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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May 19. 2016

그리운 꽃의 書 -24-흰 패랭이꽃

하얀 속살을 보여서

얼굴을 붉히는가

가녀린 목으로

바람과 손 맞춤하는 꽃


잡을까 하니

동산으로 달아나는 바람

놓을까 하니

모래밭으로 뛰어가버린 바람


솜털처럼 몽실 거리고

하얀 얼굴 연지 찍은

너는

하얀 패랭이 꽃



처음 사랑과의 손 맞춤은 입맞춤보다 짜릿하였다. 간질거리는 느낌에 잡을까 말까를 수 없이 고민하다 넘어질 뻔도 하고 살짝이라도 닿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그 느낌이 첫 손 맞춤이었다. 마치 저 꽃이 바람과 손 맞춤하듯이 수줌어 하는 모습이 처음 손을 잡을 때의 나처럼 그렇게 설레는 것일까? 

첫 만남 이후 함께 걸을 때 언제나 저 보드라운 손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앞을 보고 걷지 못하고 그 사람의 손만 보고 걸었던 그때의 나를 보는 듯하다.

우리는 그렇게 손 잡는 것이 설렘이었는데, 누가 볼까 두리번거리기도 했는데 요즘도 그럴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흰 패랭이꽃이 바람을 잡고 춤을 춘다.



내 부는 풀피리 소리만큼
하늘은 어깨 위에 내려와 앉고

제 혼자 피고 지는 패랭이꽃들에도
내 소년은 즐거웠다.

이기철 님의 철쭉꽃 따라 중에서

봄에는 유독 노란 꽃이 많다.

여름에는 유독 흰 꽃이 많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래서 흰꽃에 끌려서 걷는 것을 좋아한다.

몇 해 전에 내 소원은 꼭 산책을 해야지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만큼 절실했었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빨리 좋아져서 너 좋아하는 걷는 거 실컷 해야지"라고 말을 할 정도로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도 틈만 나면 걷는다. 쉬는 날 낚시를 가지 않을 때에는 가까운 산길을 걷는다. 그리고 적당히 그늘진 곳을 찾으면 바닥에 주저앉아 가지고 있던 책을 펼친다. 이게 내가 살아가는 재미다. 난 이 재미 속에 꽃이 있어 더욱 좋은가 보다.

그래서 그렇게 걷는데도 지치지도 질리지도 않은가 보다.

출근길에는 시장을 질러서 걸어 가지만 퇴근길에는 둘러서 집으로 간다. 뭐 별 다른 것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침과는 다른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서다. 그러다 꽃집 앞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멈춰서 버린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느리게 둘러서 걸어간다. 오늘 밤에도 나는 그렇게 또 다른 길로 둘러서 집으로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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