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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Oct 17. 2024

엘리엘리 엘리멘탈(Elemental)

물과 불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 


불, 물, 공기, 흙 4개의 원소들이 살고 있는 '엘리멘트 시티' 원래는 물과 흙 공기로만 공존하는 도시에 앰버의 가족들이 이사를 온 것이다. 처음부터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앰버의 가족은 혹독한 거절 속에서도 폐가를 수리해 지금의 '파이어 플레이스'를 만든다. 그리고 처음으로 정착한 불의 가족 앰버네 만의 자리를 잡아간다. 재치 있고 불처럼 열정 넘치는 '앰버'는 어느 날 우연히 유쾌하고 감성적이며 물 흐르듯 사는 '웨이드'를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으며, 지금껏 믿어온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 



우린 흔히 허허실실 웃고 다니고 좀처럼 화 한 번 내지 않는 사람을 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니다, '물 같다'라는 표현은 잘 안 쓰고 뭐 괜찮아, 무난해, 성격 좋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섞이기도 하고 어디서나 부드럽고 축축하게 (상황에) 스며든다. 그러다 보면 강렬하지 않아도 그런 허허실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돌아보게 되고 또다시 찾게 되는 매력이 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이런 물 같은 사람들의 얼굴이 몇몇 생각날 것이다. 내 주변에도 이런 '물'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떠올리면 먼저 웃음소리가 생각날 정도로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분이 좋아진다.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편안함을 준다.


반대로 불 같은 사람은 열정적이고 에너지도 넘치지만 때론 분노나 화나는 감정을 제때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 쟤 또 발작 버튼 눌렀네' 이렇게 표현하지 않을까. 어딘가 몰입하는 모습이나 한 곳에만 집중해서 쏟는 힘을 볼 땐 우와아 하지만 제대로 섞여서 스며들긴 어려운 불. 옆에 모든 것까지 재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은 불이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이런 불이 이글이글 거리는 사람이 모든 걸 부수고 태워버린다는 것 역시 우리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공기나 흙과 같은 사람도 영화에 나오긴 한다. 세상이 이렇게 구분돼서 4원 소설로만 사람을 따질 수 있겠냐만은 개인적으론 공기 같은 사람도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자유자재로 몸을 부풀리고 떠다니는 낭만적인 사람들이 공기 같은 사람들이려나.


나에게는 물 하나만으로도 불 하나만으로도 단정 지을 수 없는 측면이 많다. 물과 불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 그런가, 난 이 영화가 참 좋았다. 두 인물이 분명 나오는데 양쪽을 다 공감할 수 있는 행복한 기분이라고 할까? ㅎㅎㅎ

작년 여름 큰 조카 예찬이와 형부, 우리 선재랑 넷이 극장에서 본 영화인데 이제야 자판을 두드린다. 서랍 안에 줄거리랑 대사 몇 개만 덩그렁, 더 늦기 전에 발행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등으로 '몹*글'에도 인증을 해야지 하는 목표로!! -이미 실패했다;; ㅋㅋㅋ









얼마 전 생일로 함께 만난 쑥이가 이런 말을 했다. 직장 신입사원과 회식 자리가 있어서 다른 직원이 다들 신입과 처음 하는 회식 자리에서 첫인상을 말해보라고 했단다. 그런데! 띠로리, 쑥이만 그대로 패싱 당했다. 노룩패스도 아니고 패싱이라니, 뭔 말인고 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뭐 단답형으로 간단한 말들이 오갔지만 자기에겐 음..., 하더니 그냥 넘기면 안 되냐고 했다고. ;;;


쑥이는 그러면서 자기의 뚜렷한 색깔과 개성이 없는 부분을 또 생각하게 됐다며 조금 더 찾아봐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도 성의 없는 대답조차 안 하는 직장 후배를 탓하기보다 자기를 돌아보다니, 쑥이는 이미 이런 마음가짐 자체가 보물같이 멋진 사람인데! 이런 자리에선 불같이 화낼 수도 없고 물같이 허허 웃고 얼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게 상책이겠지. 무향무취인 듯해도 사실 '물'도 물만의 개성이 있다. 그것도 아주 뚜렷하게.

나중에 신랑과 이런 이야기를 해보니, 사실 '내 첫인상이 어때? 말해봐?' 이 말은 군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라 군대에서 기피대상 일호, 듣자마자 소름이 쫙 돋는 말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는데 웃음이 빵 터졌다. 누군지 몰라도 다들 선배이며 상사일 텐데 저 질문을 꺼낸 사람이 무조건 우리를 칭찬하고 좋게 말해봐로 들렸을 거라고. 그런데 대충 대답한 신입 사원도 이상한 사람 같다며 신랑의 결론은 쑥이에게 그런 질문과 대답 자체에 연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음의 소리를 못 들으니까 화가 나는 거야.
화날 때 나는 이렇게 말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준비가 아직 안된 거라고. 




불같이 화가 나는 순간들이 몇 번씩 있다. 왜 자꾸 화가 나는 걸까, 생각하는 순간도 이미 늦어버릴 정도로 화를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 이것도 못 참았어, 또다시 화가 화를 부르는 반복이 이어져 버리고 만다.

'화'라고 하면 나랑 떼려야 뗄 수가 없어서 나는 늘 '왜' 화를 냈지를 뒤늦게라도 꼭 생각했다. 그랬더니 공통점을 발견하기에 이르렀으니, (나는 이런 걸로 화냈다는 게 놀라웠다!)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묶을 수 있다. 


