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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제국

by 한천군작가

흘러가는 필묵의 향기로

잠들지 않는 그 향기로

별을 노래하고

바람을 노래하고

꽃을 노래한다


넘겨지는 종이 사이로

남겨지는 마음의 언어로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고

사랑을 한다


잊히는 시간

그리움이 잉태하는

형체 잃은 몽롱함으로

묵향을 뿌리듯

잠들지 않는 제국


수많은 불면의 밤들은 내게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 그렇게도 끈질기게 나를 잡으려 한 것일까?

때로는 펜이 아닌 붓으로 밤을 벗 삼아 대화를 나누었고, 그 향기에 취해 마치 소주 서너 병을 마신 듯 취기가 오를 때도 있었으니 글이란 놈은 참 개구진 녀석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도 나에게 장난을 걸 수가 있단 말인가. 하긴 그놈도 오죽 놀러 갈 곳이 없어 내 앞에 떡 하고 앉아서 이런 상황에서는 이 단어가 어떨까? 아냐 그건 너무 촌스러워하며 나를 채찍질하는, 그러면서 내 뒤에 숨어서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먹어 치우는 글이란 놈 참 개구지다.


글 쓰기가 마치 고통스러움을 불태우는 것처럼 말하는 건
글 쓰기를 신격화하는 거예요.
그런 시대는 지났죠.
이제는 아무도 안 속아요.
힘든데 왜 글을 씁니까?
다른 일을 하지.
좋고 행복하니까 쓰는 거예요.

김정운 교수의 강의 중


그랬다.

내가 이 놈과 밤을 새워가며 대화를 나누고 또 재미나게 놀 수 있는 것은 행복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놈이 내게 오지 않았다면 난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이 가질 않는다. 물론 가리지 않고 읽는 독서습관으로 그 시간을 메워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읽기만 하면 내 갈증은 누가 해갈해 줄까?

요즘은 독서량을 조금 줄였다. 책을 쌓아둘 공간이 부족하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내게 양서란 모든 책들이 양서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모파상의 글들 만이 양서가 아니요 글 쓴이들의 마을까지 들여다보는 눈이 생긴다면 모든 책은 양서가 아닐까 하는 맘에 나는 닥치는 대로 읽는다. 그러다 보니 돈도 만만찮게 들어간다. 물론 쌓이는 포인트로 간혹 공짜 같은 느낌으로 책을 사기도 하지만...

하여튼 난 이 글이란 개구쟁이와 오늘 밤도 즐거운 대화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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