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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Apr 30. 2016

그리운 꽃의 書 - 17-눈 감은 등나무 꽃

    

 바람에 목을 매는

 등나무 꽃이여

 손을 잡았으면

 흔들리기만 할 것을    

 

 바람에 댕기 꼬는

 작은 플라타너스 잎이여

 바람에 눈물 흘리나

 흔들리는 마음인가    

 

 접을 수 있는

 구름 한 조각을 가졌는가

 보낼 수 있는

 사연 한 줄을 가졌는가    

 

 바람으로

 바람을 쓰며

 바람으로

 바람을 묶어

 바람에게 보내는

 늘어진 어깨

 등나무가

 바람 앞에 눈을 감았다


계절을 참 신비롭다. 어떻게 그때가 되면 꽃이 피고 따뜻한 햇살이 대지를 품어 안는지 새삼 신비하기만 하다.

전남 녹동을 다녀오며 만난 이 꽃은 마치 아카시아를 시샘이라도 하 듯 아래로 허리를 숙이려 하였고 내게 등나무 꽃은 그리움이었구나 한다.

이제는 너무 아련해서 그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아니 그래서 더욱 그리운 시절이 아닐까.

등나무 꽃이 올해는 일찍 피었나 보다. 따뜻한 남쪽이라서 그럴까?

이맘때면 아카시아가 주렁주렁 열려야 하는데 말이다.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등나무 그늘에 누어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저 연인에게도
분명, 우리가 다 알지 못할
눈물겨운 기다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겨울꽃보다 더 아름답고
사람 안에 또 한 사람을 잉태할 수 있게
함이 그것이 사람의 인연이라고

인연이라는 것에 대하여 중에서.

어쩌면 긴 기다림이 있었기에 오늘이 존재하고 또 오늘이 있어야만 추억이란 것이 존재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오늘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일까? "현제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야"라고 말하는 내게 돌아오는 것은 이기적이란 말이 먼저였다. 왜 그 감정에 충실한 것이 이기적일까? 나에게 오늘은 정말 소중하기에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데...

한 때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암전과도 같은 시기에 내가 결심한 것이 오늘을 알차게 살 자였다. 그 오늘이 모여서 어제라는 추억이 되기에 나는 오늘도 현제에 충실하며 어제를 만들고 있다.


꽃이 가지는 의미는 참 많다.

그 많은 의미를 모두 알고 살기도 힘들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가 저마다 다르 듯이 꽃들도 그렇다.

철마다 다른 꽃이 피어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그 꽃이 가진 참 뜻을 하나씩 알아 갈 때에 나는 비로소 계절이 주는 선물로 더욱 행복하다.

"실록이 푸르른 날도..." 노래 가사 중 참 맘에 드는 가사다. 딱 여기까지만...

또 얼마나 예쁜 꽃들이 피어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이번 쉬는 날엔 또 어딜 가서 꽃들을 만날지 벌써 행복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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