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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Sep 13. 2024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산 천문대 수업

오랜만에 떠난 밤마실


아이의 천문대 첫 수업을 핑계로 함께 가긴 했지만 커다란 대형 버스를 타고 덜컹덜컹 시끌벅적 아이들과 함께 천문대로 가는 길은 그 자체로 설렜다. 밤에 반딧불이를 보러 소풍 가는 기분도 들고, 고봉산을 돌아 점점 위로 올라가는 버스, 옆으로 보이는 군부대, 낯설고 조용한 세상, 선재의 1년 별자리 수업이 시작됐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금기 없이 말하는 책 모임'에서

우리 모임엔 따로 이름이 없다. 심선생님(아웃리치님)을 중심으로 혜진쌤 윤하쌤 나 우리끼리 만나서 밤새 책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삶 이야기를 하고 책 한 권으로 떠나는 역사 여행이 되기도 음악 여행이 되기도, 현재 자기의 마음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 넷은 전부 동네 책방에서 만났는데 연령대도 직업도 관심도 전부 다르다. 책을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공통점 말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 사람들끼리 전부 처음 보는 사이인데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책을 서로 나누고 빌리고 책 이야기를 한다. 서로 재밌는 책을 올리고 이야기하고 빌려주고 아이들과 읽으라고 권하고 선물해 주고 나눈다. (심선생님께서 열린 공간과 자리, 책을 어마어마하게 제공해 주신다) 내가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만난 혜진쌤 덕분에 12명 별자리 수업팀 안에(우리 아이만 다른 초등학교지만 받아주셨다!) 들어가서 계절마다 보이는 별자리도 관찰하고 망원경으로 하늘을 볼 수 있게 됐다. 차량 버스 대절부터 이것저것 신경 써주는 이은쌤과 혜진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두근두근 괜히 이 날만 기다려졌다. 

8월부터 시작해서 12달 동안 계절마다 다른 별자리를 관찰하고 우주와 행성에 대해서도 배운다. 중요한 건 수업 시간마다 천문대로 올라가 하늘의 별과 행성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거! 


첫째 날은 엄마들에게도 어떻게 진행되는 수업인지 OT가 있었다. 





일산 천문대 수업 OT




사실, 별 기대를 안 했다. 어린 시절 통리 외할머니 댁에서 쏟아질 듯 가득한 별을 보면서 감탄하고 놀라긴 했지만 혜진쌤 말대로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공간지각 능력이 꽝이라 하늘에 어디가 어디고 뭐가 뭐인지 통 알 수가 없어서 별자리나 하늘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이 땅에 살면서 지리도 잘 모르고 방향치라 길도 맨날 헤매는데 하늘 길은 무슨(지도도 잘 못 보는 것까지 자랑은 결코 아니다;;;), 코웃음을 치며 살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떤 수업을 하는지 맛보기로 그냥 볼까 했는데 첫눈을 사로잡은 건 어마어마하게 큰 태양 모형. 실물 크기 그대로 축소 해났는데 태양은 뭐 말도 안 되게 무지막지하게 컸다. 다 잡아서 삼킬 것 같은 양이었다. 수성은 수박씨 같은 점으로 매달려 있었는데 실눈을 뜨지 않았으면 지나칠 뻔한, 거기에 유일하게 파랗고 초록인 우리 별 지구! 아이들이 나온 단체 사진을 보면 꼭 내 아이를 제일 먼저 찾고 당연하게 발견하는 것처럼 태양계에 속해 있다 해도 평소 별 관심 없는 애들보다 우리 지구는 확실히 나에겐 특별하고 남달랐다. 하늘에 둥둥 떠있는 모형만 보는데 뭔가 재밌을 것 같은 예감이 파바박 들었다.





지구도 태양에 비하니 흑점보다 작은 나사못도 안 돼 보이는 크기로 보인다.





북두칠성(일곱 개의 밝은 별로 이루어진 국자 모양의 작은 곰자리)은 큰 곰자리의 한 부분이고 마주하는 작은 곰 자리의 길쭉한 꼬리 부분에 우리가 잘 아는 '북극성'이 있다. 북극성, 나도 들어봤는데 가장 빛나는 별! 머릿속 별이 반짝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ㅋㅋㅋ 입 밖으로 말 안 하길 다행!)

이 별은 가장 크고 빛나서 유명한 게 아니라 다른 별자리는 전부 돌고 매번 위치가 바뀌고 이동하지만 '북극성'만은 컴퍼스의 중심점처럼 절대 이동하지 않는단다. 언제나 늘 그곳에서 그 자리를 지키는 별이라고 한다. 그냥 별자리 하나에 대해 알았을 뿐이고 듣게 된 건데 갑자기 마음이 찌르르 해졌다.


폴라리스 


방향과 신뢰의 별 


옛날 몽골인들은 그래서 북극성이 세상을 한데 붙들어 주는 못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단다. 


빛나지 않아도 강하지 않아도 절대 움직이지 않는 북극성이 대항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길을 안내해 줬을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 《모아나》에서도 모아나와 마오이가 하늘의 별을 보고 항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백 년 동안 길잡이를 할 수밖에 없는 게 이 별만 보면 움직이지 않으니까 누구든 쉽게 북쪽을 찾을 수 있다.


