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비가 왔어요.
빗소리가 좋아?
비 냄새가 좋아?
난 둘 다.
오래된 처마를 두들기고
흘러내리는 그 냄새가 좋아.
혼자만 아니면 더 좋아.
그런 넌?
어딘지 기억 조차 없는 어떤 시골길에서 한 여름 지나가는 소낙비에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달려가 섰던 오래된 양철지붕 아래에서 들었던 빗소리는 정말 좋았다. 마치 그 유명한 비창의 피아노 선율보다 더 아름답다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람에 코끝을 찡하게 하는 그 비릿한 비 내음이 그 소리에 묻혀 존 바바토스의 향기를 닮은 듯했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통통 튕기는 빗소리가 좋아 발걸음에 그 소리가 달아날까 멈추곤 하기도 한다. 하긴 나만 그럴 것이다. 누가 바쁜 걸음에 그 소릴 듣자고 멈춰 설까!
맑은 빗방울 하나를
손 위에 올려놓고
투명한 물방울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당신의 웃음이 내게 다가섰습니다.
신경희 님의 봄비 중에서.
학창 시절에는 비 오는 날 우산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다. 잘 놓고 다니기 때문에 야단맞기 싫어서 안 가지고 다녔고, 누군가 달려와 우산을 받쳐주며 "어디까지 가?"라고 묻기를 바라서일까? 그 시절에는 그런 맘 한 번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 있을까. 하지만 늘 내 생각과는 어긋나게 추적추적 비 맞고 버스를 타고 비 맞으며 집으로 걸어왔던 기억이 많은데도 왜 매번 우산을 안 가지고 다녔을까? 지금은 가방에 늘 우산을 넣고 다닌다. 그날 이후로 생긴 버릇이라고 해 둬야겠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여름날에 비를 흠뻑 맞고서 걸어가는 여학생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우산을 줘 버렸다. "이거 쓰고 가.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라고 말하고는 우산을 줘 버리고 달려서 버스를 타고 가며 손 흔들어 주고, 감기로 며칠을 고생한 기억. 말 한마디 못 걸고 멀리서 보기만 했던 그 아이가 비를 맞고 가방이 무거운지 축 쳐진 어깨 위로 비가 내리고 왜 그 순간 그렇게 했을까? 그때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때 또다시 그런 상황이면 난 똑 같이 하고 말 거야 라고 말을 한다. 그 우산을 줘 버렸던 여학생이 나를 도깨비방망이라고 전화기에 저장해 놓은 딸의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