없기에 육체가 힘들면 아이를 덩달아 혼냈고 그때그때마다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나를 잡고 있는 이 손이 엄마 손인지 내 손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안아주고 감싸주고 책을 읽어줬지만 동시에 짜증과 화도 그렇게 많이 냈으니 아이는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나도 나를 몰랐었구나. 내가 극한의 상황에서 누군가를 책임지고 돌보기엔 얼마나 나약하고 짜증이 많은지 다시 알게 된 시간. 동시에 누군가를 위한 희생과 강한 마음도 이토록 불태울 수 있구나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낳는다고 누구나 한 번에 강해지고 용감해지는 게 아니었다. 모성은 타고난 감정일 수도 있지만 나는 자꾸 바라보고 함께 있다 보니 정들고 자연스럽게 단단해진 게 모성인 것 같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고 찾아주는 존재에 대한 고마움과 불안함, 내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아가일 적부터 본능을 채워주고 쌓아가는 시간, 나에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엄마’로 산다는 건 나도 아이와 함께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과정 같았다. 내 안에 있는 기억조차 안 나는 아가, 유년시절 나를 자꾸 떠올리게 하는 과정이며 눈에 보이는 아이의 성장과 달리 내 성장은 더디고 자주 넘어졌지만 이제는 쑥쑥 성장한 아이가 내 손을 잡아주고 내가 넘어진 곳을 툭툭 털어주고 ‘엄마, 괜찮아? 내가 있잖아!’하고 말해주는 멋진 경험. 아이를 키우지 않았으면 몰랐을 그 무수한 감정들과 나의 더딘 성장에, 내 속에 끊임없이 ‘나’를 생각한 그 시간에 감사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늑대아이의 ‘하나’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물질적으로 충분하지 않아도 옆에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 같이 웃을 수 있고 아이가 관심 있는 걸 찾아서 들어주고 배우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오미아게 미쯔 타코 미쯔(선물 세 개 문어 세 개)’같은 주문을 알려주고 감정을 받아들여주는 멋진 엄마. 늑대로 변하는 아이들 때문에 아무도 없는 산골짝 낡은 집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지만 결국 그곳에서 다정한 관심과 사람들과의 도움, 다양한 만남으로 엄마도 아이들도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성장하기 위해선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들어가야 우리가 맞닥뜨리고 배울 수 있다는 게. 나는 유키와 아메 같은 늑대아이를 키우는 건 아니지만 내가 종종 더 늑대처럼 으르렁 변할 때가 더 많은 엄마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주문을 터득해나가고 있다.
울보에, 화도 버럭 많이 내서 돌아서면 눈물 뚝뚝 사과부터 잘하는 엄마지만 언제나 나를 떠올려주고 내가 뭘 했는지 뭘 좋아하는지 궁금해하고 내 취향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두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점점 성장하고 각자의 자리로 떠나가게 됐을 때 나도 내 자리를 찾아가는 ‘엄마’이고 사람이고 싶다. 요즘 나는 말문이 터진 둘째 선율이 에게 계속 이야기한다.
선율아, 엄마 이름이 뭐라고? 엄마는 나경이야. 어찌나! 빛날 경! 어찌나 빛나던지! 빛나는 나경!
어찌찌! 마경!
제대로 발음조차 못하는 내 이름이지만 또 아이를 통해 반짝반짝 빛나는 내 이름을 찾아가는 중이다. ‘엄마’라는 그 이름 자체가 얼마나 빛나고 대단한지, 엄마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다음 주 '수'요일에 있을 맘 리프레이밍 작은 콘서트에서 읽을 글을 올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