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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Sep 12. 2024

손톱을 깎아 줄 때마다
귀를 파줄 때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오랜만에 영주 외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 오른쪽 엄지손톱 아래 커다란 생채기가 생겼다


대일 밴드도 부치지 않고 약도 안 바른 채 

투박하고 빨갛게 대충 그어진 빗금처럼 생긴 상처 


놀라서 물으니 별 일 아니란 듯이 

앞이 잘 안 보이고 몸이 떨려서 손톱을 옳게 못 깎아 그런 거라고


그냥 별 일 아니라고


밴드는 

소용없다고 했다

필요 없는 게 아니라 소용없다는 건 또 무슨 말일까 생각했다


선율이가 잠들 때마다 손톱을 

깎아줬다 


따각따각 


경쾌한 소리가 났다


튀어 오르는 손톱이 내 얼굴로 부딪히기도 했다


위생적인 이유가 아니라

누군가 다른 아이랑 서로 다툼이 났을 때

다른 아이 얼굴에 선율이 손톱 생채기가 나지 말라고


다른 아이가 상처 입을까 걱정을 사서해야 하는 내 마음은

조금씩 늘 

조금씩 울컥거렸다


따각따각 탁탁


내 아이 얼굴에도 손톱자국이 생기지 않기를

날카로운 끝을 

둥그렇게 다듬었다


모난 부분 없이

둥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주길 바랐다


여러 번 부러진 발톱 끝도 다듬었다.

발톱은 손톱보다 늘 더디게 자랐지만

아이는 유난히 발톱이 자주 빠졌다


덜렁덜렁 거리는 발톱을 다시 풀로 꽉 부쳐주고 싶을 만큼

위태로운 엄지발톱


손보다 발을 많이 써서 자주 뛰고 넘어지고 

몇 번씩 빠진 발톱은 손톱보다 더디게 자라났다 


새살이 돋듯 새 껍질이 자리를 잡았지만

그때마다 폭이 좁고 모양이 제각각 

울퉁불퉁해 보였다


그럼에도 아이는

그 발톱으로 공을 차고 또 열심히 뛰었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땐 필름 코팅지보다

얇은 손톱을 잘못 깎아서

여러 번 핏물이 배어 나왔다


투명한 아가 손과 손톱깎이를 동시에 꾹 눌러서 

살점이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내 손을 때리고 어쩔 줄 몰라

아이한테 미안해서 훌쩍훌쩍 울었다


아이는 핏물이 배어 나왔는데도 

쿨쿨 잘도 잤다


작은 가위로 손톱을 깎을 때마다 손이 떨렸다

친한 동생 연주에게 아기 손톱 좀 깎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섬세한 일 


무섭지만 

도망갈 수 없는 일


이젠 제법 단단해지고 

깎으면 또각또각 소리도 나는 

아이의 손톱


종이 자르는 소리도 안 나더니 

단단해진 손톱에선 

제법 경쾌한 소리가 났다


따각따각

툭툭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손톱들


선재가 유치원에서 손톱이 조금만 길면 

선생님이 깎으라고 했다고 말해줬다

 

유년 시절 나도 손톱 검사를 했다


별 것도 아닌 그 검사가 너무  싫었다


저마다 말린 오징어처럼 손톱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척척 올려놓고

지나가다 거슬리는 손에서 선생님 발걸음도 티 나게 멈추곤 했다


더러워 더러워!

짝짝! 자로 소리 나게 손등을 때렸다


가난하고 공부 못하는 애들

손톱이 더럽고 때가 낀 애들


선생님은 손톱이 길다고 느낀 

내 자리는 늘 지나쳤다


나도 모르게 새까맣게 된 손톱 밑을 보면 

부끄러워서 손톱 밑을 오므렸다


언제부턴가 손톱을 바짝 깎게 됐다


생손 앓이를 할 만큼 피가 살짝씩 비칠 만큼 바짝 깎은 손톱에선 밤새 열이 났다

타는듯한 통증이 생겼지만 

선생님의 자가 손등에 떨어질 일은 없었다


엄마의 부재, 누군가 돌 볼 사람이 제대로 있는지 없는지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마치 그걸 감시하는 시간 같았다

나는 엄마가 있었음에도 살갑게 손톱을 깎아준 기억이 별로 없다

몇 살 때부터 스스로 손톱을 깎았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엄마는 귀지는 생각날 적마다 자주 파주곤 했지만

