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니는 곳도

문을 닫는다

by 앤나우

흥겨운 날이었다.

산타 축제가 있는 날. 들뜬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등원 버스로 달려갔다.


오전에는 극장에서 '뽀로로'시리즈의 열 번째 극장판인 《스위트캐슬 대모험》을 본다고 했다. 짧지만 내일부턴 겨울 방학도 시작한다. 잔뜩 받은 선물, 선물로 꽉 찬 무거운 가방을 들고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 저녁을 챙기고 이제 아이 가방을 확인해서 물통과 수건, 가정통신문과 겨울 방학 숙제 등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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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른 종이 한 장이 더 떨어졌다.



시작부터 아찔한 제목이 보인다.





0000 폐원안내문


그동안 믿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로 시작하는 편지는 A4지 통신문 한 바닥을 가득 채웠다.

*글에 나타난 표현 그대로 그동안 아이들과의 짧지 않은 흔적들을 살펴보며 몇 줄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직면했다는 구절이 특히 와닿았다. 마음이 찌르르했던 것 같다. 이 동네에선 꽤나 큰 규모였고 운동회나 학예회 행사, 부모참여 수업이나 아이들 체험 활동도 늘 활발하게 진행하던 곳이었다.

아이들의 소중한 일과가 예쁘게 펼쳐지던 원이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어 종료하게 됐다는 이야기.

몇 해 전부터 이어진 급격한 원아수의 감소로 인한 어려움 있는 가운데 함께 하고자 하였으나 운영이 어려워 내년 3월 전에 문을 닫게 된 과정과 사과가 이어졌다.





둘째 아이가 5세부터 7세까지 삼 년을 다닌 곳이다. 막 입학을 할 무렵에도 이미 주변에 큰 유치원 몇 군데가 문을 닫아서 집에서는 좀 멀지만 이곳을 선택해서 다니기로 했다. 처음엔 100명 가까이 됐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5세에서 6세로 넘어갈 무렵 이사를 가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친구들이 생겼고 4세 아이들처럼 더 어린아이들을 받기 위해서도 노력했지만 아이들이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웃으면서 한 아름의 선물과 함께, 돌아오는 발걸음 내내 가볍게, 아이와 까르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한 장의 종이가 툭,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문을 닫기까지 얼마나 고심하고 또 고심했을까.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선생님들, 아이들 식사를 맡아주셨던 영양사, 조리사 선생님들,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 안전 운전해 주셨던 차량 기사님까지,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갔다. 그리고 이곳을 가득 웃음소리로 채웠을 아이들, 이곳마저 사라지면 근처에 있는 공원이 얼마나 조용할까, 둘째는 내가 직접 데리러 갈 때면 그곳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곤 했다.


이쯤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문을 여는 것보다 문을 닫는 것, 닫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더 험난한 과정이란 걸.


기분이 이상했다.



아이는 여전히 해맑았다. 선물 받아온 물건들을 뜯어보고 크리스마스 이브라 들뜬 마음까지, 오늘은 태권도 시간에 게임도 하고 달란트 시장까지 있다. 우리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는 그래도 문 닫지 않아서 감사한 기분인 걸까, 물론 안도하긴 했지만 사실 이 통신문을 읽으면서 편지처럼 긴 마음이 담긴 소리를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까지 급박하게 문을 닫는 이유가 뭘까. 하지만 분명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닐 거다. 이렇게 오래 운영하고(16년을 넘게 운영한 곳이다) 많은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오간 곳에서, 주변의 다른 큰 기관들이 문 닫을 때도 버티고 버티며 내년도 일정을 이야기하던 곳에서 문을 닫는다니. 큰 곳은 어쩌면 문을 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보냈던 나의 생각도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편지 같은 통신문을 읽고 또 읽다 보니, 어젯밤에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EBS 다큐멘터리 K - 샘 리처드의 초저출생 리포트에 대한 것이었다.

1부. 왜 한국인은 아이를 낳지 않을까?

2부. 사라지는 아이, 흔들리는 한국




어제 본 2부에서 서울 광진구에 있는 '화양초등학교'가 나왔다. 학생수 감소로 개교 40주년인 2023년에 폐교하고 학생들은 인근의 다른 학교로 분산했다고 한다.


샘 리처드는 수많은 도시를 여행했지만 도심 한 복판에 이렇게 문을 닫은 학교를 본 게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나는 사실 그 말에 더 놀랐다.

