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천군작가 Jun 30. 2016

같은 하늘 아래-38-

쉬지 않고 비가 옵니다.
찌이쯧 거리는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바람은 추억 한 줌을 염전에 뿌리고
갈대 머리를 어루만집니다.
그대 하늘에 잠든
내 기억의 초상이
갈대의 머리를 어루만집니다


비란 놈은 참 대견스럽다. 어떤 날은 추적거리며 위로를 하고 어떤 날은 정신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내리며 내 눈을 가려버리고, 또 어떤 날은 안개처럼 뽀얀 살결을 보이며 나를 안타까워하기에 난 그런 비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그 비가 내리는 날은 하늘이 참 우울하게 보인다. 우울한 하늘... 거기 그 하늘도 우울한가?라고 묻고 싶은데 하며 전화기를 몇 번을 들여다보는지 모른다. 그러다 등 돌리고 누워 버리고 전화기는 저만치 던져두고 무음으로 해 버린다. 가끔은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기만 하다.

비라는 녀석 참 대견스럽다. 어떤 날은 그을린 대지를 차가움으로 감싸 안으며 마치 어미의 품이라도 되는 양 그렇게 안아주기도 하고, 어떤 날은 꽃들에게 달콤함을 주어 더욱 빛나게 만들어 버리는 생명수이기도 하다.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비는 그 작은 몸짓으로 빗방울 하나라도 더 적시고파 고개 내미는 꽃들이 더욱 사랑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여름 장맛비는 해바라기의 큰 얼굴을 적시고 꽃은 그런 하늘만 바라보며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같아 간간히 슬퍼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 하늘 아래에도 해바라기가 비를 맞고 있는지 묻고 싶어 진다.



積雨空林煙火遲(적우공림연화지)

장맛비 속 빈 숲에 연기 더디 오르더니

蒸藜炊黍餉東菑(증려취서향동치)

명아주 국 기장밥을 동쪽 밭으로 내가네

漠漠水田飛白鷺(막막수전비백로)

넓디넓은 논에는 하얀 백로가 날고

陰陰夏木囀黃鸝(음음하목전황리)

여름 나무 그늘에선 꾀꼬리가 우짖네

山中習靜觀朝槿(산중습정관조근)

아침에는 무궁화 보며 고요함을 배우고

松下清齋折露葵(송하청재절로규)

소나무 아래 마음 씻고 아욱을 뜯네

野老與人爭席罷(야로여인쟁석파)

늙은 이 몸 자리다툼 그만두었건만

海鷗何事更相疑(해구하사경상의)

갈매기는 어찌 나를 아직도 의심하나.


積雨輞川莊作 (적우망천장작) 王維 (왕유)

왕유는 당나라의 전성기에 고위 관직을 지내고 문명(文名)을 날리는 등 이른바 부귀공명을 누렸으나, 만년에는 속세에 염증을 느끼고 중난산(終南山) 기슭에서 한 거(閑居)하며 대자연과 불교적 색채가 짙은 작품을 남겼다. 이 시의 제목은 '장마철 망 천장에서 짓다'라는 뜻인데, 망 천장은 바로 왕유가 만년에 한거하던 시골집 이름이다. 며칠째 이어지는 장맛비 속에 밥 짓는 연기가 느릿느릿 피어오르고, 논밭에 백로가 날고 울창한 나무숲에선 꾀꼬리가 지저귄다. 한적한 전원 속에서 세속의 명리를 떠나 좌선(坐禪)과 관조의 생활을 이어가며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자 하는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같은 하늘 아래-3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