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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나우 Sep 25. 2024

동생이 생겼을 때

이제 여기가 엄마 집인 거지?


선재야, 선율이가 생겼을 때 엄마는 수술을 예약해서 병원에 가야 했어. 따로 배에서 신호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너도 긴급 수술로 낳았기 때문에 선율이도 수술해서 낳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 


▷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11시 11분! 맞았어! 가지런히 놓인 젓가락처럼 보이는 숫자 1 네 개가 엄마는 볼 때마다,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 

우연히 시계를 들여다봤을 때, 그렇게 찍힌 숫자 네 개를 가장 좋아해. 지금은 그 숫자가 우리 네 식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좋아.


11월 11일에, 11시 11분 11초에 아이를 낳으려고 했어.(신기하지? 태어나는 아이의 몇 시 몇 분, 초까지 미리 결정할 수 있다는 게 말이야.


병원에 들어가기까지도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바로 너였어.


겁 많은 엄마가 주삿바늘 하나 제대로 못 쳐다보다는 쫄보인데 앞으로 수술하고 아플 거는 하나도 걱정이 안 되더라고. 그런데 단 하나, 네가 내 마음에 걸려서 짐을 싸면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2014년 네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 엄마는 너랑 한 번도 떨어져서 잠을 잔 적이 없더라고. 아빠가 늘 보름씩 출장을 가야 할 때도 우리는 거실 불이나 화장실, 혹은 현관 쪽 불을 켜놓고 스탠드 불을 켜놓고 둘이 꼭 껴안고 잠을 자곤 했는데. 깜깜한 걸 싫어하는 엄마 탓에 너도 어두운 방안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너랑 둘이서 자면 무서움이 또 사라지는 것 같아서 좋았어. 엄마가 아기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아기인데도 네가 있어서 든든하고 엄마가 좀 더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엄마 좀 이상하지? 


코로나라는 게 조금씩 뉴스에 나오고 확대될 조짐을 보일 때라 병실은 물론이고 출산 후 입원하고 요양하는 조리원에도 출입이 까다로워져서 아빠는 출입할 수 있었지만 선재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대기실에서만 만나야 한다고 했을 때 며칠 얼굴도 못 보겠단 생각에 불안하고 우울해지더라고. 엄마랑 떨어져서 하루를, 일주일을 우리 선재가 어떻게 기다릴까 하고 말이야. 사실 떨어질 준비가 안 됐던 건 선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때의 엄마였어. 엄마마음도 온통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무서웠던 것 같아. 다시 만나서 더 좋은 시간을 채워갈 수 있는데 왜 잠시잠깐의 시간이 그토록 싫었을까.


새로운 아가를 만난다는 기쁨도 물론 컸지만 출산 이후부터 병실에 누워있는 내내 네가 생각났어. 엄마를 찾고 울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독한 감기에 걸려서 살이 더 빠졌다고 했을 땐 옆에서 뜨거운 이마에 손 한 번 얹어줄 수 없다는 게 이토록 갑갑하고 슬픈 일이구나 깨달았지. 선재 생각을 하다가 울면서 잠이 들기도 했어. 동생이 태어나고 우리 집에 또 다른 가족이 생긴 건데 엄마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난 단단한 사람이 아니더라고. 무른 사람, 물렁물렁, 눈물이 먼저 채워진 엄마. 나약하고 눈물이 터지고 그게 엄마인걸 어떡해. 수술한 배도 아프고(첫째 날엔 수술 후 통증으로 30분도 통잠을 못 잤어) 마음은 더 아팠던 것 같아. 매일 보던 네가 이렇게 그립고 애타는 존재가 되기도 하는구나, 그때 깨달았지. 


더 많이 사랑한다고 해줄걸, 안아주고 엄마가 네 편이라고 해줄걸, 못해준 게 떠올라서 미안하고 그동안 크게 혼냈던 거, 별거 아닌 일에 막 화도 내고 야단쳤던 거, 임식 막달쯤엔 나도 모르게 피곤해서 뻗어 잠드느라 네가 배고프다고 나를 막 흔들어 깨우던, 밥때를 놓쳐서 차려줬던 게(딱 한 번 있었지만) 그런 게 자꾸 떠오르더라고.