문을 닫는 학교도,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너무 많이 봤으니깐.




아이를 낳기 전까진 사실 나도 관심이 없었다.



다음 세대

아이들

저출생

인구절벽




나도 살기 바쁜데, 다음 세대가 뭐야, 뭘 생각해하는 마음으로 달려왔다. 뭐 지금도 여전히 아이랑 하루살이 인생처럼 그때그때 바쁘고 정신없이 사는 엄마지만 우리 아이들이 있기에 이제는 늘 '다음 세대'라는 말이 내 일처럼 설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깨닫게 됐다. 언젠가 내 아이가 부른 동요 가사처럼 세상이 이렇게 밝은 것은, 즐거운 노래로 가득 찬 것은 아이들 때문이란 걸 날마다 깨닫는다. 그걸 가까이서 느끼고 울고 웃을 수 있는 삶에 감사한다.


출생을 당연히 강요할 수 없지만 이렇게 1%도 안 되는 출생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출생률은 0.80명으로 1이 안 되는 이 숫자가 13개월 연속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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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고 슬픈 심경이 들었다. 샘 리처드 부부는 우리나라 곳곳의 젊은 부부들, 아이들, 폐교된 학교 등을 돌아보며 멕시코의 인구학자와도 화상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거기서 나눈 대화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멕시코와 한국의 인구수, 점점 감소하는 저 출생률 모든 면이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멕시코는 2.1명 내외로 조금씩 유지하며 증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우리와 다른 다민족, 다문화를 흡수하며 커지는 과정들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도 과연 '단일민족'이란 말을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


이번 일본 여행에서도 놀랐던 점은 공항에 도착한 순간, 공항 직원들부터 외국인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카페를 가거나 상점을 가도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특이하게도 일본어도 영어도 무척 능숙했다. 도쿄 중심에서 카운터 곳곳에 그들이 서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게 또 놀랄 일인가 묻는다면, 우리나라 식당 곳곳에서도 동남아시아 직원들이 이미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면 우리의 사정도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우리는, 나는, 그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우리의 인구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외국인들, 이 동네에도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이렇게 떨어지는, 감소하는 출생률의 하락세가 의미하는 걸 묻자, 바로 다음에 돌아온 대답이 무서웠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직접접으로 와닿는 '무섭다'는 표현은 처음 느낀 감정이기도 했다.



우리의 인구 그래프는 다음 세대로의 연결이 단절되고 더 이상 우리의 전통이나 문화, 가치관을 이을 세대가 없다는 의미라는 거. 당연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들으니 참담한 심경이었는데 그 기분 그대로를 오늘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더 이상 결혼이나 자녀 출산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삶의 가치 기준이 높아지고 경제적 구조적 문제도 불안한데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기르기엔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불가능. 그렇게 이루지 못할 바엔 아예 가지 않은 길을 택하는 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깝고, 더 나아가선 무섭기도 하다. 점점 줄어드는 사람들은 결국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언젠가 아이들과 재밌게 본 '아름답고 슬픈 멸종 동물이야기'전시회가 생각났다. 그래 맞아, 그 표지엔 제일 마지막엔 멸종 동물을 따라가는 원시인의 그림자가 있었다. 원시인은 사라졌지만 험난한 삶을 버텨온 원시인들의 흔적들 덕분에 인류가 또 이어져 올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이렇게 하나 둘 문을 닫고, 아이들이 더 이상 갈 수 있는 근처의 어린이 집, 유치원부터 사라지면 그땐 또 얼마나 힘들어질까.



큰 아이가 어렸을 때 서울에 대단지 아파트에 살았는데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고층에서 피리를 바닥으로 던지는 어른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소리가 커다란 소음이기도 했겠지만 더 쓸쓸하고 무서운 현실은 아이들의 함성소리,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현실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나는 이번 일본 여행 중에도 작디작은 아기들, 눈을 감은 채 엄마 품에 잠들거나 아장아장 걷고 있는 일본 아이들을 볼 때마다 웃었던 것 같다. 원래 모든 아기가 귀엽고 예쁘지만 더 사랑스럽고 예쁜 것 같다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언니를 한 번씩 툭툭 쳤다. 귀한 아이들이어서 그랬나 보다.






#저출생

#인구감소

#문을닫는어린이집유치원

#몹시쓸모있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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