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듣는 클래식
Wooa클래식 은지님 덕분에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다. 둘째 아이까지 등원 버스를 태워 보내자마자 역으로 바삐 달려서 전철을 타고 여행하는 기분이 들 즈음에 도착하는 예술의 전당, 이제 막 챙겨 온 책이 재밌어지려는 찰나, 벌써 도착이다. 마티네 콘서트는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마티네 콘서트 밤보다 낮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콘서트를 말한다. (프랑스어 마탱 matin : 아침)에서 나온 말로 낮에 열리는 콘서트를 의미한다.
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오전 11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송안훈 | 연주 코리아쿱오케스트라 | 해설 강석우
바이올린 정원순 | 비올라 김상진
I. Allegro maestoso
II. Andante
III. Presto
휴식 Intermission
*이 시간에 나와서 부랴부랴 팜플랫을 샀다. 공연이 끝나고 팜플랫은 따로 구매할 수가 없다. 30분 정도 더 판매하기도 하지만 기념으로 가지고 싶어서, 티켓과 지갑을 챙겨서 1층 로비로 후다닥.
〔다시 공연이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 마지막 연주를 듣는다.
II. Andantino in modo di canzona
III. Scherzo. pizzicato ostinato
IV. Allegro con fuoco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은지님의 공연을 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출발한 관람이었지만 공연 내내 마음이 콩닥콩닥 설레고 즐겁고 행복해졌다.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자리에 '앉아서'듣는 클래식은 이런 기분이구나,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요 몇 년 동안 주변에 클래식 음악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동영상이나 파일로도 종종 음악을 듣는데 사실 청소하거나 글을 쓸 때 뭔가 다른 걸 할 때 들었던 게 대부분이다. 클래식은 가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따로 집중할 필요가 없이 심신의 안정감을 준다고만 느꼈는데 그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서 듣는 클래식은 역시 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연주자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나에겐 필요했던 거구나!
니콜라이의 활기찬 서곡이 시작할 때마다, 오페라를 본 적이 없어도 이 순간에 몰입되는 기분, 오롯이 음악을 듣고 집중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절로 손가락이 톡톡톡 들썩였다.
모차르트 'Andante'를 들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모차르트의 음악 여행에 언제나 동행했던 엄마가 죽은 후에 쓴 곡이라고 하니 그 마음이 선율에 묻어있는 것 같았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소리가 이토록 조화롭고 아름답게 들리다니!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아슬아슬 미묘한 호흡의 차이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하나가 돼서 이루는 조화로움이 좋았다. 자기 차례가 돼서 연주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주 소리, 모습에도 집중해야 한 곡을 끝까지 마칠 수 있다. 함께 가는 길이 내내 아슬아슬 긴장될 만큼 집중하는 힘이 있는 무대였다. 가장 사람 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지만 작곡도 연주도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모차르트는 이런 음악을 만들었구나, 모차르트의 마음도 마음이지만 함께 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합주 그 자체가 나를 눈물 나게 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뚫어져라 오랫동안 누군가랑 맞춰가고 맞춰지려고 나는 노력한 적이 있을까. 그 진지한 물음표에 대한 답처럼 오케스트라, 이끄는 지휘자님의 손길마저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차이콥스키 역시 힘들 때 쓴 곡이라 구슬픈 경향이 묻어나는 곡이라 했지만 마지막 한 방!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그 한 방! 변화무쌍한 감정의 선율 속에서도 살짝 눈물이 나왔는데 그건 누군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시아버님과 어머님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우울한 내면 정서와 달리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곡을 이룬 대가들의 손끝이 나를 위로해 주고 만나준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내 자리도 얼마나 좋은 곳으로 고심해서 골라줬는지 가운데에서 오케스트라가 한눈에 보였다.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생생함, 특히 송안훈 지휘자님의 지휘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는데 작은 하트, 큰 하트를 마구 쏘는 듯한 포즈 같기도 했고 짱구의 엉덩이 춤 같기도 한(ㅎㅎㅎ) 들썩들썩 신나고 경쾌한 지휘자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느껴졌다. 음악에 따라 몸을 음표대로 움직이며 먼 소리까지 몸과 영혼이(?) 전부 지휘하는 듯했다. 최고!!
