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앤나우 Sep 19. 2024

설거지는 나의 힘

나를 비우는 시간 (회복 탄력성)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설거지를 할 때마다 기분이 개운했다. 신혼 초엔 안 하던 요리도 이거 저거 하니 재밌긴 했는데 요리를 할 때마다 느낀 건 손이 느려서 재료를 준비하고 썰고 지지고 볶는 동안 할애되는 시간은 길게 느껴졌는데 잘 먹는 신랑을 만난 탓에(!) 음식이 순식간에 없어지니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싹싹 비워진 접시를 보는 건 기분이 좋았지만 좀 더 느리게 천천히 먹어주길 바라는 소망보다 늘 '아~ 잘 먹었다!'라는 말이 일찍 나왔던 식사. 동시에 수저가 다시 빈 접시에 댕그렁, 담기는 순간 이상한 머쓱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신혼 시절엔 사람들을 초대해서 이것저것 요리도 많이 해서 먹고 배달도 했지만 솜씨 좋은 엄마의 요리를 다시 데워서 내거나 그대로 꺼내서 차리는 게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거 저거 몇 가지씩 요리를 후다닥 만드는 손이 빠른 엄마와 달리 나는 칼질 하나에도, 소스 만들기 하나에도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이 좀 피곤했다. 월남쌈을 자주 만들었는데 채칼을 안 쓰고 왜 일일이 잘랐을까. 요리는 재밌고 좋으면서도 이상하게도 하기 싫은 기분이 드는 날도 있었다. 엄마는 '잘 먹었다! 맛있다' 이 말만 들어도 마음이 뿌듯하고 좋다고 했는데 나는 내가 맛있게 먹기 위해서 요리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런 걸까, 같이 먹는 요리에 분명 사람들이 많은 반응을 해줬지만 엄마처럼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은 좀처럼 느낄 수 없었다. 우리 아이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기분을 못 느끼는 걸 보니 나는 내가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ㅎㅎㅎ



하지만 요리와 달리 설거지는 좀 달랐다. 달그락달그락 그릇을 정리하고 물을 살짝 틀어 담가놓고 그 안에 음식물 찌꺼기들이 올라올 즘 한 번 더 물로 닦은 뒤 그릇이며 수저를 설거지하는 일은 이상하게도 묘한 안정감을 줬다. 허기진 상태에서 누군가랑 같이 먹을 요리를 하는 것보다 다 먹고 배가 부른 상태에서 하는 설거지는 물론 다른 감정일 수밖에 없지만,

난 그 차이가 확연했다. 설거지하는 시간이 좋았다. 물소리만 들리고 그러다가 가끔 라디오 소리도 들리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으면서 때론 유튜브로 재밌는 영상도 보면서(아니, 집중해야 하니 보는 일은 거의 없다. 귀로 들으면서) 팟캐스트 방송 중에서 재밌는 거 대부분은 설거지 시간에 듣는 방송이다. 요리 손만큼 설거지 손도 느렸으니까. 그래서인지 내 부엌에서 누가 요리해 주고 접시를 꺼내는 건 상관없는데 대신 설거지를 해주는 건 싫었다. 사람마다 설거지의 방법이 수백에서 수천 가지라고 한다. 나도 공들여 설거지하는 내 시간과 방법을 빼앗기기 싫었다. 




착착 물기가 없는 접시를 쌓을 때 기분이란!  / 우리 9여전도회 추석 선물도 너로 정했다! (*묭이 글씨) 저 스마일대디 수세미 입은 수저를 통과 시켜서 닦기에 안성맞춤 : )










나의 설거지 순서와 방법

건조대 위에 물기 없이 잘 마른 그릇과 수저 세트 등을 찬장과 수저통에 정리한다. 나의 설거지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일단 착착 접시를 정리할 때부터 뭔가 기분이 가다듬어지는 느낌이다. 손으로 뽀드득을 괜히 해보기도 한다.

전용 목장갑을 낀다.(진짜 목장갑이다ㅋㅋㅋ) 손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설거지는 절대 맨손으로 하지 않는다. 맨손 + 뜨거운 물+ 세제는 최악의 궁합이기에 맨손 뽀드득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좀 놀랐지만 나는 설거지는 무조건 팔팔 뜨거운 정도의 물로만 해서 늘 목장갑을 가장 먼저 낀다. 

