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산사)에서-두고 온 마음

by 한천군작가

1.
산이 희어지나
머리가 희어지지
마음은 늙지 않으니
산이로구나

2.
닭 우는 소리에만 새벽이 오는가
졸고 있음에도 오는 것을
산사는 알고 있구나

3.
나를 알아보고
나를 느낄 수 있다면
일 만천 금을 다 가진 것이요
모든 것이 빈 종이인데
어찌 새벽만 바라나

4.
천 가지 생각이야 어려운가
만 가지 헤아림이 어려운지
하늘에 붉은 화로 던져두고
이다지 더운가 하니
대지는 허공만 바라볼 뿐
허허로움만 쌓여가는구나

5.
어이 가는 구름 막을고
어이 찢긴 하늘을 막을고

6.
잔음으로 퍼지는 바람 도는 소리
가슴으로 안고 서 있는 늙은 소나무
기댈 수 있는 등이 있으니
나무는 변함이 없는 마음이구나

7.
긴 호흡 가다듬고
긴 노래 부르니
푸른 안개가 고요하네라
푸른 물은 비워둔 마음 일레나



비울 수 있다는 것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지만 그때마다 포화상태가 되어서야 쓰겠는가.

가끔 예전 물건들을 꺼내보며 이건 버려야지 저것도 버려야지 하지만 다시 이런저런 이유로

박스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구석진 곳에 다시 놓아두게 되는 것처럼 참 버린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가지지 않는다면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살며 가지지 않을 수 없음이 정법이니 이제 버리는 법을 배울 차례가 아닌가.

버릴 때에는 다음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다음에, 이건 봄에 한번 더라는 마음을 먼저 버려야만 버릴 수 있다.

마음을 비우는 것 역시 이와 같지 않을까.

혹시라는 것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추억과 아픔과 지난 행복들을 안고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그 혹시를 버릴 때 나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내 마음에 담겨 있는 혹시를 오늘은 살며시 꺼내서 냉동실에라도 넣어두었으면...

매거진의 이전글사랑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