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별

여우별: 궂은 날 구름 사이로 잠깐 났다가 사라지는 별. 의 순우리말

by 한천군작가
여우별처럼 잠시 왔다가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차라리 흐린 날이어도 좋습니다.
하늘이니까요.
하지만 여우별처럼 금방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그렇게 잊힐까 가슴이 아픕니다.


아침 일찍 하릴없이 바쁘다. 병원이란 곳 정신없다. 달음박질하는 의사들과 대열을 맞추듯 뒤따르는 간호사들이 바쁘기만 하다. 또 누군가 사선을 넘나드는가 보다. 하며 그들의 뒤를 한 동안 바라보고 있다.

나의 아침은 참 단조롭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연주되는 음악처럼 높낮이가 없이 아주 단순하기만 하다. 굵은 주삿바늘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면 그때부터 일과가 시작된다. 아직은 기운 없어 휠체어를 타고 멀리 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천천히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누구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모두 별일 없는 거지 하며 혼잣말을 토하며 미소를 짓는 것이 내 하루의 시작이다.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건 틀림없이 러시아어야. 이노무시키 저노무시키가 들어가는 걸 보면"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창가의 침대를 사용하는 알렉산더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걸어가서는 무심코 던진 말이 코미디다.

"알렉산더 뭐가 문제야"라고 당당하게 내 모국어인 한국어로 말을 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킴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빙그레 웃는다. 순간 아 저 녀석도 못 알아 들었겠지 하며 나도 빙그레 웃고 말았다.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알렉산더도 빙그레 웃는다.

알렉산더는 간이 좋지 않아서 3분의 2나 잘라낸 러시안이다. 보기엔 나 보다 늙었는데 4살이나 어리단다. 참나. 그러니 이 녀석이 나에게 장난을 자주 걸어오는지도 모른다.

저 녀석이 아침부터 이노무시키를 연발한 이유가 단지 옷을 갈아입고 싶다는 것이었다니 어이가 없다.

잠시의 소란도 끝이 나고 모두 조용히 자기 할 일들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책을 보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지만 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재미가 있다. 간이 안 좋은 녀석에게 "어이 알렉산더 보드카"하며 마치 보드카를 마시고 있는 듯한 마임을 하면 인상을 쓰면서 웃는다. 난 이렇게 말도 통하지 않는 다른 세상의 이방인들과 너스레를 떨며 내 아픔을 잊고 지낸다.


우리 병실은 4인실이다. 창가를 점령한 러시안 알렉산더와 마주 보고 있는 중국계 이민자 씽, 그리고 내 맞은편 문 옆에 누워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아주 괴상한 캐나디안 브레이던(뒤에 킴이 알려준 그 녀석의 이름이다)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전형적인 캐나디안인 킴이 있다. 킴은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아주 자상한 간호사다.

내가 전형적인 캐나디안이라고 하였지만 직접 보면 엉덩이가 아주 큰 미국 영화에 자주 나오는 그런 아줌마다. 물론 나 보다 두 살이나 어리지만 함께 있으면 난 동생처럼 보이는 그런 인자한(웃음이 나온다) 간호사다.

나에게는 더욱 특별하리만치 잘 해준다는 것이 조금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가 아닐까.

나는 이곳에 오면서 그 누구에게도 내가 아파서 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어쩌면이라는 느낌 때문에 모든 인연의 끈을 자르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끔 멍하니 창밖을 바라만 보는 것이 일이기도 하다.

왜? 그냥 그리우니까. 모두가 그리우니까. 그래서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여우별처럼 사라질까 두려운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것인지 킴은 늘 마치 막냇동생 챙기듯 한다.

"걸을 수 있으면 자전거를 선물해 줄게. 오타와는 자전거로 구경하기에 아주 좋거든"

"정말?"

"그래 꼭 좋아져서 내가 자전거를 사 줄 수 있기를 바라"

킴이 나에게 작은 희망을 준 것이다.

킴 만큼은 여우별이 아닌 북극성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난 오늘도 열심히 치료를 받으며 자전거를 받을 날만을 기다린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난 조바심이 생긴다. 언제쯤이면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그때는 지금처럼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 있으면 안 되는데 하는 이상한 걱정까지 하며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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