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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Dec 01. 2022

기억 꿈 사상

외할머니가 계시는 영주 부석사 여행 중


기억 꿈 사상 -카를 융-


이 책을 읽고 충청도와 영주 일대를 여행하며 나의 외가 영주 서릿골  외할머니 댁에서 꿈을 꾸다. 



항상 억눌리고 혼자서만 놀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아이가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 아이는 선재와 닮아 있었지만 선재는 아니었다.  얼굴도 모습도 다른 아이였는데 나는 꿈이지만 한눈에 그 아이가 내 아들, 선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재는 늘 나와 소통하고 나랑만 이야기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걸 두려워했다. 우리가 함께 사는 보금자리 같은 공간에서도 12월 1일까지만 살고 나가야 했는데 그곳은 우리 부모님 명의의 편안한 공간이었고 아이와 단둘이 사는 것이 버겁지만 그럼에도 아늑하게 여겨지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 -집주인인지 부모님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더 이상은 집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단언했고 나에게 스스로 살 곳을 구하라고 했다.  

 나는 몇 번 본 적 있는 어떤 여자의 다락방에 선재와 둘이 숨어 살게 됐다. 왜 숨는지 모르면서 자꾸만 다락방에 아이와 단둘이 숨어있었다. (안경을 쓰고 인상이 좋은 그 여자는 나와 특별한 친분은 없었지만 가족보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좋은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아이가(선재) 자기의 꿈 이야기를 해준다. 너무 좋은 꿈을 꿨다며 정말 행복하고 좋았다고. 물을 헤엄치며 노닐며 자기는 그렇게 살았다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기는데,  그때부터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를 마주한다. 아이의 변화가 신기하면서 좋은 한편, 뭔가 살짝 무섭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아이 귀를 파 주는데 손톱보다 작은 이빨처럼 생긴 게 나오고 놀라서 반대편을 파주니 작은 물고기 뼈, 잔가시, 물풀 등이 피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서 울었다. 아이가 곧 왜 그러냐고 묻고 해맑은 얼굴 위로 내가 묻는다. 

-선재야. 지난밤 엄마한테 네가 뭐라고 했지?

선재가 대답한다. 

-엄마, 제가 말했잖아요. 전 물고기가 됐어요. 물고기가 돼서 처음 보는 곳을 헤엄쳤고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어요. 행복했어요. 엄마. 전 이제 괜찮아요. 내가 물고기란 걸 알았어요.  

 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는 카를 융과 같이 저명한 꿈 해석학자를 찾아가기 위해 전화를 하고 나도 여행을 떠난다. 아이를 떠나보내 줘도 맞는 건지 왜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이상한 환상인지 실제 인지도 모를 꿈을 꾸는 건지. 이러다가 새벽에 번쩍 눈을 떠서 처음으로 신기한 꿈을 기록해 봤다. 

(‘물고기’란 제목의 동화를 써봐야지 하면서 말이다. 너무 신기한 게 꿈속에서 나눈 대화 하나하나가 전부 기억났다는 사실이다)


2022년 2월 12일에 쓴 꿈을 기록하다. 




여기 까지가 나의 꿈이다. 꿈을 잘 안 꾸는 편(정확히는 기억을 못 하는 편)인데 책을 재밌게 읽은 덕분인지 엄청 의미 있는 꿈을 꿨고 새벽 2시에 깨서 두서없이 꿈을 메모장에 기록했다. 생생한 정신으로 내가 꾼 꿈을 써보긴 처음이었다. 예전에 출발 비디오 여행이란 프로그램에 레오 까락스 감독이 나와서 앞으로 무엇을 할 건지 묻는 진행자 말에 

내 꿈을 기록해서 그 이야기를 팔 거예요.


라고 했는데 갑자기 그 인터뷰 생각이 났다. 얼마나 재밌는 꿈을 꾸면 날마다 그런 꿈을 기록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는데 나도 처음으로 '의미 있는' 꿈을 꿨다는 생각이 기분이 이상했다. 새벽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하지만 정신은 또렷하게 오타 천지 글을 기록하면서도 정말 재밌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또 쓰면서 몇 년 만에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날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물고기란 동화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처음 해봤다) 


왜냐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기 한 자 쓰기에도 정신없고 글 쓴다는 자체가 언제부턴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뒷이야기


내가 상담하는 선생님께 이 이야기를 나누니 의미 있는 꿈같다며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꿈속 아이가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선재 얼굴은 아니었지만 분명 꿈에서도 선재였어요. 선재가 주인공 아닌가요?

-누구 꿈이죠?

-!!!!!!!



꿈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고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른 얼굴을 가졌어도 결국 ‘내 꿈’ 이예요. 답답하고 다락방에 갇혀있고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은 건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반전 같은 놀라움. 


내가 코로나로 인한 답답함, 이어지는(다섯 살 터울 ㅜㅜ)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 육아나 살림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 이 모든 게 복합적으로 드러난 건 아닌지 찬찬히 생각해 봤다. 


꿈에서 두렵고 답답하고 뭔가 답을 찾은듯한 후련함에 엉엉 울었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시원하고 후련했다. 

눈을 떴을 때 눈물 한 방울 없었지만 말이다. 


내 꿈엔 힘이 있다. 


(사실 사람의 무의식은 대단한 것이라 자기가 감당할 만큼의 꿈만 꾼다고 한다. 가령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에 한 번도 안 나온다고 불평하는 사람에겐 그 한 번의 등장으로 일상이 무너지고 다시 힘들어질 수 있다는 암시가 있어서 감당하고 견딜 힘이 있을 때, 슬픔과 마주할 수 있을 때 ‘꿈속’ 어머니도 마주할 수 있는 거라고 한다. 

 나는 이 말이 묘하게 위안이 되고 좋았다. 그리고 언젠가 유복자로 태어나서 한 번도 아버지 얼굴을 본 적 없는 우리 아빠가 꿈에서 얼굴도 모르는'아빠'가 나왔다며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진 한 장 없는데도 분명 '아빠'인 걸 알았다는 것도 신기한데 그 꿈을 꾸고 기분 좋았다는 사실이 나를 웃게 한다. )


내 꿈속에 내가 발견한 또 다른 작은 아이 선재는 바로 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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