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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4-시계 소리

by 한천군작가

1.
도마 위로 구르는 칼날의 아침
그 정확함에 깨는 하품의 시간
뭉기적거리는 이부자리의 아침은
어머니의 아침 이였습니다


2.
어제가 되어버린 오늘
그 위에 얹어놓은
부엌 한 켠의 뜸 들이는
또 다른 오늘이 있다
어머니께서 만드시는 오늘이


3.
켜켜이 저려지는 소금 먹은 배추
독아지 속을 채우는 양념
알뜰함의 세월이 눈물 나게 만들고
누구를 위한 아침 이였나
당신의 손으로 버무린 아침이...
당신의 평생을 똑딱거리지 않고도 깨우는 아침
이젠 그 아침에 또 다른 어머니가 계시다
내 아내가 어머니 되어...



가끔 사진 한 장 없는 것이 너무도 슬픈 날이 있다. 그 흔한 사진이 왜 내게는 없는 것일까?

내 유년의 시절에는 그저 그리움의 이름이었던 내 어머니, 하지만 할머니의 말 한 마디에 나는 고개를 떨구곤 했던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 아마 이 그리움은 평생의 그리움이 아닐까.

초등학교 다닐 적에 제일 부러웠던 것이 소풍날, 운동회 때 어머니와 함께 하는 친구들을 보면 참 많이도 부러웠다. 물론 운동회 때에는 세분의 고모들께서 어머니 역할을 하셨지만 그래도 부러운 건 부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면 반 아이들의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푸짐하게 도시락을 싸 주신 할머니의 도시락에 우쭐거리는 내 어깨를 발견했을 때 나는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느끼고 있었다. 형제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해 주셨던 분이라 더욱 그랬을 것이다.

지금 내가 그리워하는 어머니는 내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일 것이다.


냉수에도 기름이 뜬다는 어머니의 사랑
그 진하고 끈끈한 사랑을 받았던 내가
그 깊은 사랑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머니의 마음을 그리
서운하게 해드리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몰랐었던 그 말들이
이제 되돌아와 가시처럼
내가 던졌던 말들이 나를 찌르지요.

5월의 어머니 중에서.


이거 해야 하는데 라는 말이 떨어지면 우리 집은 시세 말로 번개를 했다. 가족회의가 열렸다는 이야기다. 그날의 주제는 내가 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였다. 물론 형식에 불과했지만 가족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뭐든 해 주셨던 나만의 도깨비방망이였던 할머니가 그립다. 그 사랑을 알게 나도 내 딸아이의 영원한 도깨비방망이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데로 가슴에 담아두면 되는 것인데 드라마를 영화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 적실 때가 간간히 있다. 물론 책을 보다가도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다. 뭐 슬픈 장면도 아닌데 그럴 때가 있다. 단어 하나에서 묻어나는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군대 간다고 말씀드렸을 때 병중에 계셨던 할머님은 오색천으로 만든 속 주머를 바지춤에서 꺼내어 꼬짓꼬짓 접어둔 오만원을 꺼내어 주시며 잘 다녀와 라고 하셨던 그때가 떠 오를 때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 돈을 꺼내 볼 때면 더욱 아리다. 주말에는 할머니 산소라도 다녀와야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꽃 두어 다발 사고 박하사탕 한봉에 환타 한병 사서는 예전 그때처럼 이야길 나누고 와야겠다.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듯이 그렇게 내 할머니를 만나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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