무수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어떻게 눈 마주치고 무슨 사인을 주는 걸까? 공연을 볼 때마다 궁금했는데 지휘자들은 저마다 눈 마주치는 방식과 소통하는 기법도 달랐다. 악보를 넘기기도 바쁠 것 같은데 중요한 건 어느 파트에서 손짓 눈짓, 강조하는 몸짓까지 꼭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들어 봐주는다는 것이다. 연주자가 아니기에 그 미묘한 차이는 내가 알 수 없지만 느껴졌다. 지휘자님의 섬세한 손길을 따라서 멀어지는 느낌도, 어딘가에서 시작해야 할 다른 파트의 긴장감들도, 손가락으로 튕기는 듯하다가 다시 활을 잡아야 할 때도, 공연을 현장에서 본다는 건 음악 외에도 연습하고 쌓아 올린 시간과 단합의 힘을 볼 수 있는 자리 같다.
중요 순간마다 심벌즈와 팀파니 연주자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게 재밌었는데 심벌즈 같은 경우엔 소리가 울리는 정도에 따라서 가운데로 모으고 있거나 퍼지게 하기 위해서 양손을 앞으로 내밀기도 하는 포즈를 취했다. 중요한 건 악보! 심벌즈는 두 손을 다 써야 하는 악기인데 과연 누가 악보를 넘겨주지? 이런 궁금증도 잠시, 옆에 있는 트라이앵글 연주자가 자연스럽게 심벌즈연주자의 악보를 넘겨주고 있었다.
나는 이런 순간을 발견하는 게 왜 이리 재밌고 좋은지 모르겠다. ^^
서로 돕고 기다려주고 질서 정연하게 배열해 있지만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자기만의 공간에 앉은 연주자들이 새삼 대단해 보이고 한 명 한 명 멋져 보였다. 나는 무슨 악기를 연주하면 좋을까 상상도 해보고 (연주할 줄 아는 악기도 없으면서;;) 지휘자님의 저 에너지의 시작은 어디일까도 궁금해졌다.
아침마다 레인보우로 CBS 라디오 음악 FM 강석우님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자주 들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DJ하차가 아쉬웠다. 하지만 여기서 즐겁게 음악 해설을 해주시니 또 반갑고 좋았다. 아이가 어렸을 적 새벽마다 들었던 클래식도 생각나고 직접 DJ가 연주해 색소폰 소리도, 작곡한 가곡들도 떠올랐다.
전곡을 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주요 부분을 뽑아서 또 친절한 설명과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한숨 돌리고 산뜻한 바람을 맞는 것 같은 마티네 콘서트는 가을이 다시 시작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자기 키 보다 더 큰 악기를 이고 지고 두 아이들까지 키우며 또 다른 아이들 두뇌교육 영상까지 만드는 우리 은지님도 새삼 대단해 보였다. 아, 어쩌면 은지님의 영상이 조급하지 않고 창의적이면서 여유가 넘쳤던 이유가 바로 클래식 음악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단단하게 훈련하고 연습한 내공이 있는 만큼 뭘 해도 준비하고 노력하고 뚫고 나갈 거라 믿는다. 공연을 마치고 잠깐 만나서 은지님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휘자 선생님께서 큰 병에 걸리셨다가 그 병을 이겨내고 제2의 인생을 사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세상에 왜 그렇게 매 순간 '지휘에' 진심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다시 사는 인생!
단원 모두를 파트마다 정성스럽게 소개하고 박수 소리에도 앙코르로 화답해 주는 여유롭고 부드러운 매너는 매 순간이 진심이었기에 가능하다고 느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가 할 일만 하지 않는다. 할 일을 마친 후에도 함께한 연주자들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도, 관객에게도 호응을 해준다. 매너가 그 사람을 만든다는 유명한 대사는 킹스맨에만 나오는 말이 아니라, 공연장에서도 박수를 받는 작은 무대에서도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어쩌면 마지막에 여유 있는 호응과 미소야 말로 이번 공연에서 나에게 가장 긴 여운과 응원을 준 시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