영상 통화를 하는데도 핸드폰을 자꾸 몇 번이고 쓰다듬었던 것 같아.


세상에 참 강한 엄마들이 많은데 말이야. 울고 싶어도 울음을 꾹 참고 눈물을 꾹 삼키는 엄마도, 아무리 슬퍼도 자식이 슬퍼할까 봐 또 웃어주는 엄마도 있거든. 그런데 나는, 엄마는 그런 엄마가 아니야. 뭔가를 참기에도 마음도 약하고 감정이 앞설 때가 많아.


또 눈물부터가 터지는 사람이야. 엄마는 말도 많지만 말이 터지기도 전에 눈물로 목까지 가득 차서 말이 안 나오는 때도 몇 번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네가 엉엉 울 때 울지 말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한 건지도 몰라. 그 말을 듣는다고 눈물이 그쳐지는 게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거든. 








드디어 너를 만나기로 한 날, 네가 감기가 좀 낫자마자 대기실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거 기억나? 병원에 옥상 정원도 있어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필 그날 비가 막 쏟아져서 어찌나 아쉬웠는지 몰라. 소풍 가는 기분으로 잔디를 밟으면서 너랑 만나고 싶었거든. 엄마가 멀리 갈 수 없지만 우리 선재가 좋아하는 자연, 놀이터 기분이라도 내주고 싶어서 말이야. 더 야위고 창백해진 얼굴의 비쩍 마른 네가 나타나자마자 온 세상을 선물로 받은 것처럼 기쁘고 또 짠했어. 살이 생각보다 많이 빠졌는데 너도 5살 때였으니까 전부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구나 생각이 들었어. 밤마다 엄마를 찾아서 두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외할머니인걸 알고 화들짝 놀라서 울었단 이야기에 엄마는 수술하고 이틀째부터는 아빠한테 병원으로 오지 말고 네 옆에 있어주라고 했어. 그냥 혼자 아파도 병원에서 간호사선생님을 부르면 되겠다고 생각했어. 네가 잠자리까지 불안하고 힘들까 봐, 그게 제일 불안했던 것 같아. 좋아하는 장난감을 잔뜩 한 보따리 싸왔지만 너는 전혀 신나 보이지 않았어. 오랜만에 보는, 처음 떨어졌다 보는 엄마 얼굴을 어색하게 쳐다보기도 했고 환자복을 입은 나를 몇 번이고 위아래로 쳐다봤지. 엄마가 지금도 아픈지 괜찮은지 확인하는 것 같았어. 예전처럼 재밌게 놀아주려 해도 대기실이 너무 추워서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고 물고기 잡기나 맥포먼스를 해도 예전처럼 신이 나질 않더라고. 동생이 태어났으니 선율이를 보여준다고 같이 갔을 때도 너는 동생이 아니라 계속 엄마 얼굴만 쳐다보는 거야. 그게 또 미안하고 측은하고 안쓰럽고 그랬어. 동생이 세상에 오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고 같이 동화책을 읽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또 다른 생명이 하나 들어온다는 건 상상도 못 할 큰 일이구나. 네 시선이 온통 나라는 걸 아니까 엄마의 마음이 더 무거워지면서도 이토록 부족한 엄마를 사랑해 주고 좋아해 주는 네 마음이 뭉클했어. 모성본능이란 말이 있잖아. 누가 엄마의 사랑이 더 크다고 해? 엄마는 너랑 선율이를 키우면서 느껴, 날마다 느껴. 내가 또 이런 사랑을 누구에게 받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는 자식의 사랑과 마음이 부모의 생각보다 더 큰 거구나, 아이들의 우주라고 부르는 엄마가 왜 우주인지 알겠다. 조금은 알겠다 했지.