이제 드디어 들어가는 고무장갑, 긴 것보단 손에 잘 맞는 작은 사이즈를 선호한다.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것보단 손 크기를 조여주고 쫀쫀한 느낌을 좋아한다.(회색이나 꽃무늬, 다양한 디자인을 써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량으로 생긴 핑크색 가장 알려진 그 고무장갑을 사용한다)

나는 커다란 그릇을 먼저 세제로 닦아놓고 큰 그릇부터 없앤다. 평평한 접시나 메인요리가 담겼던 볼 같은 걸 없애면서 설거지 통을 좀 더 오밀조밀 만들면서 비워지는 기쁨을 느낀다.

그다음은 중간 사이즈 그릇들을 닦은 후 컵도 설거지 후에 바로 건조대로 가지 않는다. 싱크대 옆에 걸쳐 놓은 보조 건조대 옆에 일열로 뒤집이 않고 세워둔다. 물을 탈탈 털어야 제맛이기에.

이렇게 일차가 끝나면 고무장갑을 벗고 세워둔 컵이랑 볼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물기를 끝까지 개수대에 턴다. 생각보다 물이 많이 들어간 것도 있고 물기 없이 건조 상태의 그릇도 있는데 이때 꼼꼼하게 했는지 점검하면서 전체 질감도 확인한다.

이제 마지막 남은 칼이나 날카로운 가위, 수저 세트를 싹싹 닦는다. 가장 마지막에 수저들을 한 번 더 착착착 겹쳐서 물을 여러 번 흘려보내서 그대로 핸드타월이 깔린 싱크대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이렇게 흡수해서 물기를 뺀 후에 마음에 드는 커다란 컵 하나를 잡아서 나만의 방식으로 수저 윗부분 젓가락 아랫부분을 맞춰서 쨍그랑, 담는다. 역시 담고 나서도 쪼르르 물기를 한 번 더 버린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요리한 프라이팬과 국을 담았던 냄비 등을 닦는다. 큰 그릇 전용 기름때 수세미는 따로 있기에 여기에서 실리콘으로 된 수세미로 기름때를 제거하고 베이킹 소다와 세제를 같이 섞어서 물을 채워둔 후 한꺼번에 닦는다. 

요리할 때 튀었던 벽면이나 후드 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개수대 전체에 있는 물기를 제거한다. 

가뿐한 마음으로 고무장갑을 정성스럽게 닦은 후 탈탈 털고 물이 들어갔으면 뒤로 뒤집어 놓는다. 젖은 목장갑은 빨래통에 넣고 다른 색깔 장갑을 하나 미리 꺼내놓는다. 

내 손까지 씻고 핸드크림을 바르면 설거지 끝!!!



ㅋㅋㅋㅋ 아, 쓰고 보니 장황하다. 여하튼 나는 이런 방식으로 설거지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묘하게 나에게 힘을 준다. 내가 만든 규칙이고 그렇게 한 습관인데 이대로 했을 뿐인데도 작은 성취가 느껴진다. 청소할 땐 잘 느끼지 못했던 '정리'의 기분을 설거지를 하면서는 확실하게 느낀다.  음식물과 때가 씻겨가는 촉감과 시각, 콸콸콸 소리까지 감각 기관을 전부 사용해서 그런 걸까. 


설거지는 사실 비우고 처음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물이 찰방찰방 너무 넘쳐서도 안되고 온도가 미칠 듯 뜨거워서도 안되고 너무 차가워서도 안 되는, 결국 내가 모든 걸 통제하고 진두지휘 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균형을 잡는 일. 균형을 잡으면서 기쁨을 느낄 일이 별로 없는 나에겐 그래서인지 이 시간이 왠지 평온하고 차분하게 느껴진다.



회복 탄력성이 사실 별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달리는 아침이 되기도, 정해진 시간에 쓰는 글이 되기도, 자기만을 위해 만드는 요리가 되기도 한다. 나에겐 그게 설거지일 뿐.