손톱은 어렸을 때부터 혼자 깎아서 

늘 생손 앓이를 했다


바짝 깎은 손톱들이 삐뚤빼뚤

성을 내고 피를 흘렸다


다시 우리 할머니 손톱으로 돌아와서 


내가 할머니 무릎 옆에 쪼그리고 앉아 손톱을 깎아 드리고 싶었다

잘 보이지 않는 할머니 눈을 대신해, 떨리는 손을 대신해 

작은 내 손으로 쓸모 없어진 길어진 손톱을 깎아주고 싶었다

손톱이 길 때쯤 또 할머니 옆에 찾아와서 발톱도 깎아 드리고 싶었다 


할머니랑 별 거 아니어도 

된장찌개 하나 놓고 밥을 먹고

계란찜을 푹 떠서 입에 넣고

할머니가 시간마다 챙겨보는

일일 드라마를 같이 보고


그렇게 별 거 아닌 뻔하고 조용한 일상을

함께 하고 싶었다


할머니의 시간은 너무 빠르게 가고 

우리의 일상은 

나의 삶은 

언제나 새로운 것에 잠시 눈이 반짝하다가 

쉬는 것에만 몰두한다


함께 일상을 나누고 좀 더 자주 할머니 손톱을 들여다 봐주는 거, 

효도는 그냥 옆에서 따각 따각 손톱을 깎아주는 그런 거 아닐까

생각했다




예전에 다친 할머니 손톱 밑의 상처를 보다가 메모장에 길게 적어놓은 글.
시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나는 시라고 생각하며 썼다. (그럼 시가 되는 건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나는 한 때 시인이 되고 싶어 한 적도 있다)
몇 년이 지난 오늘에야 다듬어서 정리를 해봤다.
손톱을 떠올린 이유는 오늘 낮에 만난 80언니의 시댁 이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살아도 발톱과 손톱이 깨지고 멍들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무심히 지나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은 내가 아이들 손 ·발톱을 봐주고 깎아주지만 점점 크고 자라면서 나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을 날도 분명 올 것이다. 






 





내가 선물해준 몸빼 잠옷을 좋아한 예나/ 우리 예나 손톱 깍아 주기(깍은 후)





우리 예나 손

예나야, 손톱 깎자, 하면 양손을 착 하고 내 앞으로 얌전히 내밀었던 예나.


손이 길쭉길쭉 예쁘게 생겼다. 윤기 좔좔 매끈한 손톱은 반듯반듯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손톱 끝까지 영양이 제대로 가지 않으면 손톱 끝이 푸석푸석하고 갈라지기 마련인데 건조하고 거친 피부와 달리 작고 빛나는 손과 손톱은 아기 같단 생각을 했다. 여섯 살인 우리 선율이 보다 더 말을 잘 듣는 우리 예나. 아기같이 손을 내밀었다. 척하니, 나에게 자기 손을 바로 맡겼다. 


선율이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손톱을 깎다가 피를 자주 내서인지 손톱 깎는 그 기분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손 끝이 손톱깎이 날에 닿을 때마다 움찔 거리며 소름 돋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꼭 잠잘 때만 손톱을 깎았는데 요즘엔 티브이에 빠져 있거나 영상을 틀어주고 어딘가 집중했을 때 따각따각 열심히 깎는다. 신랑은 자기 손이 워낙 크고 두꺼우니 아기 손톱은 나보고 깎아 달라고 했다. 누군가의 손톱을 깎아주고 귀를 파주고 더러움을 씻겨주는 작은 행동, 별 거 아닌 거 같은 그 일이 가끔은 숭고한 일처럼 느껴지는 건 아이와 가장 가깝게 밀착돼서 해 줄 수 있는 일이기에, 가까이 들여다본다면, 지나치고 놓치기 쉬운 작고 별 거 아닌 부분이기에, 남이 들여다보지 못한 걸(사실 자기 귓속 안은 촬영용 내시경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비인후과나 소아과에서 귀를 관찰할 때 들여다보는 그 초미세 내시경 말이다) 내가 들여다보고 다듬어 주고 청소해 줄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다.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늘 볕이 따땃하게 드는 베란다 자리에서 자기 무릎에 누워있으라고 하고 내 귀를 파주셨다. 내 귀지에 감탄하기도 하고 오히려 하나씩 둘 씩 꺼내고 발견할 때마다 엄마가 즐거운 듯 보였다. 내가 막상 엄마가 돼 보니 아들들 귀 파주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귓속에 백 점 짜리 시험지를 발견하고 보물을 캔 양 집게로 조심스럽게 건져 올릴 때마다 내 기분이 더 좋다. 나도 엄마의 신난 기분에 보이지 않아도 늘 뭔가 깨끗하게 청소된 기분이 들곤 했다. 


아이가 자라서 스스로 손톱을 깎고 귀 후비개로 귓 속도 청소 한다는 건 조금씩 어른이 돼 간다는 신호가 아닐까. 예니는 예나보다 3살이나 더 어렸지만 손톱이 조금만 자라도 스스로 야무지게 잘 깎았다. 우리 집에 있는 커다란 손톱깎이를 좀 써도 되냐고 나에게 물은 뒤에 스스로 깎고 뒷정리까지 말끔하게 했다. 


늙는다는 건 다시 아이가 되는 과정이라더니 할머니도 손톱을 못 깎고 달달 거리는 손으로 상처를 내시는 걸 보니, 손톱깎이가 아니라 사실은 손톱을 깎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손톱이 빨리 자라면 바쁘게 살았다는 증거고 
발톱이 빨리 자라면 슬픈 사람이라는 증거다 




어렸을 때 무슨 드라마에선가 이런 말이 나왔는데(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린지도 모르면서 왠지 좋았다. 발톱은 손톱과 달리 놓치기 쉽고 양말로 늘 꽁꽁 싸여있지만 손톱은 보이고 사용하기에 우리는 발톱보다 손톱을 좀 더 자주 깎고 가꾼다. 발톱은 웬만하면 남이 잘 보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기에 너 발톱 길었다, 말해줄 사람도 없고 그래서 발톱이 삐죽하니 혼자 길어버린 그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논리적 상관관계는 잘 모르겠다) 나는 네일아트보다 패디큐어로 발톱을 한껏 꾸민 사람들을 좀 더 유심히 관찰한다. 신발에 감춰져서 보이지 않는 발톱까지 가꾸는 그 마음은 자기의 기분 전환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때가 더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화려한 손톱은 워낙 많이 봤지만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하고 깔끔한 발톱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실제로 손을 많이 쓰는 직업을 가진 피아니스트나 속기사들은 혈류랑 증가로 인해 손톱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빨리 자란다고 한다. 프로게이머,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들의 손톱은 또 얼마나 빨리 자랄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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