병원 측에서 원래는 안되지만 아이랑 하룻밤을 자도 된다고 해줬을 땐 오늘밤엔 꼭 끌어안고 이 침대에서 선재랑 같이 놀다가 자야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래서 우리 추운 데서 놀지 말고 여기 엄마 있는 병실에서 우리 식구끼리 오늘 다 같이 자자고 했을 때 네가 쭈뼛쭈뼛 안 들어오는 게 너무 이상한 거야. 예전의 너 같으면 신발을 한껏 벗어던지고 방에 막 뛰어 들어왔을 텐데! 





병원 대기실과 비오는 옥상 그리고 네가 엄마집이라고 착각한 곳






나 : 선재야, 얼른 들어와, 엄마는 여기 이 방에 있었어. 
선재 : … 
나 : 여기 영상통화 할 때마다 봤지? 여기가 엄마 방이야. 그래도 수술하고 회복을 잘해서 여기서 앉아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우리 선재 생각을 제일 많이 했어. 
선재 : 엄마, 여기가 그럼 엄마 집이에요? 
나 : …? 집?  
선재 : 이제 엄마는 여기서 그럼, 동생이랑 둘이 사는 거예요? 여기가 엄마 집이라며? 맞아, 내가 살 데는 없네. 너무 작아. 내가 그럼 여기로 엄마 보러 와야겠다. 맨날맨날.




아아. 방 안에 소파도 냉장고도, TV까지 있으니 또 다른 집처럼 보였구나, 그런데 산다니?


어린 마음에도 엄마를 동생에게 보낼 준비를 하고 여기에 왔구나, 그래서 그렇게 밤새 끙끙 앓고 아팠던 거구나. 그제야 네 마음을 눈치채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엄마가 계속 계속 기다려도 오질 않으니까 직접 보러 왔는데 갑자기 태어난 아가랑 둘이 여기서 지냈다고 하니 여기가 앞으로 엄마와 동생의 또 다른 집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당연한 절차인 퇴원과 돌아간다는 이야기는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아이 혼자서 나름의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을 하니 여린 네 마음이 애처롭기도 하고 미안해졌어. 


하루종일 사랑하는 엄마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엄마 방을 구경하는 슬픔도 참으면서 자기 공간은 없지만 그래도 나를 보기 위해 매일 와준다는 소리에 얼마나 마음이 찌르르 울리더라고.

거기에서 주저앉아서 너를 안은채 엉엉 울었어. 엄마는 창피한 것도 모르고 누가 어른인지 아이인지도 모르게 울었던 것 같아.




선재야, 엄마가 가긴 어딜 가. 여기서 살 수 없어. 여긴 우리 집이 아니야. 엄마는 어딜 가도 상관없는데 엄마가 생각하는 우리 집에는 늘 우리 가족이 있어. 아빠랑 선재랑 엄마, 또 선율이가 함께 하는 거기가 바로 우리 집이야. 퇴원하면 다시 우리 선재랑 엄마 침대가 있는 우리 집에 가야지. 선율이는 아기 침대에서 재우면 돼. 알았지?






동생이 태어난 덕분에 '형아'가 된 우리 선재






엄마, 엄마 눈에 선재 있고

선재 눈 속에 엄마가 있어?


엄마 눈에 선재가 들어가 있어

한 번 만져 봐도 돼?



네 살 무렵, 내 무릎에 누워있는 널 가만히 안고 들여다봤을 때 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 말을 듣는데 나는 놀랍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내 눈동자 속까지 궁금해한단 말인가? 

아이의 모든 말, 행동 하나가 귀한 보물처럼 느껴졌다. 귀하게 잘 대해줘야겠다 다짐했다. 






▶ 반전 ◀

4학년이 된 아이는

졸리니까 말 좀 고만하고 얼른 말 시키지 마세요. (얼른 나가라는 소리) 그래도 사랑해요. 좋은 꿈 꾸세요.


뒤에 사랑해요! 는 꼭 붙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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