날마다 먹어야 하는 일상은 당연한데 그 당연한 일상 중에 나는 설거지 시간을 유독 좋아한다.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 공들였더니 나만의 규칙이 생기고 살짝 노하우가 생기고, (하하, 근데 우리 엄마랑 언니는 내가 설거지를 하면 너무 오래 걸려서 답답해서 그릇 사우나 하러 갔냐고 묻는다) 그냥 작은 즐거움이 생긴다. 음식물을 정리하고 남은 음식까지 치워진 개수대를 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어서 막판엔 꼭 웃게 된다. 음식물 쓰레기 탈탈까지 해줘야 설거지의 완성! 막 쌓여있는 그릇들, 컵들을 보는 게 두근두근 설렌다면 믿어지실까. 


살림도 잘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중에도 설거지만은 왜 이렇게 나에게 예외가 됐을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 말이 한참 유행했을 때도 나는 설거지, 너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설거지에 대한 논문이라도 쓰고 싶을 정도로 엄마가 후다닥 요리를 해준다고 우리 집 싱크대 여기저기에 오징어를 싼 까만 비닐봉지를 그냥 설거지통에 넣었을 땐 비명을 지를 정도로 그게 집착이 돼서 오히려 문제인 적은 있어도 설거지가 나의 소확행임은 확실했다. 






쉘 실버스타인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시집 / 초등학교 때 부터 나는 이 시집 세트를 좋아했다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잘 알려진 쉘 실버스타인의 시집이다. 어렸을 때 저 책과 《다락방에 불빛을 》두권 연작으로 나온 시집을 선물 받았는데 너무 재밌어서 내용을 달달 외울 정도로 빠졌다. 자기 밑동까지 소년에게 내어준 바보 같은 나무 이야기보다 여기 나온 사람들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표지 뒤에 크게 그려진 작가의 얼굴은 두 번째 충격을 안겨줬는데 나는 그가 흑인이란 걸 알고도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수염이 덥수룩한, 알고 보니 그림도 멋지게 그려내는 힙쟁이었던 작가, 쉘 실버스타인. 별거 아닌 시시콜콜한 내용들을 재치 있게 써 내려간 작가의 입담도 좋았지만 사실 거기에 리얼하게 담긴 그림과 어린아이들 입장에서 쓴, 아이들을 대변하는 듯한 마음들이 나온 구절이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영문으로 읽지 않았다. 중학교 일 학년 때 영어를 배워서 아마 있다고 해도 못 읽었을 거다. 그땐 당연히 한글로 읽었는데 어렸을 때 읽었던 이 책이 동네 헌책방(우*희*헌)에 우연히 있길래 바로 샀다. 영어, 이제 읽을 수 있으니까! ㅎㅎㅎ



자자, 여기에 나온 사라 신시아 실비아 스타우트란 여자애가 나오는데 여기 나오는 이 여자 아이는 다른 건 다 하는데 쓰레기만은 치우지 않는다. 여기 대부분 치우지 않는 쓰레기가 바로 음식물이기에 나는 이게 음식물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이 음식물들 찌꺼기가 하늘에 닿아서 이웃들도 전부 떠나고 아무도 그녀의 집에 놀러 오지도 않고 드디어 치워야겠다고 사라가 결심한 순간! 그녀의 음식물 찌꺼기들로 이뤄진 산이  뉴욕에서 골든 게이트까지 달했다는 끔찍한 이야기.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시가 나의 설거지 습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다시 책을 읽으면서, 음식물을 제때 치우는 거, 설거지를 뽀드득소리가 나게 해 놓고 정리하는 거, 거기엔 사라 신시아처럼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있었다. 아마 이 시가 설거지 할 때마다 생각나서 자꾸 웃음이 나나보다. 



나의 회복 탄력성은 설거지처럼 작은 기쁨, 그 구멍을 들여다보면 내가 공들인 시간이 보이고, 좀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보면 언제나 책과 이야기가 있다. 












소박한 음식이지만 그 뒤엔 풍성한 설거지 타임이 있다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접시를 닦을 생각에 두근두근, 마음이 설렌다.

작가의 이전글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