시간이 조급할 때 - 빨리 서둘러도 모자랄 판에 다른 일이 막혀서 꼬여버릴 때

내 뜻대로 통제하지 못할 때 (특히 아이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울할 때/ 내 뜻과 다른 오해가 생겼을 때


나는 이럴 때 주로 화가 났다. 아니, 화를 냈다. 화는 날 수 있는데 참아내는 사람들도 있으므로. (나는 느리지만 조금씩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허공에 대고 혼자서 화를 낼 때도 많았다. 화를 참아내고 부들부들 떠는 엠버의 모습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날카로운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갈 때도 있었고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내가 불쑥 튀어나온 느낌마저 들었다. 

내 마음을 나 조차도 놓칠 만큼 정신줄을 놓았던 거구나. 오분 뒤에만 생각해도 그냥 별 거 아닐 때가 얼마나 많은데,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준비가 안 됐을 때가 우리에겐 생각보다 많다. 





내가 널 처음 만났을 때, 난 물에 잠긴 듯한 기분이었어.
하지만, 네 빛, 네 안의 밝은 그 빛이 날 살아있게 해 줬지.
난 너와 가까이 있고 싶어. 너랑 나, 둘이서 함께. 
네 빛이 일렁일 때가 좋아. 





엠버는 여기저기 새는 물을 전부 자기의 불로 땜빵(?)하기에 바쁘다. 화 자체도 에너지 덩어리기에 잠깐 뭔가는 솟구치는 힘을 줄 수 있다. 그게 원동력으로 또 다른 걸 추진하는 힘을 얻을 수도 있고. 하지만 결국 다 폭발하고 마는 수도관처럼, 나에게 있는 불덩어리의 진짜 속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거기엔 억울함이나 분노라는 감정보다도 언제나 타오른다는, 잔잔하게도 은은하게도 탄다는 불의 진짜 본모습이 있다. 잠시잠깐 새는 걸 막거나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기 위한 용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비춰주고 나만의 꿈과 열정이 있고 제일 중요한 거, 불은 주변을, 그리고 나를 밝혀준다. 밝게 해 준다. 캄캄한 어둠이 싫은 나는 역시 불이 좋다. 불의 모든 속성 중엔 빛을 낸다는 점, 막막하고 흐릿했던 실체를 밝게 해 준다는 게 언제나 나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웨이드 역시 엠버의 이런 속성에 빠져든 게 아닐까.


네 빛이 일렁일 때가 좋아. 

사실 이건 타는 엠버 안에서 일렁거리는 웨이드 자신의 속성을 발견했을 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 대상만 보이는 게 아니다. 사랑에 빠진 내 모습을 새롭게 발견했을 때 누군가를 사랑하고 행복한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오늘 아침 글향님이 보내준 카드레터엔 '감정'에 대한 글이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영화가 생각났는지도 모르겠다. 


심리적 CPR은 '나'라는 존재 자체에만 집중해야 한다. 심장 압박을 할 때는 두꺼운 옷을 젖히고 옷에 붙은 액세서리도 다 떼고 정확하게 가슴의 중앙 바로 그위 맨살에 두 손을 올려놓는다. 심리적 CPR도 '나'처럼 보이지만 '나'가 아닌 많은 것들을 젖히고 '나'라는 존재 바로 그 위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가 '나'라는 존재 자체인가. 남들은 다 나를 부러워하는데 내가 이러는 건 사치스러운 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고 외로울 수 있다. 그럴 때 나는 괜찮은 건가 아닌가. 그때는 내 생각이 옳은가 아니면 내 감정이 옳은가. 감정이 항상 옳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곳은 내 감정, 내 느낌이므로 '나'의 안녕에 대한 판단은 거기에 준해서 할 때 정확하 다. 심리적 CPR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도 감정에 따라야 마땅하다.
                                                                                   -책 《당신이 옳다》중에서, 정혜신-



감정이 항상 옳다, 두려움이나 불안도 역시 감정인데 그 감정도 틀린 게 아니라 내 감정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또 다른 길이 보이는데 우리는 언제나 그걸 '극복해야 할' 이겨내야 할 감정처럼 말한다. 울면 우는 대로 눈물이 터져 나오면 억지로 막지 않는 웨이드처럼, 감정을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껴안고 싶다. 우리의 감정도 하나만으로도 규정할 수 없고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때가 많지만 그때마다 제일 중요한 건 내 기분을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속이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알레님께서 써주신 댓글 중에 우리는 어딘가에 꼭 '~척'을 할 때 탈이 나는 것 같다는 말이 공감됐다. 괜찮은 척, 기쁜 척, 반가운 척, 누군가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말에서조차 불편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조금 무덤덤한 사람들도 무뚝뚝하고 표현이 없는 사람들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  불, 우리의 감정 자체가 잘못된 건 하나도 없는데 부정적 감정이란 말 때문에 위축되고 자꾸 물음표를 품었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저 말이 맞는 것 같다. 호기심, 두려움, 불안함, 좌절감, 눈물, 열정 그 어떤 감정 하나도 잘못된 감정은 없다.  


디쇽, 빛 날 때 마음껏 즐기라는 불의 언어 중 "디쇽"이란 말이 있다. 

영원한 빛은 없으니 빛날 때 우리 감정이 소리칠 때 그 순간순간들을 즐겨라!

기적의 꽃 비비스테리아가 사실 우리 마음속 저마다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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