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전주 한옥마을과 진안 마이산 탑사

by 한천군작가
전라북도 전주시 전동 풍남문(豊南門) 밖에 지어진 성당으로 호남지역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

전주를 그렇게 많이 다녔지만 이번처럼 한가로이 움직인 적이 드물다.

매번 일 때문에 그냥 지나쳤던 곳들을 오늘은 천천히 걸으며 눈에 담았다. 내가 전주를 찾으면 늘 먹거리가 우선이었다. 어딜 가면 뭐가 맛나다는 말을 들으면 꼭 들리는 것이 이제는 내 여행의 우선순위가 되어버렸다. 오늘 내게 제일 먼저 모습을 보여준 것이 전동성당이다. 전동성당은 신유박해를 비롯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종 28년(1891) 프랑스 바디네(Baudenet) 신부가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성당 건립에 착수해 1914년에 완공했다. 이 성당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으며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에게 설계를 맡겨 23년 만에 완공한 것이다.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풍남 제과에서 수재 초코파이를 하나 사서 오물거리며 한옥마을로 걸어 들어간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복을 입은 사람이 유난히 많다는 것이다. 한복, 교복 대여라는 글귀를 보고야 아 했는데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한옥마을에서는 한복을 입고 출입을 할 때 할인을 해 주고 있었다. 사진도 찍고 할인도 받고 일석이조가 아닐까.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이번에는 아주 앙증맞은 Volkswagen T1이 반긴다. 1960년대 히피문화의 아이콘이던 녀석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곁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보인다.

한옥마을은 골목골목이 참 재미있다.

파란색으로 칠한 작은 밴치가 골목길을 막고 섰다. 그리고 홍시라고 빨간색이 이건 뭘 뜻할까 했는데 가게 이름이었다. 눈치 한번 보고는 살짝 앉았다가 다시 골목을 걸어 든다.

유독 꽃을 보면 그만 가던 길도 멈추는 것이 나다. 그런 내 앞에 산수유가 노랗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건너 목련을 게슴츠레 바라보고 있다. 이 둘도 한옥의 기와에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할 즈음 간간이 바람이 나를 살며시 잡는다. 봄에 오면 좋은 점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혼자라는 생각을 잊게 만드는 자연스러움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바람이 잡으면 옷깃을 내어주고 꽃이 반가면 미소 지어주고 그렇게 함께 걷는 것이 봄 여행이 아닐까.

전주 하면 그 유명한 피순대가 아닌가. 주린 배를 채우다 보니 조금은 퍽퍽한 느낌이다. 선지의 양이 좀 과한 듯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맛 평이다. 하지만 순대국밥 속의 피순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전주식 콩나물해장국도 좋은데 이미 배를 채운 후라서 다음을 기약한다.

전주에서 진안까지는 약 30분 거리이기에 나는 마이산까지 둘러보기로 하였다. 늘 내 여행은 이렇듯 즉흥적이다. 지인들은 계획도 없이 어떻게 여행을 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마치 재즈에서 즉흥연주가 빠지면 무슨 맛이 날까 라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나의 여행은 이렇게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이 나 역시 만족하는 이유가 아닐까.

충문히 차로 올라갈 수 있지만 오늘은 걷기로 하였다. 한옥마을에서도 많이 걸었는데 또 걸어 라고 할 수도 있지만 걸으며 보는 풍경과 차로 이동하며 보는 풍경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갑용 처사가 쌓은 80여 개의 돌탑으로 유명하다.

마이산 엘 가면 늘 탑사를 돌고 내려온다. 일자형과 원뿔형의 돌탑이 신기해서라기 보다는 그윽한 향이 좋아서다. 탑사에는 이상하게도 남다른 향이 난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추억도 하나 있어 더욱 그럴 것이다.

1800년대 후반 이갑용 처사가 혼자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갑용 처사는 낮에 돌을 모으고 밤에 탑을 쌓았다고 한다. 이 탑들은 이제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아무리 거센 강풍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뿐이다. 대웅전 뒤의 천지탑 한 쌍이 가장 큰데, 어른 키의 약 3배 정도 높이이다. 어떻게 이런 높은 탑을 쌓아 올렸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암벽을 타고 올라간 능소화가 너무도 신기하다. 마치 거꾸로 뿌리를 내리고 뻗어 나가는 듯 높이 뻗은 가지들이 뿌리처럼 보이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가지런한 단층의 색감이 참 좋다. 좁은 길을 가야 하지만 그래도 내 눈높이에 처마가 나를 보고 있으니 더욱 좋다. 바위를 살짝 밀어서 통로를 넓히고 싶다는 생각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며 합장을 하고 뒤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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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들 사이를 걸어 올라가면 그다지 숨이 찰 정도의 거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만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동안 많은 풍파가 있었는데 어떻게 이들은 건재할까 나는 궁금했다.

탑사 입구에 자리 잡은 동자상들이 유독 눈길을 끈다. 사진에는 없지만 호랑이 강아지상들도 많이 보였다. 나는 만약 전주 혹은 진안 쪽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 꼭 두 곳을 모두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봄에 가면 참 좋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이니까.

다시 걸어내려오는 길은 참 고즈넉하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의 짧은 여행을 마감하고 웃는다. 기분 좋은 봄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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