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천군작가 May 27. 2016

그리운 꽃의 書 -27-장미

피어나는 향기는

오월 햇살 한 줌으로

멱을 감고서

바람 한 겹으로

제 몸을 말리고

흙을 딛고 선 너는

붉은 입술로 교태롭구나.


붉은 꽃잎 한 장으로

애교스러운 향기 한 장으로

그렇게 겹겹이 조아린 너

사스 락 거리는 댓닢의 속삭임도,

담쟁이의 간절함에도 아랑곳 않는

다 털어버리는 너는

담장 잡고 선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었다.


장미는 향이 너무 강해서 곁에 둘 수 없는 뭔지 모를 그런 것이 있다. 창가에 두고 싶은데 그 향에 다른 꽃들이 기죽을 것 같아서 늘 마당에서만 보던 꽃. 미안한 마음이 더 많은 꽃이다. 장미를 많은 사람들이 강렬한 이미지로 묘사를 많이 한다. 그리고 그 가시에 대한 이야기도 참 많다. 하지만 장미에게는 그런 이미지보다 더 친근한 이미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에서 나는 아 장미의 이런 면을 볼 수 있구나 하였다. 

여기서는 평상시 보다 야채를 더 많이 심는단다. 장미꽃밭이 감자밭이 되었지

편지 속에 묘사된 당시의 모습들이 보이고, 왜?라는 물음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쟁은 꽃 보다는 배부름을 안겨주는 무형의 무지함에서 나는 그래 라고 동감을 하기도 하였다.

반질반질한 마호가니 테이블 위에 놓인 장미 꽃병.
진부하고 캐캐 묵은 구성이었다. 하지만 장미꽃은 음란해 보일 정도로 다채로운 색감으로 불타올랐으며 반질반질한 테이블은 생명이라도 얻은 듯 꿈틀댔다.

장미로 인해 주변이 살아 숨 쉬듯 변한다는 이 글귀가 나는 너무 좋았다.

책 속에서 묘사하는 모습이 눈 감으면 그대로 보이는 듯하니 얼마나 좋은가. 책을 덮었을 때 나는 한 송이 장미를 화병에 꽂아 두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기억에는 없지만 나이기에 장담을 한다. 퇴근길에 장미 한 송이 사다가 창가에 꽂아 둬야겠다. 정말 음란하게 보이는지...


처음 꽃을 선물했을 때 나는 장미를 선물했을 것이다. 상대가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는 안중에도 없이 가장 화려해 보이는 붉은 장미를 선물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면 그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안개꽃 한 다발을, 누군가에게는 노란 프리지어를 종이에 싸서, 또 누군가에게는 백합을 한 아름 안겨 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세상에 꽃이란 장미뿐이라고 느낄 정도로 장미는 꽃 선물의 0순위였다. 지금 생각하니 좋아는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녀린 이슬비가 내리던 어느 날 우산을 함께 쓰고 전날부터 분주하게 준비를 하였던 장미 한 다발을 가방에 구겨 넣고 언제가 타이밍일까를 고민하다 불쑥 꺼내어 준 것이 내 생에 첫 꽃 선물이다. 물론 한 살 많은 누나와의 추억일 뿐이지만...

지금의 나라면 잠깐만 하고 꽃집에서 그 계절에 피는 꽃을 골라 뛰어가 내밀 것이다. 

"이 꽃이 지금 피는 꽃인데 이쁘지? 꽃말이 하도 좋아서" 하며 선물하지 않을까. 행여 먹지도 못하고 며칠 가지도 못하는데 라며 구박을 받을지라도 그럴 것이다. 오늘은 장미를 한 송이 사서 집으로 가야겠다. 현관에서 종일 날 기다릴 두부(동거 중인 강아지)에게 줄 선물로, 혹은 나에게 주는 선물로 한 송이 장미를 사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운 꽃의 書 -26-모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