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름 저녁
초라한 누각엔
구름이 그치고
달빛 먹은 옷깃
이슬꽃 잡는데
바람은
댓잎을 저며 밟고
곧은 줄기로
달 궁둥짝을 찌른다
2.
누각을 비켜 가는 그리움
대숲의 사스 락 거림으로
달빛이 부서지나
강물이 흐르다 멈추나
이제 피어날 국화 꽃잎을 기다리나
3.
비는 오는데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로
시골집 떠올리던 시절
그리워 그리워
여름 초승달을 베고 누워
하늘 끝에 선 나를 본다
달이 되어
바람이 참 곱다. 이렇게 고운 바람이 부는 것을 보니 이젠 또 하나의 계절이 다가오는 듯 그렇게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는 여름인 온 것인가 보다. 멀리 보이는 산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그 색이 참 많이도 짙어졌으니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된 것이다. 나이 많은 누각에 누워 곱디 고운 바람을 이불 삼아 살짝 덥고는 흐르는 강물을 보며 반짝이는 보석 같은 흐름에 가람슬기하라는 선인들의 잔잔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여 좋다.
바람을 만지작거리며 걷는 걸을 사이로 벌써 빙수를 먹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구나 한다. 하긴 빙수를 여름에만 먹는 거라는 건 이미 옛날 사람이란 뜻이겠지. 요즘은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는데 왜 아직도 여름 하면 그 시절 빙수가 생각이 나는 것일까? 학창 시절 구슬땀을 흘리며 먹었던 학교 앞 팥빙수는 지금 먹어봐도 별 맛이 없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맛난 음식이었는지... 지금처럼 곱게 갈려진 얼음도 아닌데-간간이 큰 얼음에 당황하기도 하며- 달랑 삶은 팥에 우유 조금 색소 조금이 전부였는데 그때의 빙수가 그리운 것은 나도 나이를 먹은 게 틀림없다.
가끔 진주에 들리는 날이면 꼭 진주성엘 다녀온다. 어릴 적 그대로 나는 촉석문에 들어서면서 고개 들어 천정을 보며 나도 모르게 빙글 돌며 웃는다. 마치 천정에 그려진 용들이 나 어릴 적과 똑 같이 나려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내려올 것 같아서 깜짝 놀라며 웃는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누각인 촉설루에 올라 남강의 흐름에 속도를 맞추는 바람을 잡고자 머리를 날리곤 한다. 내 고향 진주는 이렇게 멋스러운 고장이다. 혼자 걸어도 너무 좋은 진주성에는 여름에만 볼 수 있는 풍경들도 참 많은데 왜 나는 그동안 이것들을 노치고 살았을까? 성벽을 따라 걷는 작은 오솔길이 좋고 그 끝에 자리 잡은 서장대에서 바라보는 시내 풍경도 좋고, 다시 그 길 따라가면 만나는 북장대의 화려하지 않고 너무도 수수한 모습이 참 좋다. 그렇게 나무 그늘을 찾아가며 걷는 시간이 내게는 마치 어머니의 품 같이 포근하기만 하다.
더 더워지기 전에 내 고향 진주를 다시 찾아가 봐야겠다. 내 추억들도 함께 찾아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