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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Jun 03. 2016

같은 하늘 아래-37-

바람벽 안에서
불빛이 빠져나오고
몇낱 되지 않는 불빛은
마냥 서 있을 수 없어
손들어 버스를 잡아타고 맙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검은 숲
빈 벌판이 되어 휘날리는데
홀로 서 있는 전신주는
윙윙 소리 내어 울고 있습니다
얼굴을 때리는 세찬 바람도
딱딱하게 얼어버린
작디작은 내 마음을 조여 오고
까마득히 가물거리기만 하던
기억조차 끊어져 버려
보고픔의 허기가 져오고
내 위장은 추억을 쥐어뜯어
아물아물 거리는 그대 모습
기억의 표지판으로
온몸을 비틀어 
신음소리를 내고만 있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결코 마르지 않을 거라고 단정을 지으며 그렇게 혼자만의 하늘을 보며 저기 저 아래에서 잘 살고 있겠지 하였던 때가 있었다. 그런 마음도 시간은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냥 가져가 버렸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만약 태어날 때부터의 모든 기억을 다 가지고 산다면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그 망각이 내 소중함도 가져가 버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바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건 정말 잊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점점 무뎌가는 나를 볼 때면 시간이 약이야가 아닌 내가 무뎌가는 거야로 정의를 내려 버릴 때가 참 많다. 

"그래 내가 아주 많이 무뎌가는 거야!"


N: "난 모기가 너무 싫어"

H: "난 모기가 물지 않아 괜찮아"

N: "그런데 여긴 좋아. 바람도 시원하고"

아직도 기억하는 대화. 아무런 내용도 없는데 왜 나는 이 사소한 대화를 기억하는 것일까?

1988년 여름 세상은 올림픽 준비로 온 국민이 들떠 있을 때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걷고, 웃고, 떠들며 그렇게 젊은 날의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 기억 속 그날의 풍경은 아직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결코 망각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에 나는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그 여름날 모기가 싫다는 말에 말없이 주머니 속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이고 주변 잔디에 살짝살짝 꽂아두며 씨익 웃었던, 그런 모습을 보며 " 난 담배 연기도 싫은데"라고 말했던 H.

하지만 그 연기로 모기는 잠시 다른 곳으로 가 버렸는지 신기하게도 모기가 H를 물지 않았다.

"봐 모기가 사라졌잖아. 멋지지"라고 말하며 또 한번 씨익 웃었던...

왜 그렇게도 웃음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왜 그때만큼 웃음이 많지가 않은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사소한데 잊히지 않는 기억이 하나쯤 있지 않을까?

하늘을 보며 손으로 햇살을 가로막고 찡그린 눈으로라도 한 번 보고 기억 하나를 찾아보면 좋겠다.

우리의 따뜻한 기억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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