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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May 24. 2016

그리운 꽃의 書 -26-모란

향기 없다는 말에 속았나

異香(이향)은 네가 가진 마음이려니

나비도 갸웃거리는구나.


낮은 담장 아래에서

지나는 사람 바라보다

눈 마주쳐 수줍은 떨군 고개


바람의 독백으로

주석 달지 않은 햇살의 편지에

너도 그리운 게로구나.


살며시 꽃잎  떨리고

다시 바람으로 고개 드는

너는 異香(이향)으로 나를 갸웃거리게 한다.



꽃말 : 부귀, 영화, 성실
(적색) 나의 사랑은 당신을 감시한다.      
(백색) 당신은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연한 빨강) 다만 나를 믿어주시오.

시골 풍경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오월이면 더욱 걷고 싶은 곳이 많아진다. 어느 시골에는 아직도 돌담이 참 많기도 하다. 그런 곳을 걸을 때면 그 낮은 담 아래에서 어김없이 만날 수 있는 꽃이 모란이다. 남사예담촌에서도 나는 너를 보았고, 지인의 촌집 마당에서도 너를 보았다. 그때마다 너는 수줍은 듯 고개 숙여버렸고 나는 그것이 애처로워 살며시 어루만지며 너의 야릇한 향에 취해 버렸다. 모란을 중국인들이 좋아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우니까. 이 말 밖엔 할 말이 없다. 향이 없는 꽃이 어디 있을까. 향이 없다고 꽃이 아니지는 않지만 모란의 향기는 깊이 들이마실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異香(이향)으로 사로잡는다.

중국에서 사랑받던 모란은 신라 진평왕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식물이 언제 수입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으나 모란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꽃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는 이유는 아마도 생전에 그 많은 꽃들을 키우시는 모습을 보며 자라서 일 것이다. 매일 아침 푸른색의 물조리를 한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 두고는 허리 굽혀 하나하나에게 아침인사를 하며 물을 주셨고, 벌레가 생겨 잎이 마르거나 흉해지면 "아이고 많이 아프겠다" 하시며 약을 사 오시고 마스크도 쓰지 않고 약을 뿌리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일까 그 모습을 요즘은 내가 하고 있으니,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 할머니 이 기분에 꽃을 가꾸셨군요" 하며 혼잣말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꽃은 약속을 꼭 지친단다. 사람들처럼 거짓말을 할 줄 몰라. 그래서 때 되면 예쁘게 꽃을 피우지. 저 꽃처럼 살면 좋을 거야" 하셨던 할머니 말씀이 오늘도 새롭기만 하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님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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