사실은 북극의 위쪽이라는 특별한 위치 때문에 북극성은 하늘에 고정돼 있고 다른 별들이 그 주변을 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수천 년 동안 지구 축의 기울기가 조금씩 변하면서 밤하늘 속 북쪽의 위치도 변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를 짓던 4000년 전에는 투반이라는 별이 북극성이었고 지금부터 12000년이 지나면 베가라는 밝은 별이 북극성 자리에 들어온다.(Glow 글로우/ 노엘리아 곤살레스 글/ 사라 보카치니 메도그 스림)
※ 이건 책을 통해 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12000년 이라니! 시공간을 초월한 느낌이 든다. 


내 인생에도 북극성이 있어야겠구나. 


아니 어쩌면 내내 하늘에 떠있는 별을 우리가 밝은 태양에 가려 볼 수 없듯 나를 붙들어주는 단단한 못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내가 제대로 찾지 않았던 건지도 잊고 지낸 건지도, 잊은 척 한건지도 모르겠다. 시리우스처럼 가장 빛나는 영광의 별은 아니어도 눈길을 사로잡지 못해도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단단한 북극성이 있기에 제자리를 찾아가고 방황하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돌아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믿는 신, 나를 지탱해 주는 가족, 꿈, 저마다 다른 북극성이 때론 가장 빛나지 않아도 희미해도 다른 별로 대체돼도 괜찮다.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있어줄 거니까. 


와... 별 하나를 알았을 뿐인데 이렇게 뭉클하고 어마어마한 우주를 맞이한 느낌이 드는구나. 나 하늘에 떠있는 별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네. 몰랐던 나를 또 발견한 날이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윤동주 / 눈 감고 간다




맞아, 태양도 별이었지. 태양계 중심에 가장 빛나는 항성. 태양 덕분에 태양계로 묶어진 우리 동네가 생겼다. 왜소행성, 달, 소행성, 유성, 혜성도 잘 모르지만 하나씩 배우고 찾아가고 따라가다 보면 나를 다시 만나고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만 같다. 


많은 질문이 오고 가고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즘, 88개의 별자리를 모두 퍼즐처럼 붙이면 그게 천체가 되고 그걸 영상으로 보고 있자니 흥미롭고 놀라웠다. 아이들이 맨날 이런 수업을 듣는다니 좋은 세상에 살고 있네, 부러운 생각도 들었다. 내가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그 시간들까지 100년, 200년 후에도 별자리의 모습을 보자니 이상한 마음도 들고. 별들은 북극성 자리를 빼고 여전히 움직이고 거기서부터 빛을 내고 지구까지 저마다의 속도로 도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수많은 별자리를 줌 아웃하더니 빠져나와보니, 갤럭시, 더 넓은 우주에선 태양계도 한낱... (이 말을 쓸 수밖에 없게끔) 또 너무도 작은 별 덩어리처럼 보였다. 성운, 성단처럼 보이는 게 아닌가! 우주에 가면 내가 한 고민이나 시름이 또 한낱, 먼지 같아 보일 것도 같고 신기하고 경이롭고 허무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


이런 기분으로 OT가 끝났다. 


별 초보자의 별 사랑이 시작됐다. 별사탕밖에 모르고 별똥별 밖에 몰랐는데 Glow를 사서 아이랑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경복궁 고궁 박물관에서 천체 과학관을 가장 오랫동안 돌았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열린다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글로우!






책 구성이 재밌고 알차다, 생각보다 글씨가 빼곡하니 많은데 그림도 많아서 보는 재미가 있다. 잘 모르는 분야여서 점점 알고 싶은 게 많아지는 책? 하나씩 어쩌면 좀 더 만나고 볼 수 있어서 설레는 책이다.






별이 보이나요?





추석 기간이 겹쳐서 9월 초에 두 번째 수업을 미리 진행했는데 그때는 9시부터 11시까지 가족들도 초청해서 천문대에서 직접 별도 보여줬다. 온 가족 대출동,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이 날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설치는 선율이까지 작심하고 데려갔다. 별이 보였다. 천만 원이 넘는 망원경으로 토성도 봤다. 토성을 본 나의 첫마디는





성능 좋은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토성의 모습





아니, 누가 과학책을 오려다가 났는데? 
책이랑 똑같아!



별도 과학도 그냥 책으로 본 세대입니다. 하핫ㅎㅎㅎ

그냥 우리가 수도 없이 책에서 봤던 그 생생한 사진 그대로의 밝고 파랗고 빛나는 별들 사이로 토성이 떠있었다. 그냥 평범한 하늘이 비싼 현미경으로 보면 이렇게 다양하고 선명한 색을 띠고 있구나. 토성은 선명한 고리도 품은 채로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 나는 이런 망원경을 여태껏 관찰해 본 적이 없구나. 그래서 자꾸 의심스럽게 몇 번을 문질러서 보고 내 눈을 비비고 다시 눈을 대봤는지 모른다. 망원경으로 본 풍경 속에 또 다른 작은 세상이 숨어있는 듯했고 너무 생생하고 지나치게 밝고 가까이 있는 듯해서 안 믿겼다. 눈으로 보고도!


오히려 요즘 성능 좋은 핸드폰 사진으로 보는 토성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나는 그만큼 밤하늘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토성이 귀엽게 느껴졌다.   

선재는 수업도 재밌고 모르는 애들이지만 좋은 아이들이어서 다음시간부터 혼자 버스 타고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어쩌지 선재야...


엄마가 자꾸 수업을 따라가고 네가 피곤하면 내가 대타로 참여하고 싶어져 버렸다. 










멋진 우주 그림 채색은 별자리 관측을 기다리는 동안 선율이와 함께 기다려준 멋진 7살 싱아 (혜진쌤의 둘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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